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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복음의 탁월함과 유익(히12:18-29)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8. 12. 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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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복음의 탁월함과 유익(히12:18-29)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율법과 복음을 비교하여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고 율법이 복음에 비해 열등하다고 하는 것을 설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 도착한 곳은 광야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 율법을 주시기 전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임재하였습니다. 모세를 부르시고 그 산에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경계를 정해주셨습니다. 살아 있는 그 무엇도, 사람이나 짐승도 그 산에 침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정해진 구역을 넘는 순간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시내 산에 불을 내려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멀리서도 그 불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그 불은 장식용이 아닙니다. 정말로 모든 것을 태울 수 있는 그런 불이었습니다. 이 불은 마치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이후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막은 화염검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불로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그 산에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으로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장벽을 세워 막고 계셨습니다. 그 산에서 나오는 소리는 나팔소리와 우레 같은 소리가 아니라 무엇인가 두렵고 무서운 소리가 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도저히 그 산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지금 히브리서를 기록하고 있는 저자는 아주 분명하게 하나의 모습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놔두시지 않고 계십니다. 무엇인가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있고, 요구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시내 산에 경계를 세우시고 아무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시고 계십니다. 만약 그 산에 한 발짝이라고 내딛는 자가 있다면 불로 태워 죽이 주신다고 경고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산을 보면서 자신들이 죽을까봐 나팔소리와 우레 같은 소리로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산을 향하여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운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영적인 지도자인 모세도 그 보이는 시내 산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너무 두렵고 떨린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들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은 그야말로 무섭고 두려우며 떨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산은 불과 연기로 싸여 있고 어둠과 폭풍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더 이상 그것은 인간의 눈에 보이는 그런 산과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직 두려움과 공포와 무서움만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왜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구약시대에 일어났던 그 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아주 분명하게 대조를 보여주면서 설명하기 위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 도착하여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참으로 두렵고 무서우며 그 누구도 그 앞에 나가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 즉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런 두렵고 무서운 모습으로 하나님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나온,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나온 그 모습은 두렵고 무서운 곳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습니다. 시내 산은 율법의 산이었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산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나왔지만 그 누구도 하나님의 산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습다. 그야말로 시내 산은 공포의 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신 교회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고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곳입니다. 지금 이것을 비교하여 말하려고 히브리서 기자가 구약의 시내 산을 말한 것입니다. 

12:22절에서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 성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의 백성들과 같이 그런 곳에 이른 것이 아닙니다. 율법으로 정죄당하고 심판당하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통해 율법에서 해방된 곳에 이른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하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에 이른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땅에 있기 때문에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교회라고 하는 것을 통해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상의 교회라고 하는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당하는 고난과 환난을 기꺼이 피하지 말고 오히려 담대하게 이길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4장에서 사도 바울이 비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시내 산에서 받은 언약, 즉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자손을 비교하여 줍니다. 아브라함의 첩 하갈로부터 낳은 이스마엘은 옛 언약의 자녀로 종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믿는다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라 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원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것처럼 포도원에서 일하는 종들이 결국 포도원 주인의 아들까지 죽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종들이었습니다. 무엇의 종이었습니까? 그들은 율법의 종들이었습니다. 율법은 정죄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종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자식들입니다.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의 자녀들이 바로 예수를 자신들의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구약의 시내 산에 나갈 수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통해 두렵고 무서운 산이 아닌 구원의 은혜와 죄 용서가 풍성한 하나님의 산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게 구약 백성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소망하였던 시온에 이른 것입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가 바로 하늘의 시온 산의 입구이며 시온 산을 보여주는 실체가 된 것입니다. 

율법은 정죄와 억압과 통제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자유입니다.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은 자유자이니 곧 우리 어미니라고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은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으며 누구든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자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 진 것입니다. 24절까지의 말씀이 이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구약의 시내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누구든지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경고의 메시지밖에 없었습니다. 들어오지 말라고 하기 때문에 경계를 만들고 불로, 그리고 흑암과 구름과 폭풍으로 가로막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시온 산에서 들려주시는 목소리는 누구든지 들어오라고 하는 메시지입니다. 

