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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주차. 어둠속에서 빛을 보는 자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9. 3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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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주차. 어둠속에서 빛을 보는 자


 

 

본문: 28:1~10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섬이라 하더라.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덜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스러져 죽을 줄을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보블리로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대에 우리 쓸 것을 실었더라


 

 

1. 14일의 표류


 

 

전주에서도 말했듯이 지중해에서 겨울철은 항해의 위험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알렉산드리아호는 바울의 권면대로 미항에서 겨울을 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미항이 겨울을 나기가 좁고 초라하다는 이유로 더 좋은 조건과 환경을 가진 뵈닉스에서 겨울을 나려 하다가 그만 유라굴로 광풍에 휩쓸려 바다에 표류합니다. 지리적으로는 미항에서 약 23마일 떨어진 가우다라는 작은 섬에서 출발하여(27:16) 멜리데 섬까지 도착하는데 약 14일을 표류합니다. 이 과정에 대해 항해 전문가인 제임스 스미스가 조사한 결과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이때 표류하는 배의 속도는 하루에 약 36마일인데, 가우다 섬에서 멜리데 섬의 성 바울만()이 있는 쿠라까지 거리가 476. 6마일입니다. 이를 시간으로 계산하면 정확히 131시간 21분이 소요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문가의 조사에 의해 우리는 누가가 얼마나 이 과정을 정확히 기록하였는지 탄성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2. 멜리데 섬


 

 

바울의 예언대로 배 안의 276명 모두가 무사히 멜리데 섬에 도착했습니다. 이 섬은 지금의 말타인데 뜻은 피난처입니다. 가나안 족속의 일부인 베니게 혈통의 자손들이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이곳으로 피난하여 정착했고, 그들은 모두 베니게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헬라인과 로마인들에 의해 야만인으로 불려졌습니다. 그러나 명칭과는 달리 원주민들의 행동은 여느 문명인들보다 더 친절했습니다. 원주민들은 난파당한 사람들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아주었습니다. 물에 젖어 떨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불을 피우고 몸을 말려 주었습니다. 이빨이 부딪칠 정도로 추위와 허기에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한 모닥불은 구원의 온기입니다.

 

 

그런데 모닥불은 계속해서 새로운 장작을 공급해야만 불길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 불이 타오르도록 장작을 안으로 넣습니다.


(이런 점에서 바울의 솔선수범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누가도 있고 아리스다고도 있고 다른 죄수들도 있었는데 장작불을 계속 공급하는 일을 바울이 맡아 하고 있습니다. 섬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 손을 놀리지 않는 것이 섬김입니다. 다른 사람이 기피하는 일을 손수 찾아 담당하는 것이 섬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대접 받는 사람이 아니라 대접하는 사람입니다. 받기보다 주는 것을 더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내 것을 지키려는 사람이 아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나누려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는 아직 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 것을 쓰는 것이 아까운 사람은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을 믿지 못하거나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사람의 손을 비워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장작더미에서 뱀이 나타나 바울의 손(손가락?)을 물었습니다. 바울의 손에 뱀이 대롱대롱 달렸습니다. F. F. 브루스는 뱀이 추워서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을 바울이 잔가지로 잘못 보고 장작과 함께 불에 넣었는데 뱀이 불에 들어가자 깜짝 놀라 바울의 손을 물었다고 풀이합니다. 이 뱀은 문자적으로 독사입니다. 자유주의 해석가들 중 어떤 이들은 말타 섬에는 독사가 없었다고 이 기록 자체를 부정합니다. 또 어떤 이는 독사가 아니라 일반 뱀이었는데 누가가 의도적으로 기적을 조작했고 주장합니다. 왜 이들은 성경을 믿지 않으면서 교회에 다니고 그리스도인척 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당시 그레꼬-로만세계에서 특히 뱃사람들은 폭풍우를 만나 바다에 빠져 죽거나 독사에게 물려 죽으면 신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말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뱀에게 물리자 즉시 이것은 공의의 심판으로 해석했습니다. 디케이의 여신이 분노한 것으로 이른 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공의의 여신은 살인자를 복수하는 신으로 사람들은 바울이 틀림없이 살인죄를 저지른 죄인으로 생각하고 이제 그가 바다에서는 우연히 구조를 받았으나 결국 공의의 여신에 의해 죽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무렇지도 않게 뱀을 손에서 떨쳐 버립니다. 위험에 빠지면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무서워 몸을 벌벌 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저 태연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반드시 로마로 인도하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었기에 다른 사건이나 돌출적인 위험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가 바울의 믿음을 흉내라도 낼 수 있습니까? 저도 경험이 없지만 뱀에게 물리면 굉장히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손이 부어오르거나 통증을 느꼈다고 누가는 보고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면 다음 성경구절이 떠오릅니다. 16:17~18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광경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어떻습니까? 정말로 경악했을 것입니다. 뱀에게 물려도 죽지 않는다면 바울은 틀림없이 공의의 여신보다 더 높은 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주를 받은 살인자라고 생각하며 바울을 노려보았던 그들이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하여 바울을 신처럼 받드는 것입니다.


