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듣지 못하는 방언기도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 |
조창훈 목사(방배본 교회) | |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기도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바울이 “나의 영이 기도한다”는 것은 양보의 방법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영으로 고상한 기도를 한다고, 참 어이없구나!”란 의미이다. 바울은 이해력이 따르지 않는 기도는 큰 잘못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그들 자신도 모르는 언어로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적어도 우리는 그런 어떤 실례를 읽어보지 못했다).” 이것은 훈련한 앵무새나, 까치, 까마귀와 같은 것이다. 마귀는 이렇게 기도하는 자들을 빼앗아갔다. 가톨릭 교도들은 이렇게 지나치게 어리석어서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기도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또한 그들 자신도 모르는 말로 속삭이고 중얼거리는 무지한 짓을 더 좋아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격렬하고 단순한 궤변으로 하나님을 조롱한다. 바울은 마음과 목소리가 함께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라면 우리 각 개인이 드리는 기도가 무익하고 결실이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런데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한다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말에 대해서 감사하고 아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울은 감사와 기도를 공석에서 드릴 때, 모든 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 있는 자국어 이외의 다른 말로 드려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비판하는 그 일을 로마 카톨릭교도들은 거룩하고 합법적인 관례로 본다. 이것은 그들의 놀랄만한 몰염치를 나타낼 뿐이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그들은 철저하게 지킨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칼빈. 고전주석 14:14, 14:16 출처: 순수칼빈주의신학지킴 모임 http://cafe.daum.net/pure-calvinism |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1768&msection=8&ssection=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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