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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집의 돌 항아리 여섯 개(요 2:1~11)

by 김경호 진실 2016. 5. 10. 09:03

본문

쓰임받을 때 영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사용해달라고 기도해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요 2:6~7)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은 이제는 잔치를 끝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잔치 자리에 계셨고, 그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심으로 잔치는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수님을 만난 인생들에게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삶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도 여전히 인생이 짜증스럽고 절망스럽다, 허무하다, 그건 아닙니다. 어떻게 부활의 주요,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만났는데 옛날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예수님도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

무신론 철학자 니체는 원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떻게 그렇게 무시무시한 무신론 철학자가 되어버렸습니까? 그 스스로 밝힌 이유는 이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을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전혀 기쁨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쁨 없는 삶을 살면 그것이 전도의 문을 틀어막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가정과 삶에는 항상 기쁨이 드러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인생이 항상 즐기도록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의 문제는 항상 다가옵니다. 우리의 기쁨을 깨뜨리는 도전들이 항상 있습니다.

본문의 혼인집에도 그 문제가 생겼습니다. 잔치가 계속되는데 가장 중요한 포도주가 떨어져버린 것입니다. 물론 너무 적게 준비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상보다 훨씬 많은 손님들이 왔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오늘 우리 인생에서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상과 예측은 항상 빗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순간 우리 인생의 축제는 끝나고, 심각한 두려움과 절망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에서 사람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어떤 상황에서나 우리는 가장 먼저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삶의 지혜가 생기고, 능력이 생깁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예수님도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한편 본문의 잔칫집에서 포도주는 하인들이 돌항아리에 갖다 부은 순종의 분량만큼 만들어졌습니다. 만약 하인들이 돌항아리 하나에만 물을 갖다 부었다면 그 분량만큼만 포도주가 되었을 것입니다. 돌항아리 중간까지만 물을 갖다 부었다면 역시 그 분량만큼만 포도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인들은 주님이 물을 떠다 부으라 하니까 돌 항아리 아귀까지 가득 차게 물을 떠다 부었습니다. 그 순종이 결코 형식적이 아니었단 얘기입니다. 그들은 그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물이 아닌 포도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늉으로만 주님 말씀대로 하지 않았고, 마음을 다해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믿음과 순종의 분량만큼 포도주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바로 여기까지가 본문에 드러나 있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가장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얘기는 이 얘기가 아니라, 사실은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잔칫집의 돌항아리 여섯 개에 관한 얘깁니다. 잔칫집의 돌항아리 여섯 개! 그것들의 원래 용도가 무엇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정결 예식에 따라 사람들의 손과 발을 씻기 위한 허드렛물을 담아두는 돌항아리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사건에서는 거기에 무엇이 담기게 됩니까? 하나님의 기적이 담기게 됩니다.

물론 물은 그 돌 항아리에서부터 다 포도주가 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물론 그것도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별로 극적이지는 않습니다. 사실 물은, 그 돌항아리에 있을 때는 그냥 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물을 떠다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더니 그것이 포도주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연회장에서는 그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맛있는 포도주를 어디 두었다 이제 가져왔느냐? 사람들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우리 인생도 얼마든지 그런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맛없는, 말 그대로 맹물 같은 인생들일지라도 주님께서 변화시켜 주시면 우리 인생은 최상급의 포도주와 같은 인생들로 바뀌게 됩니다. 아무 가치 없던 인생이 최고로 가치 있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아무 의미 없던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여전히 포도주가 된 물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돌항아리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건 그냥 사람들의 손이나 발을 씻기 위한 허드렛물을 담아두는 돌항아리였습니다. 때문에 이제까지 그 돌항아리를 눈여겨보거나,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그것들은 항상 그 자리, 집 한 귀퉁이에 손이나 발 씻을 허드렛물을 담고서 덩그러니 놓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돌항아리가 주님의 일에 쓰임 받았을 때 그것은 주님의 기적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도 멋지지만, 허드렛물이나 담아두던 돌 항아리가 주님의 기적을 담는 그릇이 된 것이 더 멋집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고,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사업이나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쓰임 받을 때는 허드렛물을 담아두는 볼품없는 돌항아리일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에게 쓰임 받을 때는 예수님의 기적을 담아두기 위한 그릇이 될 수가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우리 운명이 달라집니다. 누구에게 쓰임 받고, 무엇을 위해 쓰임 받느냐? 사람에게 쓰임 받느냐, 하나님께 쓰임 받느냐?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과 가정이, 자녀들이, 사업이 주님께 쓰임받기 원한다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실 때는 기꺼이 내어드리십시오! 그러면 거기에 주님의 능력이 임하고, 주님의 기적이 임합니다!

사실 그 돌항아리는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평범한 돌항아리였을 뿐입니다. 그 돌항아리에 물을 포도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생명 없는 물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주님 손에서 쓰임 받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담기 위한 그릇이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게 쓰임 받을 수 있고, 우리 자녀들도 그렇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도 그렇게 쓰임 받을 수 있고, 우리 직장과 사업도 그렇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 쓰시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주님이 쓰시겠다 하시는데 내어놓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써주세요! 내 가정을 써 주시고, 내 자녀들을 써 주시고, 내 사업과 직장을 써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써 주시되, 본문의 돌 항아리처럼 하나님의 기적을 담는 그릇으로 써 주실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인생 최대의 축복과 성공은 주님께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적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 그렇게 쓰임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그렇게 쓰임을 받았고, 모세가 그렇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렇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그렇게 쓰임 받았습니다. 모든 신앙의 위인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냥 놔두었다면 이 세상 한 귀퉁이에 덩그렇게 놓여 있을 멋대가리 없는 돌항아리에 불과했었는데, 하나님의 손에서 쓰임 받을 때 가장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사용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김성원 목사(광주중흥교회)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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