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표적들로 메시야이심을 나타내시는 예수님(막4장 35절-5장 43절)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4장35-41절).
예수님은 저물 때에 말씀하신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이제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제자들이 건너가고 있었다. 그런데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고물 즉, 배의 뒷부분에서 배게를 베고 주무셨다. 제자들이 깨우며 말한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이것을 보면 당시 갈릴리의 베테랑 어부들로서 이런 광풍에 어떠한 해결책이 없었고 광풍에는 그들의 경험도 실력도 아무 소용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예수님은 깨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명령하신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렇게 말씀하시자마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다” 예수님은 바람을 잠잠하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신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제자들은 주님께서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명령하셨기 때문에 배를 타고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광풍을 만난 것이다. 놀러가다가 풍랑을 만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함께 할 때에도 인생의 여러 풍랑이 있다. 전혀 풍랑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으로 사명의 길을 가는 자들은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주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는 이러한 주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책망을 통하여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견고히 하게 하신다.
제자들은 조금 전에는 그 광풍을 무서워하였지만, 이제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심히 두려워한다. 그리고 서로 말한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요, 지금도 세상을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했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주께서 부르신 사명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광풍과 같은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은 그 모든 어려움을 한번에도 해결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나아갈 수 있다.
더러운 귀신들린 한 사람의 구원을 통한 큰 역사(5장1-20절)
갈릴리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렀다. 이곳은 북이스라엘의 영토였다. 이곳의 주민은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들보다는 이방인들이나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의 혼열이 많은 곳이었다. 이곳에 원래 있던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시리아나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대다수가 이방에 끌려가서 거의 사라지고, 이방인들이 와서 살았다. 예수님이 이곳에 배에서 내리셨다. 그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 자였다. 사람들은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었다. 그는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이렇게 외친 이유는 벌써 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님은 그 안에 있었던 귀신을 원수로 보고 그를 쫓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신 것이다. 예수님이 그에게 물으신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말한다.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예수님이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위해서 그의 정체를 밝히시고자 하심이다. 그 귀신은 예수님께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며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예수님이 허락하시자, 이 더러운 귀신들이 돼지에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였다.” 그때 이 돼지들을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왔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왔다. 그리고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렸다.” 그러면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그 능력의 복음을 듣기를 원하였는가? 귀신들린 사람이 온전하여 진 것을 보고 기뻐하였는가? 결코 그렇지 않않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한다. 오히려 그들은 돼지가 죽은 것으로 인하여, 물질의 손해로 인하여 기분이 나쁘고, 더 큰 물질의 손해를 피할 생각으로 영원한 구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기회를 버렸다. 그들은 주님께 말도 안되는 간구를 한다. 주님이 떠나도록 기도한다.
이렇게 예수님의 거라사인의 전도는 귀신들린 자 하나로 인하여 실패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귀신 들렸던 사람을 예수님은 구원하셨다.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사명을 주신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그런데 이 연약한 한 사람을 통하여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수많은 돼지떼를 소유한 부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지만, 이 더러운 귀신들린 한 사람을 통하여 데가볼리 지방에 큰 복음전파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역사는 세상에서 버려진 한 사람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21-43절)
예수님은 다시 갈릴리 바다 이편으로 오셨다. 큰 무리가 바닷가에 모여 있었다. 이 때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가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렸다. 그리고 간구한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이 함께 가실 때에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서 밀었다. 그때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었다.” 그녀가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는 과거에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중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옷에 손을 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손을 대자 마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셨다. 그리고 돌이켜 말씀하신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그리고 예수님이 그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셨다. 이에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말하였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말씀하신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은 그 여자를 망신주려고 하신 것이 아니다. 이것을 드러내지 않으면 그 여자는 오히려 죄책감으로 고통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혈루증 있는 여자가 다른 사람의 옷을 만지면 그 사람이 더러운 사람이 되고, 또한 전염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드러내심으로 예수님은 그 여자의 행위가 믿음의 행위였음을 나타내시고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이었다. 또한 예수님은 그 믿음을 복 주사, 그 믿음으로 육체의 구원뿐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도 받게 하시고 평안을 주신다. 이 여인에게 은혜주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죄책감을 제거하시고 영혼의 구원과 평강을 우리에게 지금도 우리에게 하늘에서 내려주신다.
회당장의 집에 가는 길에 혈루증 여인으로 인하여 시간이 지체되었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왔다.” 그들이 회당장에게 말한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그러나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회당장의 집에서 가셔서 그들이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사람들은 소녀의 죽음 앞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이다.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살이었다. 이에 사람들이 크게 놀라고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신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시기에 귀신들을 내쫓으시고, 불치병인 혈루증으로 고통하는 자 뿐만 아니라, 죽은 자도 능히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시다. 예수님이 이러한 기적들을 행하신 이유는 이것이 메시야의 표적들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이것들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께서 확실히 메시야이심을 믿을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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