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속성과 ‘지혜’>
잠언은 크게 1-9장과 10-31장으로 구분된다. 1-9장은 긴 시들을 담고 있으며 이후 짧은 글들의 모음집으로 되어 있는 10-31장에 대한 일종의 서론 또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1-9장의 구조적인 맥락에서 볼 때 1장은 1-9장의 서론 역할을, 2장은 3-7장에서 다루게 될 주제들의 해설과 같은 역할을, 3-7장은 본론 역할을, 8-9장은 지혜에 대한 극진한 찬양으로 결론 역할을 하고 있다.
잠언 2장은 히브리어 알파벳 글자 수와 같은 22행으로 된 시로 하나의 연속된 조건문을 이루고 있다. 특히 2장의 특징은 2장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재차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① 1-8절에서 다루고 있는 지혜를 주시는 여호와에 대해서는 3:1-12에서, ② 9-11절에서 다루고 있는 지혜의 역할은 3:13-26과 4:1-9에서, ③ 12-15절에 나오는 행악자는 4:10-27에서, ④ 16-19절에 등장하는 악한 여인은 5:1-23과 6:20-7:27에서 다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이후에 등장하는 주제들을 2장에서 미리 암시해 주고 있으며 잠언이 여러 지혜 모음집들로 편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언 1-9장이 한 사람의 저자 혹은 편집자에 의해 매우 치밀하게 편집되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 사실은 2:5-8, 21-22가 후대의 삽입이라는 가설(G. Maier)을 일축하게 한다.
1. 지혜의 신적 기원
잠언 1장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지혜는 은밀한 지식이 아니다. 지혜는 공공의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소리 높여 외치기 때문이다(잠 1:20-21). 이것은 지혜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그 분의 길에 대한 보증으로서 사적인 종교적 관념에서 떠나 있음을 의미한다. 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라”(잠 2:2-4)고 권하고 있다.
이 말은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잠 1:20-21)라고 묘사한 내용에 대한 응답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잠언 기자는 사람들에게 숨겨 놓은 보물을 찾듯이 지혜를 찾아 나설 때 지혜를 통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라”(잠 2:5)고 약속하고 있다.
이 내용은 앞서 1장에서 이미 제시하였던 잠언의 저작 목적과 지혜의 성격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잠언 기자가 ‘지혜란 여호와를 경외하기 위한 것’(잠 1:7)이라는 사상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지혜와 명철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결코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다.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욥 28:28)는 욥의 말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지혜와 명철이 함께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함과 악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에서 잠언 기자는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사실을 지적한다. 곧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라”(잠 2:6)는 말씀이 그것이다. 앞서 1-4절에서 잠언 기자는 보물을 찾듯이 지혜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6절에 와서 잠언 기자는 지혜를 주시는 분이 여호와이시라고 하면서 강력하게 지혜에게 이르는 길에 빗장을 걸고 있는 것이다.
지혜에 대한 잠언 기자의 이 두 견해는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잠언 기자의 견해는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잠 1:6)는 잠언의 성격과 비교해 이해할 수 있다. 지혜는 감추어진 사물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불확실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잠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잠 1:20-21). 이 두 묘사는 지혜의 불확실성과 개방성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지혜가 비록 개방되었다 할지라도 그 지혜를 만나고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소리를 높여 간절한 마음으로(3절) 숨겨진 보물을 찾듯이 지혜를 찾아 나서야 한다(잠 2:4)고 강조하였던 것이다.
2.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결정체인 ‘지혜’
지혜는 보물과 같아서 사람들이 쉽게 찾고 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 특성 중 하나가 지혜는 여호와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께서 보여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사람들이 찾으려 해도 얻을 수 없다. 이것은 지혜가 신비로운 존재임을 확인해 준다. 즉 지혜는 마치 베일에 감추어져 있고 하나님께서 그 베일을 벗겨주지 않으신다면 결코 사람들이 찾고 접할 수 없는 보물과 같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들의 노력만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지혜는 숨겨져 있는 보물처럼 아무에게나 접근할 수 있도록 열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비록 공개적으로 지혜가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할지라도 그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지혜를 구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간절히 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3-4절). 그리고 지혜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모든 영혼을 기울여 지혜를 찾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열어 보여 주신다.
여기에서 지혜의 다른 성격이 밝혀진다. 곧 지혜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삶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혜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아니고서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지혜가 하나님 편에서 오는 것이라면 사람 편에서 지혜를 찾는 노력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믿음의 틀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야 지혜를 귀한 것으로 여기고 찾는 마음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께서 성령의 임재와 과련하여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고 하신 말씀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잠 2:6은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다는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혜는 다름 아닌 하나님 경외를 깨닫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모든 지식, 인간의 이성 활동은 하나님 경외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성 활동의 목적은 하나님 경외에 두어야 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여야 한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또는 하나님 경외를 떠나서 만들어낸 지적 추구나 이성 활동의 결과는 이미 진리로부터 왜곡된 것이며 참된 지식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에게 은혜로 지혜를 주시는 것은 지혜를 귀한 것으로 여기고 찾는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주의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의 성취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곧 여호와의 인자하심(??? : 인애)의 결과로 주의 백성에게 지혜를 주시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그는 경건한 자(개역 성경은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신다”(잠 2:7)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경건한 자’와 ‘온전히 행하는 자’라는 단어의 사용은 동질의 내용을 다른 양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자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욥 1:8; 2:3 참고).
마치는 말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 곧 ‘온전히 행하는 자’를 위해 지혜를 주시고 그들의 방패가 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한 면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언약에 참여하는 백성의 상태에 얽매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지만 그 언약의 성취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고 있다.
때문에 백성에게 주어진 언약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처럼, 경건한 자들과 온전히 행하는 자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그들의 방패가 되어 주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이다. 이 사실은 잠 2:6에서 이미 제시한 것처럼 지혜와 지식과 명철의 근원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더욱 부각시킨다. 아울러 지혜 자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으며 하나님 경외를 위한 것이라면 경건과 온전한 삶 역시 하나님 경외와 구별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 곧 ‘온전히 행하는 자’를 위해 지혜를 주시고 그들의 방패가 되어 주시는 목적은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잠 2:8)는 말씀 속에서 확인된다. ‘공평’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합당한 삶을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의 속성으로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경건한 성도(?????)가 의당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하나님은 지혜를 주심으로 자기를 충성스럽게 따르는 자들에게 피난처를 마련해 주고 보호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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