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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통해 교회를 나타내는 성도(회중)의 의무

장대선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1. 1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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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John Calvin)의 저서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책인 기독교강요는 교회에 대해 설명하는 가운데서 말씀과 성례를 교회가 이 지상에 드러나는 중요한 표지로 언급하고 있다. 물론 칼뱅은 교회의 또 하나의 표지인 권징(치리 곧 다스림)을 간과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말씀과 성례를 위해 반드시 권징이 필요함을 언급한다. 그러므로 칼뱅은 권징을 교회의 구별된 표지로서보다는, 말씀과 성례에 관련하여 종속적인 표지의 성격으로 다루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실 교회의 표지는 핵심적으로 말씀(성경진리의 합당한 선포와 가르침)에 있다. 성례가 교회에서 합당하게 시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의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를 따라야 하며, 권징 또한 성경에 제시된 규정과 원리를 따라 시행되어야지만 타당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의 표지에는 교회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전제되어 있는데, 그것은 비가시적이며 본질적인 유일한 교회인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무리로서의 교회가 지상에서 어떻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지를 표지들이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의 눈으로 분별할 수 없는 천상의 교회요 교회의 본질인 하나님의 택자들의 회()가 지상에서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드러난다는 것은, 유형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상의 교회를 가시적인 교회 혹은 제도적인 교회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유형적인 교회라고 지칭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의 교회관에 근접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교회는 고정된 형태로서 설립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표지에 따라 시행되거나 운영되는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성격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는 항상 가시적이거나 덜 가시적이거나 혹은 전혀 가시적이지 않게 되는 것으로 있을 뿐, 건물이나 고착된 형태로서 지상에 존재하게 되는 성격이 아니다. 다만 그 모범적인 형태는 주후 1세기의 교회들(소위 초대교회)이 보여주는데, 그것은 건물이나 회중으로서의 지교회가 아니라 노회 혹은 장로회(presbytery)로서의 교회다. 그런 개념 가운데서 비로소 교회정치가 교회가 가시적으로 드러내는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노회의 개념인 교회는 지교회의 당회에서 시행하는 치리뿐 아니라 상위의 회(치리회)인 노회의 치리까지 온전하게 될 때에 비로소 뚜렷하게 교회로서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회정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한국의 장로교회들은 사실상 가까스로 교회로 드러나 보이려고 하는 미약하고 초보적인 교회라 할 수 있다.

 

또한 지교회가 교회로 드러나기 위해서도 치리가 중요한데, 지교회의 당회는 교회가 지상에서 드러나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가장 기초적인 치리기구다. 따라서 그러한 교회(장로교회)에 속한 성도들로서의 회중은, 기본적으로 치리회의 치리에 순종하는 자들로서의 회원권을 지닌다. 아울러 그러한 회중으로서의 성도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0장에서 다루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전제하여야만 한다. 즉 스스로 말씀에 매이는 자유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정립하는 신앙 가운데서, 비로소 말씀에 따른 치리에 순종할 줄 아는 장로교회의 회원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장로교회의 회중 가운데 있는 성도들은 예배를 통해 교회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데 있어서도 일정부분 기여하게 되는데 목사와 교사, 그리고 장로들을 중심으로 한 치리회와 더불어서 집사들과 온 회중이 참여하는 장로교회의 예배는, 그 자체로서 교회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예배의 자리에서 일반적으로 교회의 직원들은 예배에 수종(a servant)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자들로서, 특별히 예배의 인도자이자 설교자인 목사는 예배의 전반을 수종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교회의 표지에 속하는 중요한 부분인 말씀사역을 수종하는 자로서의 역할인데, 목사는 예배에 있어 회중의 입이자 하나님의 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치리장로가 회중의 대표가 아니라, 말씀사역자이자 기도하는자인 목사가 회중의 대표로 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원리와 모범을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이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배의 자리에서 회중은 피동적인 관중(gallery)에 불과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회중은 예배를 통해 교회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것은 바로 말씀을 잘 듣는 것이다. 교회의 표지인 정당한 말씀의 선포라는 것은, 설교하는 목사에 의해서 뿐 아니라 회중에 의해서도 분명하게 수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 때에 설교되는 말씀을 회중이 듣지 않는 것은, 미흡함이나 게으름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교회가 지상에서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심각한 의미로서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림이 마땅한 자리에서 말이다.

 

사실 한국의 장로교회들에서 드리는 예배에 있어 회중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러한 부족한 이해 가운데서 예배의 기도, 찬송, 심지어 무슨무슨 발표회니 특별광고니 하는 온갖 해괴한 수단들을 사용하여 회중의 참여와 관심을 끌어내왔던 것이다. 하지만 예배에서의 회중의 역할이 선포되는 말씀을 잘 듣는 것(단순히 듣는 것 뿐 아니라 아멘으로 참동하는 것까지 포함되는데, 그러한 맥락에서 말씀의 분별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이라는 점,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회중찬송인 시편찬송 가운데서 교회의 직원들과 온 회중은, 그야말로 한 회중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바로 그러한 이해 가운데서 비로소 회중이 예배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즉 회중이 선포되는 말씀을 잘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의무를 충실히 함으로써 하나님의 교회가 지상에 가시적으로 드러나 보이도록 하는 것이라는 중요한 통찰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들로 보건대 장로교회는 그야말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며, 그러한 예배를 바탕으로 바르게 교회를 운영하지 않는 한, 그 스스로 교회이기를 방기하거나 불완전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는 이해와 통찰을 기본으로 숙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장로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나 회중교회에 가까울지언정, 결코 참된 장로교회요 지상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교회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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