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23-33] “풍랑을 바라봄”
본문은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가다 강한 바람과 파도를 보고 두려워함으로 물에 빠지는 경험을 한 것을 기록했습니다. 물위를 걷는 것은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이적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물위를 걸을 수 있었고, 물위를 걸어가던 베드로가 왜 물에 빠지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예수께서 산에 기도하러 가심(22-23)
예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자신보다 먼저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자기를 둘러싼 무리들을 돌려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22-23). 그 이전에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요 6:15). 이것은 예수님에게 큰 시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우리와 동일한 인성을 가지신 사람이기에 유혹과 시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스타의식이 있어서 인기 있는 것, 인정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인기에 영합하다보면 사람의 여론을 민감하게 생각하고, 사람을 크게 여기게 됩니다. 믿는 사람도 인정받고 칭찬받으면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인기를 더 끌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사람에게 메이게 되는 것입니다(사울왕).
주님이 이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인류구속이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것이지, 왕이 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다 돌려보내시고 조용히 산에 기도하러 가셔서 해질 때까지 기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세상 것들, 인기, 명예, 권력, 재물 등은 작게 보이게 됩니다. 반대로 마음이 주님을 떠나면 세상 것들이 크게 여겨지고 의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셨지만 특별히 무슨 일을 시작할 때와 큰 일을 마쳤을 때 기도하심으로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2. 광풍과 파도가 일어남(24-27)
어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갑자기 부는 돌풍인데, 갈릴리 바다의 광풍은 아주 유명했습니다. 갈릴리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바다로, 지중해보다 210미터가 낮은 위치에 있고, 주변으로 높은 산이 솟아 있어서 바람의 통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광풍을 만나서 힘써 노를 져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육지와도 멀리 떨어져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밤 사경(새벽 3-6시)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제자들이 광풍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줄 아시고 그들을 도우시려고 물위를 걸어오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자연법칙을 초월하실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사람이 물위로 걸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물위로 걸어오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소리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밤새도록 광풍과 파도와 싸우느라 고생하고 있을 때 주님이 찾아와서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시니 주님의 음성을 듣고 제자들은 기뻐하며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밤새 고생하는 것을 주님이 다 아셨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때 찾아와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고난과 시련을 당해도 주님은 다 아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이것을 아는 자가 기도하고,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는데, “내니”는 “나는 나다”, 즉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출 3:14).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주요 주관자이시기 때문에 물위를 걸어오실 수 있고 역풍도 잔잔하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두려울 때, 어려움 당할 때, 고통 중에 있을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요.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제자들의 마음에 화평이 들어왔습니다.
3.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음(28-29)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는 것을 본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합니다(28). “만일 주시어든”이라고 한 것은 베드로가 주님을 의심해서 한 말이 아니고 주님을 새롭게 발견하고 감탄해서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신기하고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기도 물위를 걷고 싶은 마음에 대담하게 기도한 것입니다(요 14:12).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곧 배에서 내려 예수님을 향해 물위를 걸었습니다. 먼저 “오라”는 주님의 명령이 있었고, 그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서 물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이 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서 말씀대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괴롭히던 고통의 바다를 딛고 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물위를 걷게 하신 목적은 생명 있는 신앙이 무엇인가 보여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생명 있는 신앙은 모든 시험과 고통과 고난을 딛고 걷게 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요일 5:4). 참된 안식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절대 믿음이 있는 곳에 안식이 있습니다. 주님을 절대 신뢰하십시오. 베드로의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에서 나왔습니다.
첫째, 믿음은 깨달음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새롭게 깨달았을 때 믿음, 용기, 순종이 나왔습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시대를 무론하고 참으로 주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위대한 믿음을 가졌고 용감했습니다(다니엘, 다윗).
참으로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죽음, 걱정근심, 죄와 죄책감, 미래의 염려에서 자유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참된 지식과 깨달음이 믿음을 일으켰고, 그 믿음이 용기와 순종을 생산했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습니다(빌 3:8).
4. 베드로가 물에 빠짐(30-33)
만사가 순조롭고, 은혜롭게 잘 되는 것 같았는데, 칭찬받을 믿음이 부끄러운 믿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걸어가는 도중에 강한 바람과 파도를 보고 무서운 마음이 생겨서, 파도가 나를 삼키지 않을까 의심하자마자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진 것은 주님을 바라보고 따라가다가 한 눈 팔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믿음은 모든 것에 주가 되시는 예수님 한분만 바라보고 따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바라보고 붙잡을 때 물에 빠졌습니다. 물은 시험, 환난, 세상을 가리킵니다.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는 것이 많은데,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 새힘을 얻게 됩니다(사 40:31). 믿음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셋째, 믿음은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물에 빠진 베드로를 건져주시면서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적은 믿음이 두려움과 의심의 입구로 인도합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의심도 있는데, 믿음이 크다는 것은 의심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이 있었기에 바다 위를 걸었지만 파도를 바라볼 때 의심이 생겼고, 그것이 믿음보다 커지고 마음을 지배하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끊어져버려서 물에 빠진 것입니다. 주님을 끝까지 전적으로 의지하고 바라봐야 합니다. 주위를 바라보지 말고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사랑과 보호하심과 약속와 능력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에 대한 의심이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입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는 시험과 고난 중에서도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라고 했습니다(욥 13:15).
오늘 말씀은 성도가 신앙으로 어려운 일에 승리하지만 작은 의심으로 실패하게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과 능력을 믿고 끈기 있게 인내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본질과 실상은 시련과 유혹과 고난을 당할 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의 믿음을 평상시에는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은 함부로 판단하거나 자랑하면 안됩니다.
참 믿음은 사용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믿음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참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앙인격이 참 믿음입니다. 믿음은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순종을 통해서 자라나고, 가끔 오는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깨끗해져 갑니다. 말씀을 배우는 이유는 어려움이 올 때 배운 말씀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베드로가 물위를 걸으려고 하면 못 걷습니다. 주님이 명령하시고 믿고 순종할 때 물위를 걸었습니다. 인생의 항해를 할 때 이런저런 풍파를 만나게 되는데 주님 바라보고 주님께 부르짖고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으면 새 힘을 주셔서 풍랑을 딛고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대전 탄방교회 이창경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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