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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4:10-20] “의인은 다시 일어난다”

박석중목사(대전)

by 김경호 진실 2018. 8. 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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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4:10-20] “의인은 다시 일어난다”
1. 환난 날에 죽게 된 자를 건져주라(10-12)
10절에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고 했는데 사람이 환난을 당해야 자기 약함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평탄할 때에는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교만하게 되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막상 역경에 처하면 인생의 무기력이 드러나서 낙담합니다.
사람이 자기 약함을 알아야 겸손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성도들이 믿음생활을 바로 해보려다가 잘 안될 때 낙심하는데, 끝까지 버리지 않은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삼상 30장).
환난을 만났습니까? 환난의 중심부와 배후에 하나님이 계셔서 환난을 뚫고 나갈 힘을 주십니다. 환난 중에 그 사람의 믿음의 상태와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도는 아무리 큰 환난을 당해도 피할 길이 있습니다.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환난이 커서가 아니라 피할 길로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의 피난처입니다. 어려움 당할 때 말씀의 인도를 받으면 용기를 얻게 됩니다. 환난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말씀대로 서야 합니다.
11절에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고 했는데, 가난한 자, 약한 자, 어려움 당한 자, 질병, 기근, 전쟁 등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자를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무관심과 무책임의 시대입니다. 나와 직접 관계가 없으면 무슨 일이 생겨도 상관하지 않습니다(눅 10장 강도만난 사람). 무질서, 무관심, 무책임은 죄입니다(약 4:17).
우리는 남을 살리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성도가 남에게 해를 주고 죽이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기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위한 정신을 버리고 남을 살리는 정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육신적 어려움을 당하는 자를 도와주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우선해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은 마귀에게 붙잡혀서 사망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들을 건져 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몇 번만 권면하고 듣지 않는다고 전하지 않는다면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권면해서 살려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을 참으로 도와주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권면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입니다(겔 3:17-19). 따라서 신적 권위가 있습니다.
2. 꿀을 먹는 자가 소망이 있다(13-14)
꿀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시 19:10).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꿀과 같이 달게 받아서 그 말씀을 지혜로 삼고 지식으로 삼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 받는 길을 배우는 것입니다. 복을 기다리지 말고 복 받는 길로 걸어가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처럼 배운다는 것은 진실하게 심령 깊이 믿는다는 말입니다(렘 15:16). 중요한 것은 말씀에서 단 맛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린 자에게 음식이 더 맛있는 것과 같이 성도는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이 함께 하시면 더 맛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음식은 배가 부르면 더 먹을 수 없지만, 말씀은 하루종일 먹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성경의 단 맛을 느낀 자였습니다(시 119:131). 다윗이 말씀을 사모하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많이 주셔서 시편을 많이 기록하고, 예수님에 대한 계시의 말씀을 많이 기록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말씀에 생명과 미래가 달렸습니다. 반대로 말씀을 읽지 않으면 복을 놓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말씀으로 지혜를 얻어서 지혜를 따라 사는 자에게 소망이 있습니다(14下). 성경 읽는 사람, 성경 읽는 교회, 성경 읽는 나라가 장래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배우면서 읽지 않는 자가 많고, 육신의 양식은 먹으면서 영의 양식을 먹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말씀을 사모함으로 송이 꿀 같은 맛이 날 때까지 읽어야 하겠습니다.
3.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15-16)
집을 짓는 것은 어렵지만 허는 것은 쉽습니다. 의인에 대해서 온갖 비바하는 말로 헐뜯고 비방하는 것은 의인의 집을 허는 것과 같습니다. 의인은 성도이고, 악한 자는 마귀 또는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자를 가리킵니다(요일 5:19). 성경은 신앙생활을 집 짓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마귀는 성도가 집을 짓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집을 헐려고 합니다(고전 3장).
성도가 집을 지을 때 두 종류가 있는데,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 진리대로 행하는 사람,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집을 짓는 자는 예수를 믿지만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마귀는 믿음의 집을 헐려고 할 때 적당하게 믿으라고 하고, 영광 없는 삶을 살라고 속입니다.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악인의 형통을 볼 때가 있지만 부러워 할 필요 없습니다. 결국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19-20).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일으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 지키면서 말씀대로 살아가다가 넘어진 사람은 주님이 권고하시고 일으켜 주십니다. 선한 양심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행하는 사람은 넘어졌어도 사람들이 격려하고, 일어서기를 바라면서 도와줍니다.
의인이 일곱 번 넘어질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도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일곱”은 완전 수로서 일곱 번 넘어졌다는 것은 완전히 넘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의인은 궁극적으로 반드시 잘되고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만사형통을 바라지만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무사안일은 복이 아닙니다. 실패 없는 성공을 꿈꾸어서는 안됩니다. 참된 성공은 고난과 시련 끝에 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넘어져도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정당하고 하나님이 주신 진리에 맞는 옳은 길이면 도전하십시요. 성도에게는 실패가 저주가 아닙니다. 낙심하지 말고 고난도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믿음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실패가 위대한 사람을 만듭니다. 성도는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4. 원수가 넘어질 때 기뻐하지 말라(17-18)
원수가 넘어지고 망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잠 17:5). 원수의 실패를 보고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알고 회개하고 두려워 해야 합니다.
성도는 서로 미워하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갈 5:15).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남을 미워하면 영혼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긍휼이 떠나는 것입니다.
실패 속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과 사랑과 깊은 뜻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대전 탄방교회 이창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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