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있는 제단(히13:10-15) | |||
오늘날 한국의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미신적인 신앙 가운데 하나는 제단이 아직도 있다고 하는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토속적 신앙을 통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던 그 것과 같이 교회 안에서 설교하는 강단이 마치 제단인 것처럼 그렇게 믿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간혹 어떤 분은 설교하는 강단을 함부로 올라가는 것은 제단을 더럽히는 행위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강단에 아무나 올라오지 못하고 기도 많이 하는 권사님이나 신령한 분만 강단에 올라와 청소도 하고 물건을 만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설교하는 강단이 마치 어떤 능력이나 권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여기는 미신적인 행위입니다. 먼저 이 말씀이 나와서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에게 목사가 서서 증거하는 이 강단은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리입니다. 그 이하, 이 이상의 어떤 능력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시대에는 강대상이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목사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위에서 증거되고 있다고 하는 상징 때문이었습니다. 높은 강대상을 처다 보면서 목사가 증거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는 것은 마치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 자신의 눈을 높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대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사람이 의미를 만들어 강대상이 마치 성물인 것처럼 그렇게 여기는 것뿐이지 성물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제사를 통해 이 땅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 때 구별되어 사용되었던 성막과 그 안에 모든 기물들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한국교회에서 미신적 신앙을 가진 자들은 성전과 성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인들이 많아지고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더 많은 헌신을 요구하기 위해, 목사가 많은 돈을 헌금하게 하기 위해 예배당을 마치 성전이라고 하면서 성전건축헌금을 강요하는 것은 비성경적 가르침이 분명합니다. 또한 예배당의 필요한 물건들을 성물이라고 하면서 그것 또한 헌물로 내라고 하는 것은 성도들을 속이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제 모든 성도들은 더 이상 구약의 성전과 제단에서 사용되었던 제물 때문에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의 가르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피 흘리심이 모든 의식에서 자유하게 하였다고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렸지만 성도에게는 더 이상 구약의 제단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제단이 있다고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에게 있는 제단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을 바르게 믿고 있는 분들이라고 하면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를 쉽게 알아들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가 복음,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것을 제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모세를 통해 지시받은 성막과 성물들과 제단에 사용되었던 동물의 제사제도들의 모든 의식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제사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의 제사의 모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아들께서 직접 오셔서 드린 자신의 피의 제사로 이제는 더 이상 드릴 이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약의 장막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땅에는 두 가지 제사가 존재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구약의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동물의 피의 제사입니다. 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여전히 제단이 필요했습니다. 양을 죽이고 그 피를 뿌리면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제단이 여전히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이러한 제사와 제단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미 자신의 피로 그 모든 제사와 제단에서 행하는 것들을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조상들이 행했던 동물의 피의 제사와 제단을 못 잊고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는 제단은 더 이상 구약에서 대제사장이 드렸던 그런 제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만 존재하는 제단입니다. 이제는 구약의 제사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는 제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속 증언하기 위해 그렇게 반복적으로 지금까지 히브리서 기자가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신앙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오늘날 현대교회 안에서 과연 찾아 볼 수 있습니까? 중세시대 로마교회가 성경과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옷과 성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교권주의에 빠져 버린 자들에게는 더 이상 구원의 이름이신 예수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과연 오늘날 현대교회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입술로 노래하고 목소리로 강단에서 예수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성도들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하는 주권 사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주인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자녀들의 주인도 부모인 내가 아니라 주님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 나의 주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신앙입니다. 하지만 이런 신앙은 현대교회 안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신학과 신앙은 하나님의 통치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기껏 하는 말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서로 서로 사랑하자고 하는 말밖에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성도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 없다면 이웃의 사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증거되는 복음의 내용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사랑이 풍성하시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인자하시며, 어린아이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가야 한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만 정작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지금도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고 만왕의 왕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가르침 때문에 결국 성도는 죄에 대하여 민감하지 못하고 옛 사람의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 통치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교만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은 죄를 계속 범할 것입니다. 왜 목사가 비자금을 만들고 교회를 세습하는 것입니까? 목사들의 성범죄가 계속 일어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총회임원들이 카지노에 가서 도박을 하고 성적 유희를 즐기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통치가 없는 것처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세상 만물을 통치하시는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믿고 있는 자들이 외식하면서 죄를 짓는다면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망령되게 하는 자들이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도 그렇게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위선적인 신앙을 늘 회개하고 항상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매일매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헛된 의식에만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항상 자신들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광주 한마음 개혁교회에서 오후 설교를 하고 특강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그 교회를 처음 나온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화요일에 저에게 전화를 해서 “목사님 너무 감사하다고, 이런 교회를 소개시켜 주시고 자신이 성경을 바르게 읽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다시 깨달았다고... 