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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21문답 해설 - by 박동근 목사

박동근목사(안양)

by 김경호 진실 2017. 5. 3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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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21문답 해설 - by 박동근 목사

(안양 한길교회 오후 예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기도가 믿음의 최상의 실천이란 의미를 다룬바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대상으로 합니다. 참된 믿음이란 그 믿음이 참된 대상을 관계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믿음의 실천이기 때문에, 믿음의 대상에 대한 지식과 확신과 신뢰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참된 기도를 드리기 위해 반드시 다음의 두 가지 지식과 확신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 지식과 확신 없이 기도는 불가능하고 기도를 드린다하여도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기도가 되고 맙니다. 무엇이 기도를 가능하게 할까요? 어떤 확신이 우리를 기도에 몰입할 수 있게 할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첫째 근거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는 확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유를 얻었다는 확신 없이 기도드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유로이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을 주시기 위하여 기도할 때, 가장 먼저 “아버지여”를 부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하나님께 접근하려는 것을 가로 막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은 죄악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인 죄책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한 후 그분의 낯을 피하기 시작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단절시킵니다. 죄는 하나님의 낯을 두렵게 만듭니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가 죄인의 머리 위에 머물게 됩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 큰 수치를 느껴 그 앞에 서지 못하게 됩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인간은 원수가 되고 서로 불화하게 됩니다.

(창 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판자가 되시는 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접근 금지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 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사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복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나님과 화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와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더군다나 우리와 같은 죄인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간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영혼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공로로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받은신 형벌의 피와 우리 대신 모든 율법을 완전히 지키셔서 획득한 공로로 우리의 죄책을 도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핏 공로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진노와 정죄를 거두시고, 기꺼이 우리를 의인으로 여기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주시는 한,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의 관계에 들어갑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판자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대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 우리를 봐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어주시니 그분은 우리를 선한 것으로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고 보호해주십니다.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내려 주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주하신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우리 심령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확신하고 부르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확신하고 부른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다는 의미와 같은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아버지로서 오직 선한 것으로 우리에게 내리시며, 선하게 우리를 대해주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곧 우리의 선하신 아버지로 믿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 가르쳐 주신 말씀의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선하신 아버지로 알고 확신하는 일, 곧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이 우리를 선히 다루어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기도에 있어 몹시 중요한 사안이라면, 우리는 이제 기도의 근거가 되는 의식의 절반을 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 하나님의 선하심 외에 우리가 또 알고 확신해야 할 기도할 수 있는 근거의 또 다른 절반을 이야기 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기도의 근거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지식과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하게 대해 주시고 선한 것으로 내려주시는 아버지가 된다는 의식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선한 아버지가 되어주신다하여도, 선하심만으로 기도의 응답이 주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선하신 아버지라고 하여도, 그 아버지에게 능력이 없다면 약속은 성취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과 완전하심을 기도자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아버지” 앞에 “하늘에 계신”이란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하늘에 계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선한 아버지이시되, 무한한 능력, 초월적 능력을 지니신 아버지란 사실을 상기시켜 주시기 위한 수식어입니다.

세상에는 선한 아버지들이 많습니다. 모든 아버지들이 자식에 대하여 선한 마음을 가지고 대하며, 선한 것을 주기를 늘 소원한다고 하여도, 육신에 속한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마음만 앞설 뿐 그 선함을 실행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에 속한 아버지들은 선한 마음을 자녀에게 향하고 있더라도, 유한하고 연약한 한 인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능력이 부족해 자녀들에게 모든 선한 것으로 채워줄 수 없는 것입니다. 선함도 중요하지만, 능력도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이 되시고,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두 요소를 다 갖추셨습니다. 그분은 선하시되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이렇게 부르며 기도하라 가르쳐 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시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갖을까요?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섭리시며 다스리시는 초월자란 의미입니다. 여기서 하늘은 물리적인 하늘이 아닙니다. 이 하늘은 땅을 넘어서 계시며, 물리적 하늘을 넘어선 하늘에 계신 분이시며, 천사와 죽은 자들의 영이 있는 그 하늘까지도 다스리시는 그분보다 더 높은 것이 없는 그런 하나님이시란 의미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능력은 만물에 속한 것일 수 없는 것입니다. 만물을 무에서 창조하시고 오로지 그의 능력으로 그 만물을 운행하시며 다스리시는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땅에 속하지 않은 초월적인 능력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 계시는 가장 높은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천상의 하늘과 물리적 하늘을 하나님께서는 다 다스리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시편 2:4절에서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려하는 이방 나라와 민족들이, 그리고 세상에서 높다하는 권세자들과 관원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던지신 말씀입니다. 시편 115편 3절은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리적 땅을 넘어, 물리적 하늘을 넘어, 하늘의 하늘에 계신 초월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은 단지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능력과 무한한 속성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만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땅과 하늘, 그리고 하늘의 하늘 어디에나 계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계시지 않으신 곳이 없습니다. “(대하 2:6)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땅과 하늘과 하늘의 하늘까지도 초월하시는 무한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피조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이시기에 우리의 기도를 그분의 뜻 안에서 언제든지 성취하시고 응답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아니시고 땅에 속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이해나 지혜나 능력과 같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다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그분은 무한하시고 우리는 유한하며, 그분은 전능하시나 우리는 유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을 때, 이런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온전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도의 법칙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 곧 그분의 숭엄하시고 존엄하심을 응시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름들을 알려주셨으나 그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어 자신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름이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무한한 속성을 인간의 언어로 담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은 하나가 아닌 여러 이름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고, 그 이름들은 하나님을 우리가 이해하기 용이한 방식으로 낮추어 알려주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본질을 우리가 알 수 없고 우리는 다만 그분의 다양한 속성의 영광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 뿐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어떤 존재 앞에 우리가 나아가 서 있는지를 깨닫고 직시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간구할 때, 그것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직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영광을 우리는 기도 가운데 바라보고 높이고 찬양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하신 아버지는 이렇게 두려우리만치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분은 선하실 뿐 아니라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로마서를 봅시다.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약속은 그렇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확고한 토대위에 주어진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토대로 세워진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주신 약속은 변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도 미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귀와 악인들과 세상의 모든 세파도 하나님의 약속과 그것을 성취하시고자 하시는 그분의 의지를 흔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드린 기도는 응답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토록 선하신 아버지요, 능력이 무한하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면서, 그분의 응답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입니다. 기도하면서 그분의 뜻의 성취와 응답을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무한한 영광의 능력을 무의식적으로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분명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능력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선하심과 능력을 진정 확신하게 되었다면, 그분의 응답 또한 믿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런 기도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또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고,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한, 우리는 모든 것을 이기고 하나님의 보호와 응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고 이런 확신 속에서 기도할 수 있는 성도가 된다면, 마귀도, 죽음도, 어려운 환란도 다 이기고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자는 심지어 핍박자 앞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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