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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2:12-13. 하나님을 따르자!

인도

by 김경호 진실 2018. 7. 2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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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산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가는 삶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시절을 따라 과일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풍성한 것 같은 삶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요한복음10:10)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12-3)한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의 약속이고 이 약속은 변함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엄청난 기다림과 하나님의 역사 개입 그리고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통해 일어났다. 이렇게 우리를 부르시는 과정을 바울은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로마서8:30)다고 말한다. 출애굽과 광야에서의 삶은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는 모습이다.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그렇게 긴 시간을 참으시고, 그렇게 놀랍게 부르시는 자들의 삶에 개입하셨고, 그렇게 큰 역사하심을 따라 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언제나 이런 약속에 문제를 제시하는 것은 우리가 부닥치는 삶의 현실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현실에서 만나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원리를 출애굽의 과정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지금 우리를 압제하는 애굽의 권력 앞에 서있고, 우리는 광야의 삭막한 환경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현실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바탕은 언제나 하나님의 동행하심이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제나 동행하셨다.

2. 미가는 유다의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로 이사야와 동시대의 선지자였다. 따라서 미가 선지자의 시대적 배경 역시 암울한 현실 앞에서 근동지역의 패권을 잡은 앗수르의 남하정책과 앗수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하여 각기 다른 계산을 하는 나라들과의 갈등으로, 그리고 나라의 지도자들의 영적인 타락과 도덕적인 타락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의 희망을 잃고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때에 미가는 활동했다. 따라서 미가의 멧세지는 유다의 심판에 대한 멧세지이다.

유다 백성들은 모두 절망의 한 가운데 있었다. 앗수르를 대항하자고 일어선 북쪽 이스라엘과 다메섹의 연합군이 그들을 절망시켰고, 강대해진 앗수르를 의지하려는 아하스의 국제 정책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결과를 얻게 된 상황이 절망스러웠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은 점차적으로 멸망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고, 그런 북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남 유다 백성들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때 하나님은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미가2:12)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야곱은 12지파를 상징한다. 따라서 모든 것을 빼앗고 억합하는 유다의 통치자들로부터 남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모아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미가2:12)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그들은 단수로 문법적으로는 많은 사람 하나 하나를 강조하기 위한 분산적 용법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참된 이스라엘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요한복음1:13)이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권세를 얻은 자들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로마서9:27-28)라고 이사야를 인용해서 말하고 있다. ‘한 처소는 장소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단결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날에는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미가서2:13)게 된다. 여기서 길을 연다는 말은 원수같은 자들의 포위망을 터치고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포로 된 자들에게 혹은 억눌린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을 상징하며, 아람어로 번역된 탈굼같은 성경에서는 길을 여는 자를 메시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 메시야는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13)로 행하신다. 메시야는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이사야42:7)하는 자이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심으로 우리가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메시야는 우리에게 빛으로 다가오시는 분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하나님 여호와는 앞서서 나가신다.

3.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행하신다. 우리가 삶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보지 못하고 헤메는 순간에서도 혹은 미가시대처럼 주변의 여러 정황이 우리를 힘들게 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잊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고, 우리를 한 사람 한사람 소중하게 여기시며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다.

하나님은 광야시대에도 이스라엘과 구름기둥과 불기등으로 동행하셨다.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때도 하나님은 앞장서 섰다. 여호수아에서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 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여호수아3:3-4)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백성들과 함께하셨고, 우리는 이제 수련회를 통해 우리보다 앞서 나가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수련회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선교회 대표)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916&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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