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교개혁자들은‘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개혁교회는‘오직 말씀으로, 오직 믿음으로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a scriptura!, sola fide!, soli Deo gratia!)'라는 말로 특징 지워지기 때문에, 개혁된 교회는 첫째로 ‘교회의 바탕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가?’, 둘째로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일 그리고 감당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따라가고 있는가?’, 마지막은 ‘교회와 교회가 감당하는 모든 사역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는가?’라는 질문에 계속적인 답을 던지며 이 땅에 존재했다.
예수님 역시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과의 논쟁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을 가르치실 때나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등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던 모든 사역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향해 무덤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실 수 있었고, 세리의 친구들과 식사를 나누실 수 있었고, 심지어 당당히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실 수 있었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님을 비난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마태복음5:19)’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따라 일하셨다는 말이다.
2. 이런 교회의 개혁적인 모습은 교회가 가져야 할 하나님과의 관계, 폴 틸리히(Pall Tillich)라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수직적인 차원을 생각하게 만든다. 즉, 예수님을 따라가는 개혁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삶의 수직적인 차원에 대하여 눈을 돌릴 수 있는 삶이다. 그래서 아브라함 하셀같은 유대인 학자는 ‘안식’을 강조한다. 참된 안식은 시간의 지성소에 들어가는 행위라고 그는 말하는 데,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안식함을 통해 수평적인 삶을 사는 동안 잊혀졌던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삶의 수직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과 만남으로 삶의 가치와 이유가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현대인들은, 특별히 교회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라도 삶의 수평적인 차원에 매몰될 때가 많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무엇을 소유해야 하는가?’등의 질문은 수평적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질문이다.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하여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복음6:31-32)’라고 말씀하신다. 이방인들의 삶의 양식이 바로 수평적이라는 말이고, 이런 수평적인 삶의 양식의 바탕은 맘몬적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교회로서의 모습을 갖기 위해서는 혹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의 수직적인 차원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삶의 수직적 차원을 회복하기를 원하는 자를‘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마태복음5:6)’라고 이야기하셨다.
3.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17:16)’라는 신앙고백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는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17:17)’라고 말씀하셨고, 그 고백을 바탕으로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미태복음17:21)’셨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항변(마17:22)’하면서 그런 일이 없을 것임을 주장한다. 이런 베드로의 태도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바라보는 수평적 차원의 입장이었고,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미태복음17:23)’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개혁은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 그것도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은 개혁된 교회는 수평적 차원에 매몰되지 말고, 수직적인 차원,‘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미태복음17:24)’르라는 말씀으로 요약된다. 즉, 신명기의 하나님께서‘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신명기6:10-12)’말라는 경고의 멧세지를 현대화 시킨 것이다.
4.‘예수하기(Doing Jesus!)' 는 결국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고, 그런 삶은 수직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과 만남으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다. ‘예수하기(Doing Jesus!)'를 통해 얻어진 자유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복된 삶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언제나 삶의 수직적인 차원을 잊지 않는 우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