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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5:3-10. 성령으로 인한 흔들림 - 복

by 김경호 진실 2016. 1. 3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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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5:3-10. 성령으로 인한 흔들림 - 복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1.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다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이야기한다(1:23). 마이클 윌킨스라는 사람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의예수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구체화시키고,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려주는 그리스도의 이름들이라고 말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와 같이 하시기 위해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요한복음1:14)하신다고 약속하신다. 바울이 말씀을 성령의 검(에베소서6:17)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안에 말씀이 거하신다는 말은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말이고, 그래서 바울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6:19)라고 고린도교회를 향해 묻는 것이다. 따라서 임마누엘의 실재적인 모습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성령하나님께 이끌리는 삶을 사신다.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께 임하신 후에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처음 말씀을 전하실 때 이사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는 구절을 읽으시고, 이 말이 너희 귀에 응했다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께 성령이 임하셨음을 드러내셨고,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이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요한복음12:49-50)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심으로 성령님은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16:13)라고 말하심으로 성령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이 같음을 역설하신다. 이렇게 예수님의 삶의 방식은 예수님 스스로의 힘이 아닌 성령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2. 예수님을 닮아가기로 기도하는 우리들, 예수하는 우리들역시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문제는 무엇이 성령에 이끌리는 삶인가를 잘 모른다는 데 있다. 성경에서 이야기되는 것처럼 성령님은 병고치고, 귀신을 좇아내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사하는 분인가? 분명 성령님은 우리들 가운데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시고, 우리들에게 은사를 주심으로 이 악한 세상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만드시는 분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능력을 행하시는 분은 아니다. 더군다나 성령님은 일종의 에너지 같이 우리들에게 왔다가 소멸되는 그런 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인격적인 교감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동행을 이해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시다. 쉽게 말하면 성령하나님께 이끌리는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를 갖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말하면서 교만하여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과,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지만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드러내는 사람중 누구 성령께 이끌리는 삶을 사는 사람인가?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한복음3:8)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으로서의 징표는 일정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표현하는 보편적인 증거로 초자연적인 성령의 능력을 이야기한다.


3. 바람은 그 흔들림을 보고 바람이 부는지 안 부는지를 안다. 따라서 성령에 이끌리는 삶 역시그 흔들림을 보고 알수 있을 것이다. 유대교는 과거나 지금이나 토라에 대한 순종을 그 흔들림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구약에 매인다. 과거의 순복음 교회는 그 흔들림을 방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때 순복음 교회에서는 방언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세례를 준다는 소문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정형화된 모습들이 과연 성령에 이끌리는 삶인가라는 의심이다. 이 의심을 풀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을 말씀하시면서 산상 수훈의 서론으로 이야기하신 8복을 생각한다. 8복에서 4번째와 8번째의 복은 와 관련이 있다. 의에 대하여 목말라하고 굶주려하는 것, 그리고 의를 위해 박해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4번째와 8번째의 복이다. 여기서 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왕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민감해지는 것, 그래서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 박해라도 달갑게 받을 수 있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품성이 바로 성령에 이끌리는 삶의 모습이 된다는 말이다.



4. 그래서 8복은 가 중심인 구조를 가진다. , 하나님과의 관계()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자이고, 애통하는 자이다. 그 관계를 지키는데 스스로 아무 능력이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온유함이 드러나게 된다.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긍휼히 여기는 자들이고, 청결한 자들이고, 화평을 이루는 자들이다.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으며, 이웃과의 화평을 위해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게 되는가? 이런 모든 일들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성품을 가졌기 때문이고, 이런 사람들의 그 흔들림은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은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성령에 이끌리는, 바람이 부는 모습으로 예수님은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마가복음12:29-31)라고 사랑을 말씀하셨다. 바울 역시 바람이 부는 흔들림의 표시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고나 무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성령의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고, 그것이 바로 복의 이유이다.

기사제공 :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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