(인심이라는 것이 원래 이런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합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루에도 수없이 마음이 바뀝니다. 속으로 결심하고 다짐하고 의지를 굳게 하지만 조건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면 결심했던 것들이 흔들립니다. 사단은 쉴 새 없이 우리 마음을 흔듭니다. 하나님의 길을 바라보고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다가와 속삭입니다. ‘왜 여기서 머물고 있는 거야? 더 좋은 데가 있으니 그리로 가 봐. 다른 사람들은 잘 나가는데 너는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니? 눈을 뜨고 더 큰 세상을 바라보라!’ 하고 유혹합니다. 하기야 예수님도 사단으로부터 유혹을 받았는데 우리쯤이야 하루에도 수차례 유혹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유혹에 걸리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매우 하찮게 여겨집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면 슬슬 밑바닥에서부터 불만이 요동합니다. 짜증이 나고 싫증이 납니다. 지금 저는 저의 경험담을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 푼도 없는 처지에 갇힌 상태에서 신학교에 다니다 보니 하루에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유혹의 마음을 어떻게 이겨 내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저 기도한 것 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하나님께 얼마나 항의했는지 모릅니다. 사람 마음은 이렇게 간사하고 기회적이고 이기적입니다. 멜리데 섬사람들만 이런 것이 아닙니다.)


 

 

아무튼 바울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기적은 원주민들을 완전히 제압합니다. 이쯤에서 보블리오라는 섬의 추장이 등장합니다. 이는 바울을 비롯한 모든 일행을 정식으로 영접한다는 의미입니다. 이후 3일간의 융숭한 대접이 이어집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추장에게 병든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누가는 보도합니다. 역사가들은 말타섬의 염소젖의 병원균으로 인한 말타 열병이 있었다고 조사했는데 현대 의학으로 보면 장티푸스나 이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즉시 그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여 병을 고칩니다. 마치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가서 장모의 병을 치유하신 것과 비슷해 보이는 이적입니다.


 

 

이 치료의 소식은 재빨리 퍼져 나가서 말타 섬에 있는 모든 병자들이 바울에게로 몰려들었고 고침을 받습니다. 이에 섬사람들은 바울과 그 일행을 석 달이나 함께 하며 후하게 대접하더니 겨울철을 보내고 떠날 쯤에는 감사의 듯으로 나머지 항해 기간 동안 사용할 식품과 생필품들을 배에 실어 주었습니다.

 

 

3. 어둠에 빛이 비추어지다.


 

 

오늘 멜리데 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펼치시는 섬세한 구원의 손길에 대해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결국 바울과 그 일행들이 유라굴로 광풍을 맞아 배가 파선을 당하고 아드리아 해를 떠돌다 겨우 멜리데 섬에 도착을 한 모든 사건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멜리데 섬의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바울을 보내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바울을 통해 하나님은 이들의 질병을 고치는 이적을 보이셨고, 이 이적으로 말미암아 멜리데 섬사람들에게 복음이 들리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에서 표적과 기사와 병 고침의 역사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역사는 언제나 복음 전파와 구원 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역사를 멜리데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이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들은 그저 선조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이래로 하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계시기나 한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원에 있어서 어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가리어진 캄캄한 어둠속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난파당한 뱃사람들이 섬으로 잔뜩 몰려 온 것입니다. 정말 예기치 않은 일이 갑자기 발생한 것입니다. 섬사람들은 일순 당황했을 것입니다. 보통 같았으면 무기를 들고 몰려온 사람들을 적군으로 오인하고 죽이기 위해 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몰려온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 보인 것입니다. 허기진 채 추위에 벌벌 떨고 잇는 사람들을 보니 얼른 돕고 싶었던 것입니다. 섬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누구 지시도 필요 없이 나무 땔감을 모아 불을 지피고 따뜻한 음식을 장만했습니다. 조용했던 섬의 해변 가에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정말 오랜 만에 보는 훈훈한 풍경이 연출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만드신 이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멜리데 섬의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연출하신 역사적인 드라마였습니다. 섬사람들의 경계하는 마음을 녹이고 난파당한 사람들을 보살피도록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뱀으로 하여금 바울의 손을 물게 하고,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도록 역사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추장 아버지의 병을 고치도록 역사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추장과 섬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그들에게 복음이 들리도록 역사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섬사람들이 얼마나 감격하고 고마워했으면 일행이 떠날 때 모든 인정을 다해 뱃사람들이 로마에 갈 때까지 쓸 물품을 배에 잔뜩 실어주고 있습니다.


 

 

누가는 이 부분에서 섬사람들이 고침을 받은 장면을 기리기 위해 매우 특별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9절의 고침을 받고라는 뜻으로 풀이된 테라퓨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에서 영어 theraphy가 유래했습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육체적인 질병만이 고쳐진 것에 대한 적용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이 병자를 고칠 때 늘 사용되던 바로 그 단어로서 영육이 함께 회복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누가는 바울이 섬에서 석 달 동안 있는 동안 단순히 섬사람들의 육신적인 병만을 고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까지 회복하는 일에 힘썼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안수하고 기도하면서 섬사람들에게 복음을 함께 전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드디어 섬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영혼이 깨어나자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어둠속에서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일순 온 섬에 하나님의 감동이 솟아난 것입니다. 버려졌던 지중해 바다의 한 이름 모를 섬에 복음의 꽃이 활짝 피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놀랍고 아름답습니까? 지금도 이 섬에는 바울을 기념하는 교회가 서 있고 섬의 해안을 성 바울만이라 부르는 등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4. 구원받은 백성의 의무


 

 

우리는 구원 받은 백성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나 깨나 복음을 전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이 아니면 차라리 입을 닫고야 말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이 외어야 합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선 우리 아니라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 지는 가르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오직 그리스도인에게서만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명하신 지상선교대사명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큰 소리로 낭독해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9:19-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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