그분은 6대째 예수를 믿는 집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깨닫기는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 행하셨던 일들과 말씀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가는 것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위에 뿌립니다. 그리고 남은 양의 모든 것들은 성문 밖에 나가 불로 사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려 죽으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대속죄제사의 목적은 거룩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죄인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피로 속제제사를 드렸습니다. 죄인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죄를 용서 받는 것입니다. 어떤 행위와 공로를 이루었다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씻음 받는 자가 거룩한 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자신의 죄를 용서 받는 것이므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모두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죄의 형벌을 친히 지시기 위해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저주의 상징인 나무에 달려 죽으신 주님께서 자신의 피를 믿는 자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성문 밖에서”와 “영문 밖으로” 나가자고 하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영문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육적 이스라엘 민족의 특권과 장막을 통해 섬기는 신앙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여전히 유대인들은 영문 안에 있는 것을 가장 위대한 신앙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것, 구원을 받는 것, 이러한 모든 것들은 오직 영문 안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영문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더 이상 영문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문 밖에서 십자가에서 달리신 그리스도에게 구원이 있기 때문에 영문 밖으로 나가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예루살렘 성안에서 구원을 받는 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14절에서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다”고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었던 예루살렘은 이제 더 이상 영구한 하나님의 도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만 가득한 심판을 받는 곳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도성이 영구하고 거룩한 도성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로마제국으로부터 가증한 것들이 성전 안에 들어서게 하였고, 로마황제의 신상을 성전 가운데 세우게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불로 다 타버리고 성벽만이 그 흔적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지상에 영구한 도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안에 있습니다. 이 땅 위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세워진 교회만 있습니다. 비록 불완전한 교회이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으로 이 교회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교부들은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어떤 곳에도 구원이 없습니다. 오직 아들의 피로 세워진 교회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더 이상 사람의 눈에 보이는 성문 안에 있는 예루살렘은 구원을 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성읍이 없습니다. 그래서 장차 올 것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자신들에게 올 성을 찾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실 영원한 도성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이 도성은 예비 되어졌고, 약속되어졌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만 허락하여 주시는 도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늘이 자신들의 유업이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그곳이 우리들이 가야할 곳이고 바라보아야 할 곳입니다. 땅위에서 사는 자들, 땅의 것만 바라고 사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영원한 도성이 필요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자신의 생명이 땅에서 끝나는 줄도 모르고 계속 쌓아두기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자금도 만들고 수백억, 수천억 원의 돈을 쌓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도적이고, 늑대와 같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상에서 고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장 위대한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황소를 드려 하나님을 제사 드리는 것은 이제 폐하여 졌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그들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사를 드리면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거룩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이 피를 믿는 자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늘 찬미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우리는 찬미의 제사라고 할 때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래뿐만 아니라 성도가 자신의 입술의 말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 고백은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진 신앙 고백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와 같습니다. 성도가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 고백을 가지고 나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런 예배가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예배이며 다른 종교적인 선행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단 앞에 날마다 나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제단, 그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제단입니다. 이 제단위에서 예배하는 자의 예배만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구약의 종교적 시스템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아들을 믿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제단이 있습니다. 유대교처럼 화려하게 눈에 보이는 그런 제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 이제 이 제단 앞에 모든 지상의 사람들이 구별 없이 다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과 야만인들까지 다 이 제단 앞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길을 열어주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자들은 이 제단 앞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과거 유대종교에서는 오직 육신의 제사장들만 먹과 마실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들을 믿는 모든 자들이 먹고 마시는 권한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거룩한 성찬에 참여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제단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 놀라운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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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3143&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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