어떻게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까? 은혜로 초청하는 소리가 시온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말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결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위대한 교부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하는 책에서 두 개의 도성을 말하여 줍니다. 인간이 세운 도성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악을 행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도성에서는 오직 구원의 은혜가 충만하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도성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세워졌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세우신 도성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으로 볼 때 하나님의 도성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지상에서 이미 하나님의 도성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는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며 사는 자들은 이미 하늘의 도성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의 모형이었습니다. 하지만 중보자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나간 모세를 보시면 그가 얼마나 온전한 중보자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온전하시고 완전한 중보자 이십니다. 두려움과 무서움을 걷어내시고 믿음으로 나가는 모든 자들을 위해 하나님의 도성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또 다시 한번 이 말씀을 통해 옛 것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하며 참된 구원을 누릴 수가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은 결국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며, 하나님의 도성을 상실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주어집니다. 1224절에서 아벨의 피가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아벨의 피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예수의 피는 모든 복수와 저주의 삶에서 해방해주시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벨은 가인의 동생인데 가인이 자신의 동생을 죽였습니다. 그 때 아벨의 피가 땅에 스며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4:10). 하나님은 가인을 저주하셨습니다. 아벨의 피는 복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많은 인생의 날 동안 자신의 동생의 피의 소리를 듣고 저주와 심판 가운데 두려움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벨의 피는 결국 심판과 복수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시고 흘리신 그 피는 오히려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보배로운 피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아벨의 피와 예수님의 피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두렵고 무서운 시내 산의 폭풍을 물러나게 하며, 예수님의 피를 믿는 자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주 분명하게 구원의 방식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고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분명하게 증거되고 있는데 그 말씀을 거역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25절에 말씀하신 분을 거역하지 말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22절의 말씀에서 성도들은 믿음으로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른 것입니다. 원어를 보면 그 산에 이르고 있다’, 아니면 언제 이를 것이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 이르렀다고 하는 과거분사로 이미 이르렀다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현대 신학에서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거짓 복음을 쉽게 무너뜨리는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 계속 구원은 믿음과 행위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거짓 복음이 교회 안에 들어오고 있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복음, 거짓 복음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죄는 인간이 범하였지만 은혜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남의 말씀을 거역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심판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세를 거부하였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땅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땅이 아닌 하늘로부터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땅에서 말했던 모세를 거부하여 죽었다면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아들의 음성을 거부하는 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늘에서 이미 자신이 오실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였고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심판을 받아 그 민족이 땅에서 전멸당하고 말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도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은 더욱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죄의 용서도 없고, 영원한 심판만 그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땅이 흔들리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께서 심판의 주로 오실 때는 땅만이 아니라 하늘도 흔들리고 떨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심판의 주로 오실 때 주님은 모든 구원의 사역을 다 종결하실 것입니다. 그때 땅과 하늘이 흔들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이십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두려워 떨 것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창조 세계가 이루어 질 것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창조물들이 새로운 질서를 이루기 위해 옮겨질 것입니다. 창조의 구조가 완전하게 새로워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은 것입니다. 28절의 흔들리지 않는 나라라고 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나라를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것입니다. 

이제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통해 구원하시는 자들에게 무엇인가 요구하고 있다고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겨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기쁘게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자들은 감사와 경건으로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모습으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과거에는 율법이 정한대로 억지로 했다면 이제는 예수의 피로 그 모든 것이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함 속에는 감사가 넘쳐나야 합니다. 죄의 종에서 자유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갈 때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두려워하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자세입니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마다 경건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마음과 두려움을 가지고 경배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섬겨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그리고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소멸하시는 불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역하는 자들에게 불로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신약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구원 받는 것을 거부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여전히 하나님은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질투하십니다. 자신의 피로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는데 이것을 거부하고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겨야 합니다. 다른 길은 멸망이고 심판입니다. 교회에 속한 자들은 더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겨야 하고 그렇게 믿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과 우리에게까지 동일한 하나의 메시지를 증거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그 복음만이 가장 위대하고 탁월하며 유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유가 있으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님의 거룩한 시온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을 의심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구주가 되심을 믿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 <현대 칭의론 논쟁>, <요한계시록 설교>(우리시대, 2018)이 있다.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3098&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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