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은 유대 땅의 회복을 의미한다.
바벨론의 포로 생활이 후 유대의 일부는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고토로 돌아온다. 그리고 유대 왕국을 재건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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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선지자 학개와 느혜미야 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성전 재건축을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국가를 건설한다. 그러나 그 나라도 결국에는 헬라 제국과 로마 제국의 속국이 되어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 본문은 무엇보다 새 언약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옛 언약에 속한 모든 백성들이 고토로 돌아와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루기는 하겠지만 그 역사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멸망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밤나무,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아있다.”는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일반적인 사실을 비유로 하여서 특별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삼라만상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사실로부터 특별 계시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 본문의 의미는 “밤나무와 상수리 나무”로 비유되는 구약의 이스라엘 공동체와 “그루터기”로 비유되는 새 언약의 교회를 대조하고 있다. 비록 밤나무와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구약의 경륜에 속하여서 더 이상 의미를 상실할 때 새 언약의 교회가 새로운 경륜을 따라 이루어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어 성경의 “거룩한 씨”는 어떤 대상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복음적인 신앙생활 안으로 들어올 모든 교회의 성도들을 의미한다. 이것은 혈통으로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자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자이다. (요 1:12)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그 대상이 이스라엘 사람이건 아니건 혹은 이스라엘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있는 이방인들이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백성이고 한 하나님의 후사들이다. 다만 그 경륜을 이루어 가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으로 할례의 의식을 거쳐서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도가 있었다. 그것이 구약의 법이다. 그러므로 구약 이스라엘 공동체는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니다. 상당하게 개방적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을 깨닫고 이스라엘 회중으로 들어오는 자들은 할례 의식을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구약 시대에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었다.
후대에 유대인들이 점차적으로 폐쇄적으로 잘못되게 이스라엘 공동체를 변질 시켰다. 오히려 구약 이스라엘 공동체의 책임은 그 주변 국가를 여호와를 아는 신앙으로 인도하는 것 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는 오히려 주변 국가에 대하여서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으로 나아갔다. 이스라엘의 신앙이 타락하고 저급하게 되자 오히려 이스라엘 공동체는 경직되고 폐쇄적으로 되어서 자유롭게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되는 그런 기이한 현상이 있게 된 것이다.
가시적 교회가 타락하면 더욱 개방적이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오히려 가장 폐쇄적인 형태를 갖게 된다.
새 언약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깨달아 그 율법대로 살아가는 그 백성됨의 표징이 중요하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난 자라는 표징이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르고 성실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말씀에 대한 끊임없는 애착과 시행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그 말씀에 대한 순종을 추구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됨의 표징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됨의 표징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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