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적 사고에 익숙해진 우리 시대에는 시뮬라크르(Similacre, 복사물)의 기능성에 치우쳐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초과 혹은 파생 실재)의 현실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는 시대라 할 수 있겠다.
실체(혹은 실재)가 존재하는지의 여부보다는, 복사물일지라도 실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한 그것은 엄연히 실체가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사실 플라톤의 이데아(Idea)는 명백히 시뮬라크르다.
그의 이데아는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역사 가운데서 단 한 번도 실증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개혁(reformation)은 어떠한가?
명백히 시뮬라크르가 아닌가?
단언컨대 종교개혁은 시뮬라크르가 아니다.
종교개혁은 참된 교회의 역사 안에서 피와 눈물, 슬픔과 비탄의 그것만이 아니라, 영광과 감사의 그것으로 이미 수없이 실증된 바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은 참된 교회의 대표적 표지(sign)인 말씀(The bible), 대표적으로 히 11:1절에서 명백히 말하고 있는 “실상”을 믿음으로서 입증한 실증의 역사다.
그러니 종교개혁은 결코 시뮬라크르가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우리 시대의 현실은, 명백한 실상인 종교개혁을 한낱 시뮬라크르로 전락시켜버리는 것 같다.
종교개혁의 모사물(Similacre)들인 유적들이 관광지로서 남아 있어도, 개혁된 신학의 내용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하거나 슬그머니 망각해버리는 이 시대 개신교의 다수(多數)들이야말로, 시뮬라크르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해 보이는 대표적 사례를 제공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분(신학자)들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도 실상은 시뮬라크르라고 말한다.
역사 가운데서 한 번도 제대로 구현(실천)되지 못한 것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이름 없는 개혁자들이 지금도 여전히(그리고 생생히)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표명하며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눈에 드러나지 않을 만큼 미미(小數)할지언정,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실천하려고 흘리는 땀과 눈물이 어찌 시뮬라크르란 말인가!
아마 어쩌면,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신학자)가 바로 시뮬라크르, 살아있으나 분명히 죽을 뿐인(mortal being) 시뮬라크르다!
장대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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