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히브리서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구속의 역사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고 하는 것을 매주 마다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기자가 증거하고 있는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복음을 들을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들은 목사가 설교를 끝내고 축도를 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목사가 증거한 복음의 설교를 들었던 것을 다시 한 번 기도하면서 무엇인가 다짐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이 바로 히브리서 기자가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서신을 통해 축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20-25절의 말씀을 보면 지금까지 복음의 증거자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 지어다” 라고 선언하고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라” 고 축도로 마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축도의 모습은 오늘날 교회의 목사들이 사도들로부터 배워서 하는 축도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나오는 사도들의 축도와 오늘날 목사들의 축도는 사실 그 모습이 너무나 다르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축도의 중심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까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통해 죄의 용서가 있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구약의 모든 제사제도들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조상들이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 즉 멀리서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고 환영하면서 자신들이 아들의 피를 통해 결국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한 번 축도에서 목사가 자신이 증거하였던 복음의 핵심을 한 마디로 정리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도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증거하였던 모든 것을 함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비록 본문의 말씀이 짧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 번 요약해 줍니다. 그 분은 양들의 큰 목자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큰 목자라고 하는 말은 양들의 유일한 목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양들을 사신 분은 유일하게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피를 주고 양들을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양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물들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양들을 사셔서 자기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유일한 구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단들과 사이비 종교들은 그 시대마다 구원하자가 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어떤 미치광이들은 구약에 많은 구원자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출애굽시대에는 모세가 구원자라고 하며 가나안을 들어가는 시대에는 여호수아가 구원자라고 합니다. 기브온도 구원자이며 다윗도 구원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는 구원자들이 아닙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 백성들의 지도자를 세웠지 구원자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들을 세워서 결국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바라보고 믿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자신의 피를 주고 사람들을 구원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양들의 유일한 목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이 말씀 속에 담겨져 있는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하고도 온전하게 다 이루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피 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공의를 이룰 수가 있습니까? 인간의 어떤 공로와 희생적인 모습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까? 과거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하게 이룰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오직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을 이루신 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을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는다고 하는 사도들의 증거가 전혀 틀린 것이 없음을 마지막까지 보증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유대인들과 로마정치인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순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환난의 연속된 삶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끝까지 은혜로운 분이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자신의 평강을 아들의 피를 믿는 자들에게만 주십니다. 평강이라는 말속에 담겨 있는 것은 그 이전의 모습은 원수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 원수의 관계가 평강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평강의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을 맺으실 때 마다 그 언약의 순종이 평강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불순종하였고 그들에게는 평강이 아니라 저주와 심판의 결과만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언제나 언약을 배반하였고 불순종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을 주신 것은 그 언약을 지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언약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알기에 이미 하나님은 동물의 피의 제사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나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다시 언약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신약교회가 성찬을 자주 시행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거룩한 삶으로 다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물의 피의 제사만 잘 드리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자신들의 전통과 신앙을 스스로 만들어 하나님을 예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선지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시면 그들에게서 하나님께 드리는 동물의 피의 제사가 아무리 자주 많이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은 만만의 양들을 통해 드려지는 피의 제사를 받으시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인애를 원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고 호세아 선지자는 말씀하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 속에 담겨 있는 것은 평강이고 인애이며 하나님을 원하는 것들만 가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떤 인간도 이 언약을 지킬 수가 없었고, 오히려 언약을 배반하여 저주와 심판 가운데 거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영원한 새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언약의 조건들을 자신의 피로 다 완성시켰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이 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교리를 후손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단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으로만 우리의 구원이 확증하였다고 할 수 없다고 합니다(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구원이 완전하게 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피, 그리스도의 영원한 언약의 피로써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것은 교회가 완전히 구속 받은 증거이며 확증이라고 말합니다. 