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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7:1-14]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박석중목사(대전)

by 김경호 진실 2017. 6. 18.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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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7:1-14]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14절에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했는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다윗의 신앙고백인 동시에 본 시편의 제목입니다.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했는데, 다윗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두려울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본능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잘 사용하면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두려움으로 인해 위협받고 모든 방면에서 위축되게 됩니다. 실수하고 실패하게 됩니다.

 

다윗이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수한 역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빛과 구원과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담대해진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경험한 고난과 시련들이 있고 대개 이런 고통을 누가 당해봤을까? 누가 내 마음을 알겠는가?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다윗과 같은 고통을 당한 자도 드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전군대를 동원해서 다윗을 잡으려고 추격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쫓는 원수들을 맹수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형편은 한없이 두려워할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더 이상 어려울 수 없고 긴박할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출한 공로자이고, 군대장관이었고, 사울의 사위였던 자인데, 사울이 미움과 시기심과 악령으로 인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을 따르는 자들은 사울의 말만 듣고 다윗을 반역자 취급했습니다. 한 개인이 나라를 대상으로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원수 나라 블레셋으로 망명했다가 그곳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미친척해서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이런 처절한 상황 속에서 다윗이 믿기지 않는 말을 합니다.

 

1. “다윗이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안연함”(3)

 

3下에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안연은 평안과 휴식을 의미합니다. 원수가 에워싸고 있지만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성도는 약하지만 하나님이 계시기에 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이 나라를 상대로 도피하는데도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 확신이 필요하고, 하나님께서 이 확신을 요구하십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사십시요. 국제정세와 국내정세가 불안합니다. 성경대로 난리와 난리 소문이 이어지고 있는 말세지말입니다.

 

성경은 복음이 온땅에 증거되면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했는데,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곳이 딱 세군데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이슬람권과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도 다 무너졌고, 이슬람은 합심하여 기독교를 대적하다가 이제는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공산주의와 이슬람권과 이스라엘이 복음화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국내정세도 사실 심각합니다. 북한이 가진 것이라고는 무기밖에 없는데 언제 사용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실업난이 심각하고, 인구의 고령화는 더 심각한데, 더 큰 문제는 출산율이 낮다는 것입니다. 인구가 줄면 집들이 비고, 근로자들이 줄고, 임금이 올라가고, 공장 문을 닫게 됩니다. 2035년이 되면 4년제 대학의 입학정원도 부족하게 된다고 합니다. 군인도 부족하고, 직장문제, 결혼문제, 질병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걱정스럽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성도는 하나님만 신뢰함으로 안연히 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다윗이 한가지 소원을 구함”(4-6)

 

4절에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오직 한가지만을 구했습니다. 소원이 하나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힘은 단순한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단순한 신앙이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도들에게 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믿고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결혼 잘하는 것, 학식, 좋은 집, 건강, 성공하는 것이 소원일 수 있는데, 그것만 이뤄지면 어떤 경우에서도 안연히 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너무 복잡합니다.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다윗은 일평생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생활의 즐거움을 오직 하나님께만 두었습니다. 다윗은 이리저리 피해다니고 망명생활 하면서도 성전을 사모하고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교제하며 사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니까 보호함을 입어 담대하게 된 것입니다.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며”라고 했는데 다윗은 일생 모든 날들에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하고 지속적으로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라고 했는데, 여호와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충만한 자비와 영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진리는 영원하고, 진리는 참 자유를 줍니다. 다윗이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앙망한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니까 하나님이 모든 원수와 환난에서 지켜주시고 구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담대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소원이 단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소원이 적고 걱정, 근심이 적습니다. 하나님을 못만나니까 걱정, 근심이 많습니다(시편 18:1)(렘 9:23-24).

 

 

3. “다윗이 부르짖는 기도를 함”(7-14)

 

7절에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라고 했는데, 7절 이하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는 단순한 청원의 기도가 아닙니다.

 

한마디, 한마디 절실히 부르짖으면서 기도한 것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간절성과 진실성이 있는 기도이고 주님의 긍휼에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긍휼은 모든 기도하는 자의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마 15장, 막 7장 수로보니게 여인). 각자에게 어떤 어려움과 근심과 두려움이 있는 줄 모르겠지만 숨기거나 외면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시인하는 가운데 주님께로 가져와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면서 주님께 맡겨야 하고, 맡긴 후에는 그대로 될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요. 이것이 믿음입니다(시 55:22).

 

주님은 우리가 어떤 역경에서도 믿음에 굳게 서서 담대히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게 앞길을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기에 불가능한 것이 없고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14절에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환난과 고통 중에 있어도 끝까지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삼상 23장을 보면 다윗이 마온 황무지에 있을 때 그 지방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는데, 그 순간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 본국에 쳐들어 왔다는 보고가 들어오게 되고, 사울은 어쩔수 없이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왜 이 사실을 성경에 기록했습니까? 하나님을 끝까지 믿으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죽어도 끝까지 믿다가 죽으십시요. 이것이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삶 가운데 때로 걱정, 두려움, 염려가 찾아와도 낙심하지 마십시요. 강하고 담대하고 끝까지 여호와를 바라고 또 바라십시요.

 

 

 

대전 탄방교회 이창경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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