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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이득이 된다고 이윤이 된다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아무것이나 주워먹어서는 안 됩니다

경건

by 김경호 진실 2016. 3. 25. 21:51

본문

[그리스도인은 이득이 된다고 이윤이 된다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아무것이나 주워먹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당신의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도, 신발 끈 하나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내가 아브람을 부자가 되게 만들었다’는 말을 당신이 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4:21-24

이 본문은 아브람과 소돔 왕 사이에 오간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돔 왕은 10절을 근거해서 이전 왕을 계승한 새로운 왕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10절에서 소돔과 고모라 왕이 역청 구덩이에 빠졌고, 나머지 사람들만 산으로 도망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조카 롯과 그의 사람들과 재산들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가담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소돔 왕에게 유익이 되는 큰일을 행하는 결과를 내었습니다. 그래서 소돔 왕은 마땅히 감사의 표현을 하려 하였습니다. 그 감사의 표현은 예물이었습니다.

1. 세상 안에서 생활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합당히 행해야 합니다.

세상 안에서 이해관계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신중히 행해야 합니다. 아브람은 조카 롯의 목자들과 그 자신의 목자들이 목초지의 한계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려 할 때,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이득이나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고 세상에서 덕을 세울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자신의 소유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전제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이윤과 이득만이 전부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이 전부고 목적 자체이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덕이 삶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이윤과 이득은 이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도 정당한 이익과 소유를 누릴 수 있지만, 그것이 인생의 최고의 목적에 부딪칠 때, 혹은 그것이 미심쩍은 정황으로 다가올 때 매우 신중히 행동해야 합니다.

소돔 왕은 아브람에게 사람만 제외하고 자신의 소유였던 물품들을 감사의 표현으로 제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사람도 물품도 소돔 왕의 소유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소돔 왕이 잃었던 것을 아브람이 되찾았으니, 인간적인 탐욕이 발동했다면 “주은 사람이 임자다”하고 자기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브람은 아무 대가 없이 전장에 나가 승전고를 울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군사들을 동원하고 전쟁에 필요한 재원을 소모하며 그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돔 왕은 감사의 표현으로 물품을 주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혹시 상대방이 사람과 물품을 먼저 자신의 소유로 주장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분쟁을 막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자 이렇게 제안 한 것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람은 되찾아 오고, 물품은 감사의 표현과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 물품을 아브람에게 양보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저 소돔 왕의 제안을 모른 척 받아들이기만 하면, 아브람에게도 부를 축적할 얼마나 좋은 기회였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람은 이를 정중히 거절합니다.

아브람은 사람만이 아니라 물품도 돌려보내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아브람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 그의 손에 붙들려 살았던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는 단지 떡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려했습니다. 그는 눈앞에 이득만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아브람의 언사를 보니 아브람의 사양은 단호한 것이었습니다.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하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23절). 매튜 헨리는 이러한 아브람의 발언이 “이 세상의 재물을 거룩한 멸시의 자세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믿음으로부터 나왔다고 주석합니다(요일 5:4). 아브람은 달콤한 제안, 어찌 보면 정당한 부를 축적할 기회를 단호히 거절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고, 인간관계 속에서 신앙인으로서 덕을 세우고 물질로 인해 올무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아브람은 왜 전리품을 사양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세상에서 덕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아브람의 이런 행동에서 그가 전장에 나간 명분이 분명히 추론될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포획하거나 전리품을 얻고자 하는 탐욕에서 전장에 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롯과 그에 속한 것들을 적의 손에서 구해내고자 하는 명분 하나로 전장에 나간 것입니다. 그가 부정한 것은 아니더라도 소돔 왕의 호의를 받아들였다면, 그의 거룩하고 헌신적이고 정당한 전쟁 참여의 동기가 퇴색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아브람이 소돔 왕의 재물을 받아들였다면, 소돔 왕과 그 시대의 주변인들은 아브람이 소돔 왕이 잃은 재물에 눈독을 들이고 제 영달을 위해 전장에 뛰어들었다고 혹평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치부를 논하고 헐뜯기를 좋아하는 본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브람의 선한 동기가 오해되고 이방인의 땅에서 그의 신앙은 판단받고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단호히 말합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왜 아브람은 맹세를 동원해 이렇듯 힘껏 세상의 배려를 거절합니까? 그는 세상이 어떤 존재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신중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만 생각하고 세상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고 그저 이익이 되는대로 살다가 낭패를 보기 일쑤입니다. 특별히 이해관계가 얽힌 일들에서 크리스찬은 실수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아브람은 세상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속해 세상 사람들이 사는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잘 파악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권리라고 다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권리는 누리라고 존재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가리울 때 우리는 권리를 내려 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유가 존재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가리울 때 자유를 내려 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아브람은 소돔 왕이나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아브람이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기 위해 전장에 참여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룻을 사랑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전장에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재물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위한 목적이 그를 전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끌어내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에 이끄시어 그분의 섭리와 능력으로 자신과 자신의 친척을 지켜 주신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는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의 전투 승리는 하나님께 오로지 영광 돌려야 할 사건이었으며, 깨끗하고 거룩한 신앙의 명분으로 임한 전투였습니다. 소돔 왕의 전리품을 받는 일은 이 거룩한 일을 곡해하여 받아들이도록 만들만한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의 외침은 그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전리품을 받으면 당신은 분명 내가 당신의 재물을 탐내어 부자되려고 전장터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지런하고 성실하여 안정되고 단정한 모습으로 세상에서 재물을 활용하는 것이 유익하고 정당한 것이나, 재물에 신앙이 지배받아 돈을 밝히는 것처럼 보이거나 탐심과 이기심의 냄새를 풍기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매튜 헨리가 조언합니다. 아브람은 세상, 특히 소돔 왕이 교만하고 남을 조롱하고 스스로 부패하여 충분히 아브람의 진심을 호도할 것을 예상했던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속한 것들에 대해 절제하는 것이 옳지 금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양하고 포기하는 것이 금욕주의나 무절제하게 세상에서 육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들로서 우리의 현실을 무시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덕에 소용되게 지혜롭게 재물이 신앙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브람은 균형 잡힌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엇이 해가 될 소지가 있으며, 무엇이 해가 되지 않을 적절한 요구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것들을 거절하되, 그의 군졸들이 전쟁하며 정당히 소모한 양식에 대해, 그와 함께 원정에 참여한 동맹군들의 몫을 남기고 사양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는 아브람이 주장하더라도 부자 되려고 싸움터에 나갔다고 비방받지 않을 요구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가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세운다는 전제 하에 절제되지 않을 때 어두운 결과들이 드리워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필요에 따라 자유를 절제해야지 무차별하게 자유를 억압하거나 버리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재물을 적절하고 정당하게 소유하고 사용하는 일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절제가 따를 때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제를 하며 살아야지 금욕을 하거나 재물 자체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며, 가정과 사회에 혼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자신에게도 유익보다 해가 더 많은 것입니다. 우리는 취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나, 보통 절제 속에서 주어진 자유와 재원을 건전하게 활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에 이릅니다.

첫째, 예수님의 교훈처럼 우리는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들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 속에서 살 때 소금과 빛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할 때 신중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세우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절제해야 합니다. 오로지 이윤과 이득만을 좇아 살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관계의 덕에 유익한지 신중히 살펴야 합니다.

둘째, 그러나 이러한 신중함과 우리의 포기와 사양과 양보가 절제를 넘어 현실 삶에 대한 부정과 금욕주의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이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나와 가정과 사회에 혼란을 초래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의 역할과 유익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위해 절제하며 지혜롭게 사용할 때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고 나와 가정과 사회가 윤택해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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