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34-39] “자기 십자가”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본래 십자가는 죄수를 죽이는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사형도구로서 고통과 저주의 상징인데,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38).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많은 기대와 소망을 갖고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심”(34)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화평을 얻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로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34). 화평은 히브리어로 “샬롬”인데, 마음의 평안, 이웃과의 원만한 관계, 하나님과의 화평, 가정의 번영과 건강, 물질적인 축복, 만족스러운 생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주님과 같이 지혜와 능력을 갖춘 분을 왕으로 세우면 만사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사람들을 향해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하시니 다 물러갔습니다(요 6:26).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신의 소망과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지적하시니 다 물러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당시에 갈릴리 지방에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다라는 자가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는데, 로마 장군 마리우스가 반란자들을 죽이고 포로된 자들을 십자가에 매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길거리에 세워진 수많은 십자가를 봤는데, 그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엑세서리가 아닙니다. 신자가 죽으면 무덤에 십자가 비석을 세우는데, 십자가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봉사, 구제, 사랑을 의미합니다(병원, 적십자). 십자가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옛사람이 죽은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에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모습이자 자세입니다.
2. “자기 십자가란 어떤 것인가?”(35-36)
십자가는 예수님을 따르거나 말씀을 순종할 때 오는 시련, 고난, 핍박, 손해, 환난 등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고 따르는 생활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고, 그의 삶을 본받고 순종하려고 하면 반드시 십자가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딤후 3:12).
그런데 십자가의 의미를 잘못 알면 안됩니다. 자기가 병들어 고생하는 것, 경제적으로 어려움 당하는 것, 물질적으로 일반적인 고난을 당하는 것, 욕심으로 사업을 크게 벌였다가 실패해서 어려움 겪는 것, 실수로 욕먹고 비판 받는 것을 십자가 진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주님을 순종할 때 오는 것입니다.
왜 십자가가 있는 것일까요? 세상이 하나님을 거스리고,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마찰이 옵니다. 그러나 교회 다니고 예수님을 믿어도 불순종의 삶을 살면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십자가가 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34下에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했는데, 검은 분쟁을 가리킵니다. 신앙과 진리 문제때문에 분쟁과 다툼이 일어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달은 대로 순종하려고 하면 믿지 않는 자들이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대개 반대가 들어옵니다. 같은 신자라고 해도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을 믿음 약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유별나게 믿는다’고 말합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면 한 가정에서 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35-36). 부자간, 모녀간, 고부간 불화가 일어납니다. 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믿음이 살았다는 증거이고 주님을 따르려는 거룩한 욕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혈친(血親)보다 귀한 것입니다. 집안 식구가 반대하고 원망불평해도 진리대로 걸어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 신앙을 양보합니다. 이것은 진리와 십자가를 버린 것이고, 마귀에게 굴복한 것입니다. 신앙을 양보함으로 잠시 화평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화평은 배부른 사자가 낮잠 자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자가 배불러서 낮잠을 잘 때 초식동물들이 사자 주변에서 두려움 없이 풀을 뜯어 먹습니다. 하지만 사자가 배가 고파지면 그 화평은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참된 화평은 십자가가 와도 잘 참고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심으로 주시는 능력과 지혜로 얻는 것입니다. 진리대로 걸어갈 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십자가는 고난만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가 크면 클수록 영광도 큽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빌 1:22).
사도바울은 믿음 때문에 욕먹고, 매 맞고, 미움 받고, 손해를 보는 어려움을 당했지만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걸어갔습니다(딤후 4:8). 믿음 때문에 시련, 어려움, 손해, 미움을 받았다면 영광과 상이 있습니다. 죄많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은 어짜피 고생입니다. 세상적 성공을 위해서 온갖 고생을 해도 영광이 없지만 십자가 뒤에는 영광이 있습니다(롬 8:18). 십자가는 끝이 아니고 새로운 생명과 능력과 소망의 시작입니다.
3.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인가?”(37-39)
①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부인이란, 자기 뜻과 지식, 경험, 고집, 생각을 거절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고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자기 경험과 지식과 맞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하면 물질적 손해, 가까운 사람에게 미움 받고 무시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생겨납니다. 십자가는 자기 신뢰, 교만, 욕심, 안일주의와의 싸움입니다. 예수 믿고 따르기 위해서 버리는 아픔이 있는데 그 아픔이 십자가입니다.
때로는 좋아하는 것을 멀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죽이는 아픔과 고통이 십자가입니다. 진리를 따르는데 있어 가족을 미워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37)(눅 14:26). 그래야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미워해야 하는 순간에 사랑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내 것, 둘 다 사랑할 수 없을 때가 오는데, 그러면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선한 일, 의로운 일을 하려면 희생이 필요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려면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36).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집안 식구가 원수라기보다 미워해야 할 순간에 미워하지 않는 내 자신이 원수라는 것입니다.
원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습니다. 믿음 양보하지 않아야 할 때 양보하는 나 자신이 원수입니다.
②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39절에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잃어버리는 것이고 죽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요 12:24).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고전 15:31).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음을 위해서 매일 죽는 생활을 했지만 땅의 보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십자가와 그 뒤에 있는 영광만 바라봤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셨기에 주님께 순종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절대 충성입니다. 살자니 문제가 많고, 죽을 각오를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죽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매일 매일 주님 말씀 따라가는 십자가의 길은 쉽지 않지만 그 결과는 영광과 상급입니다. 주님께서 이 길을 걸어가셨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십자가의 길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소원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면 주님의 뜻이 이뤄지고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영적 생명이 자라나고, 영적 즐거움과 자유가 따라옵니다. 십자가를 지는 순간은 괴롭지만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과 위로가 큽니다. 진리를 따름으로 주님의 참 제자가 되야 하겠습니다.
대전 탄방교회 이창경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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