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하나님의 나라>
욥기는 고난 이전의 욥의 생활과 그의 성격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욥 1:1-5). 여기에서 욥의 번영은 경건에 기초한 그의 의로움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욥은 결단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정도의 경미한 어조나 세속적인 기분조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녀들의 향연에 참석하지 않는 것 역시 욥의 경건을 해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오히려 욥은 거룩한 평온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혹시 자녀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을지 모르는 일에 대해서조차도 그들을 성결케 할 정도로 경건에 철저했고 민감했다(욥 1:5). 욥은 자신의 경건을 유지함에 있어 그리고 자녀들의 경건을 유지함에 있어 자신의 견해를 강제로 그들에게 주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좀더 고상하고 경건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배려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욥의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에 기초해 있음이 분명하다. 욥은 제사장으로서 모든 악의 세력으로부터 자신과 가족들을 성결케 했으며 이것은 그가 신앙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행위로 보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욥은 그 어떤 악의 결과로부터 구별되어야 했고 악의 공격에서 보호되어야 했다. 이런 논리는 그가 신앙하는 하나님께서 의당히 욥을 그렇게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일반적인 타당성에 기초하고 있다.
심지어 성경에서조차 욥을 찬양하고 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이것은 욥에 대한 어떠한 불손한 생각이나 불경건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그처럼 온전한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는 이 선언이야말로 욥의 진가를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준다.
그러나 비록 완전한 의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관점은 사람들과 다르다. 이것은 욥에게 불순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판단은 그가 비록 완전한 의인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또 다른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완전한 의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또 다른 무엇인가를 내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있는 간격을 보게 된다. 즉 결코 피조물이 건널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어떤 조건으로부터라도 자유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으로부터 구별되시며 모든 것으로부터 초월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가질 수 있는 사고의 능력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욥에게 어떻게 하셔야 한다고 단정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욥기 기자는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옮긴다. 엄숙한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천사들이 도열해 있다. 그리고 고소하는 자도 그 앞에 모습을 보이고 하나님을 알현(謁見)하고 있다(욥 1:6). 이것은 이사야가 본 하늘 궁정에 대한 묘사와 다르지 않다(사 6:1-4). 바야흐로 어전회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하나님은 극구 욥을 칭찬하신다(욥 1:7).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장면인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한 사람을 이처럼 온전하게 평가하신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고소하는 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평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고난으로 욥의 신실성을 입증해 주실 것을 요구한다(욥 1:9-11). 고소하는 자의 이의는 오히려 욥의 신실성을 강조해 주고 있다. 욥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순전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고소하는 자는 결코 욥을 상대로 하나님께 참소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기꺼이 고소하는 자의 제의를 받아들이신 점 역시 욥의 온전함을 돋보이게 한다. 욥에게 거짓된 모양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욥을 고소하는 자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욥 1:12).
여기에서 고소하는 자가 욥에게 고난을 가져다 주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정식으로 승인을 받아야 함을 볼 수 있다. 아무리 고소하는 자가 욥을 증오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욥에게 행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는 고소하는 자의 의도는 틀림없이 악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마침내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송영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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