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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강론

배현주목사(고양)

by 김경호 진실 2016. 9. 30. 09:09

본문

[ 교리 강론 ]
본문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아래에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그리고 그런 영원하신 신적 작정의 비밀에 대하여서 증거하고 있다.

1. 전적 타락
본문과 관련된 전적인 타락은 이러하다.

성경이 증거하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의 가장 근원적인 연관은 하나님의 율법이다.

인간 타락의 원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이다.

죄악과 범죄와 타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율법과 관련되어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반역이 인류의 전적인 타락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담 이후에 모든 인류의 원죄이다.

창세로부터 인간의 타락이후 지금까지 인류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반역하였다.

전 인류는 지금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살아간다. 온 인류가 지금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은 전 인류 안에 드리워진 보편적인 부패성 때문이다.

인류의 타락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영적이다.

인류 타락의 가장 심각한 상태는 그 타락이 전인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타락하였다. 흔히들 인간의 감성은 영혼의 촉수라고 말한다. 그렇다.

감성은 인간 지식의 반응이다. 인간이 어떤 일에 감성을 표시하는 것은 그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깨달아 알게 되면 사람들은 그에 대한 감성적 반응을 한다.

그것이 기쁨이건 슬픔이건 분노이건 증오이건 그러하다.

인간이 감성적인 반응을 할 때 그 바탕은 지식이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작은 지식에도 넓게 감성의 표현을 한다.

감성이 메마른 사람은 풍성한 지식에도 적게 감성을 표현한다.

이렇게 사람의 감성은 그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의 시작은 지식의 타락으로부터 왔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은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것은 지식의 타락이다.

인류는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선악과에 대한 욕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인간을 떼어 놓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도록 유혹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 타락의 기초이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멸시하여 그 계명에 불순종하였다. 그것이 그들의 심각한 죄악이다.

그리고 나서 인류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찼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모든 죄악의 원형이다. 그들의 범죄는 원죄가 되며 모든 인류는 그 원죄의 전가를 받았다. 이제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기 보다는 변명과 술수 거짓과 공갈을 동원하여서 점차적으로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우리들은 그러한 어두움을 죄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가인으로부터 보게 된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도 뻔뻔하게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과 위선을 행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인의 범죄는 아담의 직계 후손으로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을 드러낸다. 가인은 아담의 범죄를 이어가는 멸망의 자손이다. 아담의 범죄가 이어지는 것이 가인의 범죄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 후손들을 사람의 아들들이라고 하였다. 그와 대조적으로 의인 아벨과 그 이후에 아담에게 주신 셋과 그 셋의 후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명명하였다.

이 두 가계의 뚜렷한 특징은 하나님께 대한 경건과 그 반대로 하나님께 대한 배교이다.

죄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반역 행위이다.

그러므로 죄악은 가장 먼저 지식에 기초한다. 그리고 그 지식이란 그가 생각하고 말하는 바로 그 사고방식에 기초한다. 사고방식이 부패한 사람은 가장 부패한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서양 역사에 있어서 18세기 이후를 배교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서구인들의 합리주의적인 사고방식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나아갔고 결국 그들은 무신론적 사회를 이루었다.

그리고 허망한 사고방식을 온 세상에 퍼뜨렸다.

임마누엘 칸트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유하는 이성의 선험적 가상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허탄한 주장들이 인간들의 영혼을 파괴시켰다. 이러한 무신론적 사회를 이루는 사상적 배경을 마련한 것이 18세기 이후에 도래한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이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그들의 신앙의 열조들의 사고방식을 모두 버렸다.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이제 신앙의 지식을 거부한다.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변한 것이다.

그것은 지식에 기초한 종교가 아니라 다만 윤리에 기초한 종교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진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윤리 교과서로 전락시켰다. 율법의 무오성과 순수성은 완전히 파괴되고 하나님의 율법을 세속의 문헌 수준으로 타락시켰다.

하나님 앞에서 반역의 시작은 지식의 부패로부터 온다.

하나님에 대한 바르지 못한 지식은 필연적으로 전적인 타락으로 나아간다.

지식의 부패는 감성의 부패로 치닫고 그것은 하나님을 배도하는 의지의 부패로 나아간다.

경건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Notitia Dei)에 기초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Notitia Dei)이 없으면 그는 경건한 자가 아니다.

그들의 경건은 헛된 경건이며 그들의 신앙은 작위적이다. 그런 거짓된 경건을 주창하였던 무리들이 18세기에 독일의 경건주의자들이다.

그리고 그런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경건주의 운동은 모라비안을 거쳐서 현대 대부분의 새로운 기독교 전통을 세운 감리교회와 성결교회 그리고 침례교회와 오순절 교파들의 신앙의 기초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교리보다 삶이다.

그리고 어떠한 행위이다.

경건주의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윤리적인 선을 종교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것이 현대 종교이다.

그리고 계몽주의 종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Notitia Dei)의 부패는 즉시 윤리적 삶의 부패로 이어지기에 그들의 주장은 거짓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Notitia Dei)을 거부하는 현상은 그 자체가 타락의 결과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Notitia Dei)의 부패는 결국 자기 의(義)와 공로 사상으로 발전한다.

결국 하나님이 없는 상태에 이른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Notitia Dei)의 부패로부터 초래된 종교의 타락은 결국 극단적으로 의지의 타락으로 이어진다. 오히려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비양심적인 세상이 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결여는 필연적으로 극단적 어두움의 혼란에 빠진다.

그것이 지금의 현대 계몽주의 종교이다. 모든 개신교 분파주의자들은 계몽주의 종교의 구조 아래에 갇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와 선지자를 통하여서 교회를 세우실 때 교회의 정치 형태를 장로 직제 형태로 세우는 것은 거룩한 보편 교회의 진리를 보존하시고자 하심이다.

장로 제도는 거룩한 보편 교회의 머리로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로 교회법을 가지시고 치리회를 통하여서 가시적 교회를 다스리시는 제도이다.

이러한 장로 제도는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보존하는 수단들이다.

진리 만이 남는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무지는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는 결과 이외에는 다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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