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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가 누구인가?(계7:1-17)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7. 5. 2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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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가 누구인가?(계7:1-17)
임진남 목사(예본교회, 한국개혁신학연구원)
  

먼저 오늘 말씀은 지난주에 우리가 함께 읽은 계6:17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바로 우리가 읽은 계7장입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자들은 십사만 사천 명이고, 두 번째로 피할 자들은 바로 흰 옷을 입고 종려가지를 들고 나와 어린양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들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십사만 사천 명이 누구인지? 그리고 흰옷을 입고 나오는 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 그들과 오늘 우리들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과 목사들은 계시록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 명에 대한 이해를 구원 받을 모든 성도들이라고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단들, 특히 여호와 증인이라고 하는 이단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 받는 사람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도 여호와 증인 이단은 십사만 사천 명만 구원 받는다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 십사만 사천 명 안에 들어 있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그런 신앙은 거짓이 분명합니다. 진리를 믿고, 따르면 그 진리 때문에 확신이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단들과 거짓 종교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십사만 사천 명이 과연 누구인지에 대한 바른 신앙적 이해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단 때문에 십사만 사천 명은 모든 구원 받은 사람들을 상징하는 숫자라고 하는 것을 쉽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십사만 사천 명은 신, 구약 모든 시대 속에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숫자를 상징하는 것일까요?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지금에서야 보면 당연히 십사만 사천 명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고 있는 계7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이 이 계시록을 쓸 때 계7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 명은 2천년이 흐리는 동안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 대한 상징적인 숫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왜 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단 한 번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 있는지 고민하지 않습니까? 


물론 교회의 목사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사된 목사들은 아주 주의 깊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세하게 연구하고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고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리는 것은 핵전쟁으로 세상이 끝나는 것이라고 일부 목사들이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아주 전형적인 세대주의 해석입니다. 왜 이런 세대주의 성경해석이 지금도 판을 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요한 계시록이 요한 당시 그가 몇 천 년 후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오류가 계속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날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이 본 하나님의 심판은 곧, 아주 빨리 일어날 일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은 계7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일곱 개로 인봉된 두루마리를 취하시고 6번째 까지 인을 떼시고 난 이후 일곱 번째 인을 떼기 직전에 나오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6장의 말씀은 하나님과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신다고 하는 것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 심판의 대상이 바로 유대교와 로마제국입니다. 먼저 유대교 즉 옛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천지가 갈라지고 그리스도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은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하는 계시였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얼마나 신실한 분이신지 우리들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옛 언약의 백성들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유대인으로 예수를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인들이었지만 예수를 믿고 따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 듣고 배운 말씀을 기억한다면 사도들이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한 자들이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끝까지 예수의 이름으로 전하고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제사장 무리들과 일부 유대인들은 주 예수를 자신들의 구주로,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였지만 그도 역시 할 수만 있으면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와서 자신들을 구원하여 줄 것이라고 늘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이 바로 예수가 메시아라고 하는 것을 믿었습니다. 사도들이 나타낸 표적들과 복음을 통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에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구원이며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13:1을 보면 그 날에 죄와 더러움에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 이라고 하는 히브리어는 마코르입니다. 이 단어는 , 눈물, 혹은 피의 원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는 바로 죄를 씻음 받은 원천입니다. 다윗의 집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예언입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 구원의 은혜를 누린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스가랴의 이 말씀은 미래의 사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속히 이루어질 현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황소나 동물의 피로 깨끗함을 입지 못합니다. 제사장들이 드리는 피의 제사는 단 번에 사람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유대인들도 알았습니다. 그러니 날마다 제물을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이스라엘은 죄를 용서받고 깨끗함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스가랴의 예언의 핵심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위한 예언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은 메시아가 오실 때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임합니다. 각종 나무에 바람이 분다는 것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각종 나무는 사람의 이미지 이고, 바람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각종 나무에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심판을 늦추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구원 받을 사람들의 숫자에 대하여 들어보니 그 수가 이스라엘 각 지파 가운데 12,000명씩 십사만 사천 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이방나라를 심판하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예수를 믿어 구원 받아야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실제로 십사만 사천 명만 이스라엘 가운데서 구원 받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 받아야할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예수님과 사도들이 늘 말씀하셨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을 남은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수가 십사만 사천 명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그 심판을 피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 입니까? 바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때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요한은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도 알았습니다. 당시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 계시의 말씀이 큰 위로와 복음이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포위되고 불타고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은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믿는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인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의 남은 유대인들은 구원을 받고 참 이스라엘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피할 자들이었습니다. 마르셀리우스 킥이라는 사람이 말한 것을 보면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어갈 때 가장 현저한 일은 그리스도인들의 기적적인 도피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갈 때 그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 사람의 말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지켜주신다고 하신 그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성도는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항상 승리합니다. 


