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1:7-14. 주 예수를 위한 삶을 위한 내려놓음 | |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 |
1. 인간적으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갖는 이유는 ‘잘살기 위해’이다. 잘 사는 것은 무엇엔가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박 받지 않는 삶을 위해 돈을 번다. 건강하려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한다.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짐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기도 하고, 또 인정받기도 한다. 더군다나 요즘과 같이 다원화된 세상에서는 ‘나’의 가치는‘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에 집중되는 데, 대체로 사람들은‘무엇인가를 가짐 = 돈이 있음’이라는 등식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돈’을 모으는데 최선을 다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6:33)’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잘사는 법’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추구하는 ‘잘사는 법’을 구분하신다. 세상 사람들의 ‘잘사는 법’은‘이 모든 것’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들 모두가 일상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모든 것’과 ‘하나님의 나라와 의’사이에 ‘먼저’라는 우선 순위를 두신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라면, ‘먼저’구할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다 구하지 못한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더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잘사는 법’, 즉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이다. 삶의 순위를 결정하는데 ‘믿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장 우선적으로, ‘먼저’ 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이고, 그 다음에 ‘이 모든 것’을 구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의미한다.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따라서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전의 바울에게 아가보의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사도행전21:11)’는 이야기 앞에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을 울며 막는 제체들 앞에서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사도행전21:13)’라고 망하는 바울의 태도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세이고, 이런 삶을 산 바울은 ‘잘 살았던 사람’이었다. 반면에 하나님의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에 대하여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사무엘상15:15)’라고 말하는 사울 왕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구한 사람이다. 사울의 가문은 결국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예수님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로 바뀌는 고통 가운데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26:39)’라고 기도하심으로‘이 모든 것’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사는 것이 더 우선순위임을 몸소 보여주셨다. 3. 우선순위는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하려 할 때 그 결과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사울의 실패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인간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부를 축척하는 방법이 전쟁을 통해 남의 나라의 것을 전리품으로 빼앗은 일이었기 때문에, 사울은 아말렉을 치고 아말렉이 갖고 있었던 ‘좋은 것’까지 없애는 것은 미래에 자신이 가져야 하고 누려야 할 ‘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우선순위를 둔 사울은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면서 우선순위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데 두었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우선순위를 두는 기준으로 삼은 것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였다. 즉,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삶의 순위를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우선순위였기에 십자가의 길을 걸을실 수 있었다.
4. ‘이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잘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도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잘기 위해‘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먼저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은‘이 모든 것’을 먼저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 ‘이 모든 것’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구하는‘이 모든 것’을 주심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 약속을 따라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믿음의 패러다임이라는 말이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위해 믿음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믿음의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또 실제로 믿음을 따라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에서 엿볼 수 있다. 그들의 광야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믿음의 패러다임을 따라가는가 아닌가에 있음을 안다. 만나를 먹는 과정에서부터 적을 맞아 싸우는 경우, 더 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 할례를 받는 모든 것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믿음의 패러다임을 따라가는 삶이다. 믿음으로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는 우리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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