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장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이 신앙의 정수다 (찬 197)
1. 2~6장은 요시야의 예배 개혁(요시야 통치 18년, 주전 622년에 시작된) 이전에 선포된 말씀일텐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내용을 다룬다. 본문은 과거 광야 시절 말기 출애굽 2세대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섬겼는가를 ‘청년 때의 인애’와 ‘신혼 때의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회상으로 시작한다(2~3). 그들은 씨 뿌리지 못하는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좇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이셨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나님은 따져 물으시며(4~8) 그들과 다투겠다고 말씀하신다(9). 다른 민족들은 우상을 섬기면서도 그것을 귀중히 여기는데, 왜 이스라엘은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늘 무익한 것들과 하나님의 영광을 바꾸는지 물으신다(11). 결국 하나님의 고소장이 지적하는 두 가지 죄는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물을 담아둘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다(13). 그들은 흐르는 생수 대신 웅덩이의 고인 물을 원했다. 그것도 물을 담아둘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말이다. 하나님 대신 자기 능력—애굽이나 앗수르를 의지하는—을 신뢰한 것,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대신 율법으로 자기 의를 쌓은 것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2. 이스라엘의 고통은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떠난 결과다. 그들이 팔려온 종 혹은 태생이 종(씨종)이었었던가? 아니다(14). 그런데 왜 그들이 포로가 되었는가? 앗수르를 피하려고 애굽에 붙었지만 결국 앗수르의 종에서 애굽의 종이 되었을 뿐이다. 놉(멤피스)은 애굽의 옛 수도였고 다바네스는 애굽의 동쪽 국경 북쪽에 위치한 애굽의 성이다. 놉과 다바네스가 정수리를 상하게 했다는 말은 ‘머리를 빡빡 깎았다’는 의미로 노예를 상징하는 말이다(16). 원인은 그들 자신에게 있다.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악이고 고통이다(18~19).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반항적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율법을 멍에라 여기고 그것을 끊어버리고 자유를 얻겠다고 떠들더니 결국 이방 우상 종교에 빠져 행음을 일삼는 영적 간음을 하게 되었다(20~21). 이들의 죄악은 잿물이나 비누로도 씻겨질 수 없다(22). 이스라엘은 발정이 올라 숫놈을 찾는 암나귀처럼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좇았다(23~25).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 얼굴을 돌리는 경우는 오직 그들이 환난 가운데 처할 때 뿐(27),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칼로 죽임으로써 하나님을 대항했다(29~30).
3. 이스라엘의 문제는 하나님을 길 없는 광야나 위험하고 캄캄한 흑암으로 여긴 것이다(31).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얻겠다고 한 것이다. 손에 피를 묻히고 치장만 하고 살면서도 자기들은 죄도 없고 진노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33~35).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는 세력을 버리심으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36~37).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광야나 흑암으로 여겼고 율법을 멍에로 여겼기에 하나님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그 결과로 고통을 겪게 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이 신앙의 정수다.
4.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영원토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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