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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하나님의 승리를 위해 택함 받은 용사였다> 송영찬목사

송영찬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7. 6. 2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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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하나님의 승리를 위해 택함 받은 용사였다>

욥의 애가(욥 3장)와 평행을 이루는 긴 독백(욥 29-31장)에서 욥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최후 진술을 하고 있다. 욥은 마치 배심원 앞에서 최후 판결을 앞두고 마지막 변론을 하듯이 논리를 전개시켜 나간다.


여기에서 욥은 고난 이전의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회상하고(욥 29장) 현재 당하는 어둠의 고통을 호소한다(욥 30장). 그리고 자신의 무고함을 변론하는 것으로 최후 진술을 마친다(욥 31장).


이러한 최후 변론을 통해 욥은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直視)하고 있다. 마치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상황에 눈을 뜨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을 가리켜 욥은 “그들이 나를 기롱한다”(욥 30:1, 9)고 말하고 있다.


욥이 당한 질병과 파멸은 자칫 도덕적 붕괴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동안 그가 누렸던 하나님의 복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렸던 삶의 균형을 파괴당할 수 있는 요소였다. 때문에 지금 그가 당하는 어둠과 고통에 대한 호소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한 자기 자신과의 힘겨운 다툼처럼 보였다.


욥은 사회적으로 멸시를 당하고 있다(욥 30:1-15). 그리고 육체적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욥 30:16-19).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단절되면서부터 시작된 영적인 소외감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욥 30:20-23). 욥은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냉소적으로 묘사한다(욥 30:24-31). 그것은 자신의 실체(reality)를 더 분명하게 내 보이기 위함이다.



1. 욥은 철저하게 주변으로부터 외면을 당했다(욥 30:1-15)



이전에 욥은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로 재판을 행하고, 가난한 자와 억압당하는 자를 대신해 불의와 싸우며, 그 땅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구현되기 위해 전력을 다 쏟았었다. 그러나 지금 욥은 사회적인 적대감과 멸시에 둘러쌓여 있다. 그는 존경 대신 조롱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욥 30:9-10).


그런데 그를 조롱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광야를 헤매던 자들이며, 먹을 것을 찾아 대싸리를 뽑아 먹던 자들이며, 사회로부터 쫓겨나 바위 구멍에서 살던 자들이며, 들나귀 같은 자들이 아니던가(욥 30:3-7). 비류와 같은 그들이 이제 와서 욥을 조롱하고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 그들은 거짓 증언과 교묘한 말로 욥이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했다고 이웃들은 선동하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고통으로 줄이 늘어진 활처럼 쇠약해진 욥에게 그들은 군대처럼 공격해 오고 있다(욥 30:11-14). 그 앞에서 욥은 놀람과 두려움으로 압도되어 있다. 욥은 그들 앞에서 무력한 희생자일 뿐이다. 그들은 함정을 파고 벽으로 포위하고 탈출구까지 파괴했다. 이제 곧 마지막 남아 있는 성벽마저도 돌파되고 말 것이다. 욥은 그 어느 곳에서도 안식과 평안을 찾을 수 없고 마치 바람 앞의 등불처럼 그 생명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30:15). 이것이 지금 욥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다.


2. 욥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욥 30:16-19)



욥은 서서히 꺼져 가는 심지처럼 그의 생명이 소진해 가고 있음을 토로한다. 밤의 냉기는 그의 뼈를 찌르는 칼처럼 끝없는 아픔을 가져다준다. 욥은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옷자락이 잡혀 마치 진흙 구덩이에 던져진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욥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패배한 시체처럼 보일 뿐이다.


온 몸의 악창에서 흘러나온 고름이 말라붙어 옷을 입은 것처럼 될 정도로 욥은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욥은 말 그대로 티끌과 재가 되었다. 이것은 그가 죽을 정도로 심한 고통 가운데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은 후에 티끌과 재 가운데 앉아 회개하는 욥의 모습을 예견하게 해 준다(욥 42:6).



3.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고통을 맛보았다(욥 30:20-23)



욥은 사회적으로 거부당하고 육체적 고통 가운데 점차 쇠약해 가고 있다. 더욱이 지금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당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지켜보아 주심에도 불구하고(욥 7:19-20; 10:14; 13:27) 하나님께 대한 욥의 외침은 계속 무시되고 있다(욥 19:7 참고).


오히려 하나님은 욥의 대적자들이 욥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맹렬한 폭풍으로 욥의 영혼을 소멸시키려 하신다(욥 30:22). 아무리 하나님을 향해 외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더 냉혹하고 무정하게 욥을 외면하실 뿐이다. 욥은 이제 하나님의 손에 끌려 죽음 속으로 내던져질 것이라는 위기를 느끼고 있다(욥 30:23).



4.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승리를 위해 선택한 용사였다(욥 30:24-31)



욥은 자신이 넘어지고 재앙을 당할 때 친구들로부터 위로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오히려 욥을 대적했다. 욥은 가난하고 억압받은 자들과 함께 울었었지만 지금 그에게 돌아온 것은 광명 대신 어둠뿐이었다. 욥은 이러한 자신의 상태를 가리켜 내장이 끊어진 것과 같은 고통이라고 묘사하고 있다(레 4:19). 그리고 이 날을 ‘환난의 날’이라고 부른다.


‘환난’이란 말의 어원은 탈곡하다는 뜻이다. 곡식을 추출하기 위해 바람에 밀을 날리는 과정을 묘사하는 단어이다. 이 말은 예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경고한 말속에서도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눅 22:31). 욥은 곡식을 까부르듯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까불려지고 있다. 결국 그의 모든 기쁨은 슬픔으로 변했다. 그 형편은 마치 장례식에서 부르는 애곡(哀哭)과 같다.


그러나 오히려 욥은 고소하는 자를 제압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전사였다(욥 1:8; 2:3). 지금 욥이 당하는 사회적,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고소하는 자와의 전쟁에서 입은 상처였다. 비록 피를 흘리며 죽음 앞에 직면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고소하는 자와의 전쟁에서 욥은 이미 승리를 얻었던 용사였다(1:22; 2:10). 그러나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마침내 전쟁이 끝나는 그 날에 욥은 승리한 개선장군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날의 찬란한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욥을 용사로 택하신 것이다(요 15:16). 이런 점에서 지금 욥은 환난, 즉 도리깨질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일이 끝나면 그 자리에는 검불이 벗겨진 알곡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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