이 가르침은 그 만큼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완전한 구속을 이루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원하는 자는 오직 예수의 피만을 믿어야 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전 인류의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끌어 내신 분이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가운데 살아가는 그 이유가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흘려 죽으시고 아버지께서 다시 살리신 그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언약의 의무를 행하지 못했다고 저주와 심판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통해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언약의 의무로부터 완전히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가 방탕하게 자유를 마음대로 사용하여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500 여 년 동안 동물의 피의 제사를 주신 것을 우리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제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 의미에 대하여 배울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의 제사 때문입니다. 비록 그림자이고 모형이라고 하여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실체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의 성도들은 구약에서 단 하나도 소홀하게 버려서는 안 됩니다. 신학자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창세전에 말입니다. 아들과 맺은 언약을 성부께서 이루시기 위해 모든 인간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보여주신 것이 바로 구약에 나타난 언약들입니다. 하지만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형식에만 집착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영원한 언약, 생명의 언약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확증하여 주시고 보여주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의 제사입니다. 이제는 더 확실한 제사가 없습니다. 모든 제사가 아들의 피로 말미암아 다 완결되었고 종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아들의 피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고 사도 요한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축도의 모습으로 성도들에게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선언하는 것은 지금까지 히브리서의 모든 내용이 이것을 말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요약하여 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른 구원자가 없고 유일한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신들의 구주로 믿고 따르면 됩니다. 분명 이 말씀을 읽고 들었던 자들은 이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자신들의 신앙이 틀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확인하였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기쁨과 감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까지 사도를 통해 들었던 내용이 진리라고 하는 것을 믿는 것은 가장 위대한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오늘날 현대교인들에게 축복은 무엇입니까? 말할 것도 없이 복음을 듣는 것이 가장 위대한 축복입니다. 지금 히브리서를 읽고 있는 자들은 사도로부터 직접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날 목사로부터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더 큰 은혜 안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사도와 목사들 모두를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사도는 친히 부르셔서 세운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성경을 기록하는 권한과 권위를 주셨습니다. 대부분의 성경기록자들이 사도들입니다. 그러나 목사들은 그러한 권한과 권위가 없습니다. 다만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만을 바르게 해석하고 증거할 뿐입니다. 사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셔서 세웠지만 목사는 오늘날 교회를 통해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자신들의 한계를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가르쳐야 하는 자들인지를 그 선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짓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마치 자신들도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면서 사도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자신의 말을 하고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는 자가 아닙니다. 오늘날 목사들은 사도들이 기록한 이 성경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뭐 새로운 것을 찾고 발견했다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선지자와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의 터 위에서 서서 오직 복음만을 전하는 자들이 목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복음은 없습니다. 다만 사도들이 증거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이 있어야 한다고 증거하고 있는 이 부분에서 하나님은 결국 아들을 통해서만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도 당연한 신앙고백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의 계시이기 때문에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예배할 때 성도는 성부 하나님에게 돌아갈 찬송과 영광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아버지께서 정한 방식으로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에게 제단이 없다면 어떻게 제사를 들릴 수가 있겠습니까? 아버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제단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또한 예수님을 향해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것도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예수님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만 예배를 받습니다. 예배 가운데 아들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다 누립니다. 양의 큰 목자이신 예수님은 당신의 양들을 밤낮으로 보호하여 지켜주시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이 확실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자신의 두 손으로 확실하게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편리가 가장 발전하는 시대의 한 부분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조금 있으면 우주여행이 가능한 길이 열리고, 다른 행성에까지 가서 살수 있다고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죽음을 해결하지 못하고 슬픔과 아픔, 그리고 원통과 분노와 저주와 살인과 전쟁의 한 복판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있는 자는 더 많이 소유하고 없는 자는 계속 빈곤과 가난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노력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정책들과 복지들을 만들고 있지만 인간은 죄로 인해 죽음과 타락의 악순환에 머물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심은 이제 하나님의 아들의 피까지 부정하고 인간 스스로 구원받는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며 반드시 죽습니다. 이 죽음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일생을 마쳐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히브리서를 읽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눈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만 향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개혁신학연구를 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다. 저서.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 <현대 칭의론 논쟁>(CLC, 2017), <요한계시록 설교>(우리시대, 2018)이 있다. |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3168&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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