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장 묵상
십계명을 주신 여호와 (출 20:1-2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모세를 통하여서 허락하셨다. 이는 인류 역사에 매우 놀라운 신기원을 이룬다. 왜냐하면 모세가 받은 십계명은 인류가 첫 사람 아담으로부터 잃어버렸던 영원한 하나님의 도덕법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하여서 받은 십계명으로 인하여서 명실공히 하나님 나라에 걸맞는 자태를 갖게 되었다.
십계명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던 그 법의 실체이다. 비록 아담과 하와가 직접적으로 십계명을 명령받고 그것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근원적으로 십계명을 그들의 마음 안에서 파괴시켰다. 그들은 전적으로 타락하였으며 결국 아담 이후에 어느 누구도 십계명을 지킴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생명의 계명이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후에 사망의 계명이 되었다. 정죄의 계명이 되었다. 그러나 십계명은 본래 생명의 계명이었다. 그리고 십계명 자체는 여전히 생명의 계명이다. 다만 그것을 지킬 수 없는 인간이 사망의 상태에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에게 십계명을 주셨는가? 그것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의 법으로서 이스라엘이 받은 것이다. 십계명은 구약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은 이제 옛 언약 아래에서 아브라함 언약이 좀더 구체적으로 성취되어가는 과정을 분명하게 드러내시고자 하심이다. 십계명이 주어짐으로서 이스라엘은 율법 시대에 걸맞는 계명을 얻었다.
이 계명은 매우 중요하다.
오직 이스라엘 나라가 직접적으로 아담의 시대에 상실한 영원한 도덕법을 두 돌판으로 받았다. 모세는 율법의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집에 사환으로 수고하였다. (히 3:5)
그러나 십계명을 성취하시고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충성하셨다. (히 3:6)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계명이 성취되면서 구속의 언약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살려주시는 성령으로 오셨다. (고전 15:45)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자들이 삶을 얻는다. (고전 15:22)
결국 십계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생명에 이르게 하는 법으로서 십계명이 있고 그 십계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는 모든 인류가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신 칭의 교리는 이렇게 율법과 연결해서 온전하게 이해가된다.
율법을 버리면 믿음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율법은 믿음의 예비 과정으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이신 칭의 교리는 이렇게 율법의 완성으로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교리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 1장 17절 본문은 율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그 율법을 완성하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부르셨다.
다만 결코 어느 누구도 율법을 행함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속죄의 은총을 받는다.
십계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영원한 도덕법으로서 신자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당위법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영원한 도덕법이다.
그렇게 시내 산에서 모세가 받은 십계명은 하나님의 구속사가 점차적으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하여서 십계명을 수여 받음으로서 아브라함 언약 이후에 사백 삼십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은혜 언약의 실체가 조금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다만 모세를 통하여서 주어졌다는 것과 그것조차도 은혜 언약의 예표와 모형이라는 것이다.
십계명은 은혜 언약의 실체를 비추어주는 모형과 그림자였다.
그래서 십계명은 매우 중요하다.
그 열가지 계명의 두 돌판은 구약 전체를 해석하는 구조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 앞에서 지속적으로 학습한 거룩한 교리이다.
그리고 거룩한 교리는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사들과 담화하시면서 분명하게 드러내셨다.
십계명의 두 돌판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압축된다.
그래서 두 돌판은 두 계명이다. 예수께서 한 율법사가 시험하여서 문의하였던 그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서 분명하게 십계명의 두 돌판의 의미가 드러났다.
한 율법사의 질의는 이것이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마 22:36)
그러자 예수께서 답변하셨다.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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