이제 요한은 두 번째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바로 이방인들 가운데 예수를 자신들의 구주로 믿는 자들입니다. 요한은 9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남은 자들 즉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하는 찬송과 경배를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요한이 보고 있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바로 이방 가운데서 구원 받은 자들입니다. 모든 나라 가운데 예수를 믿는 자들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예수를 믿는 자들만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이방 나라 가운데서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두려운 심판에서 벗어나는 자들은 결국 이스라엘 가운데서와 이방 가운데서 오직 주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믿는 자들입니다. 천사가 이들에게 인을 친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을 쳤다고 하는 것은 성령으로 인을 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후1:21-22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인을 치시고 보증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우리에게 인을 치실 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을 치시지만,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실 때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데 그 때 그 보호에 대한 보증으로 인을 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예루살렘만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로마제국과 그 주변의 모든 백성들에게도 심판이 내려졌습니다. 그럴 때도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십니다. 요한은 셀 수 없는 수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 수가 너무 많아 능히 셀 수 없다고 합니다. 요한이 보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방지역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2,000년이 지났습니다. 2,0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저 천상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하고 경배하겠습니까? 영적인 피조물인 천사들과 환난 가운데 믿음을 지키고 나온 사람들 즉 장로들이 얼굴을 보좌 앞에서 엎드려 대고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것이라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엎드려 기도하고 엎드려 존귀를 표하는 것은 우리 신앙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릎을 꿇거나 엎드리는 것은 우리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라고 하는 것을 주님 앞에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 교만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러한 행동이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기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우리는 영적인 피조물들도 엎드리는 것처럼, 우리 자신도 엎드려 주님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제국 당시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구원자는 네로황제이시다모든 로마시민들이 네로를 그렇게 칭송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로마와 이스라엘 민족과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오직 하나님과 그의 아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 신앙의 고백은 후손들에게도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들이 이렇게 환난과 순교의 상황 속에서도 이 신앙고백을 가지고 살았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들도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고만 해야 합니다. 다른 신들과 다른 피조물들에게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저주가 내려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 구약시대에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일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12사람을 가나안으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 때 갈렙과 여호수아만 빼고 다른 정탐꾼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거대하고 그 백성들은 강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은 메뚜기 같이 연약하다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보고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갈렙과 여호수아를 빼고 그들을 심판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가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긍정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자고 하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을 내리신 것은 그들이 지금 누구를 믿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라고 하는 전능하신 분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의 구원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 신앙고백을 버린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 이십니다. 다른 신들과 피조물은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구원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받은 자들이 큰 환난 가운데서 셀 수 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말씀처럼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들과 같이 셀 수 없이 그렇게 번성하신다고 하는 그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큰 환난이란 다름 아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이스라엘이 멸망당하는 큰 환난이었습니다. 이 큰 환난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환난 이었습니다(환난의 독특성-옛 언약 백성들을 심판하심). 그러나 이 큰 환난을 이기고 나온 자들이 한 둘이 아니라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당연히 모든 자신의 백성들을 다 아십니다. 아무리 많아도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요한은 자신이 그 수를 셀 수 없다고 합니다. 100년도 안된 시간 동안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수도 셀 수 없다면 2,000년 동안 시간이 흘러오면서 주 예수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은 성도들의 수는 도저히 인간 편에서는 셀 수 없는 무리들입니다. 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더 이상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고 그 어떤 피조물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영원한 생명수를 마시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께 찬송과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세세토록 노래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현대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말씀가운데 십사만 사천 명에 대한 바른 이해를 문맥을 통해 바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비록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받고 멸망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 속에서 자신의 아들을 믿는 거룩한 백성들을 남겨두셨고 단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혈통적으로 유대인이지만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서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이 천상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지상에서는 여전히 혈통과 민족을 구분하고 자신들이 모이는 교회를 최고로 여기지만 천상에서는 더 이상 민족과 혈통과 지역을 따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 하나님과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을 경배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두려운 심판을 능히 피할 수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임할 죽음과 심판에 대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결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지키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입술과 마음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믿음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 <현대 칭의론 논쟁>이 있다.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332&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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