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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5:30절은 ‘성도의 견인’에 반대되는 말씀인가?|

장대선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6. 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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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4-30절에 있는 달란트 비유는 눅 19:12-27절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마가복음 13:34-36절에서는 마 25:1-13절의 열 처녀 비유와 함께 뭉뚱그려져서 등장하는 비유다.

 

그런데 간략하게 뭉뚱그려진 막 13:35절의 언급은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가 나타내는 중심주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내는데, 그것은 언제 올는지 모르는 집 주인의 귀환을 위해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또한 언제 올는지 모르는 집 주인이 나타내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확실하게 임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눅 19:12-27절의 열 므나의 비유에 앞서 11절은 비유를 더하신 이유에 대해 이르기를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비유의 배경을 생략하고서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해석하는 경우에는 자칫 주관적인 성경해석의 오류에 빠질 수가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를 마 25:30절의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는 말씀이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혹은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교리를 배척하는 증거본문이라고 보는 해석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즉 믿음의 백성이라도 이 땅에서 받은 구원의 은혜(혹은 은사)를 적극적으로 선용하지 못한다면, 결국 마지막 때에 이르러서는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기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본문이 여실히 증거 해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비유에서 달란트를 갑절로 남기는 것이 바로 신자들의 성화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여, 성화란 그처럼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를 활용하여서 더욱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주시는 취지는 자기(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했기에, 오히려 더욱 인내하며 기다려야만 하는 것을 말씀하심에 있다.

 

그리고 그 때의 기다림이란 열 처녀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가는것이지, 기름도 없는 등잔을 들고서 막연하게 졸며 기다리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더구나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의 정황으로 보건데, 이 비유를 듣는 일차적인 대상은 다름 아닌 그의 제자들이다.

 

따라서 마태복음 25장과 누가복음 19장에서 명확히 등장하는 달란트 혹은 열 므나 비유에서 언급하는 화폐단위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은사로 해석하는데, 특별히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대상으로 언급되는 비유라는 점에서 사도들이 지닌 은사들의 특수성과도 연계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증인들로서의 사도들의 성격 가운데서 볼 때에, 마태복음 25장과 누가복음 19장에서 말한 은사는 복음(말씀)’과 관련되어 있다.

 

바로 그 때문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그리고 마가복음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내용을 다룬 비유들에서 공히 그들을 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달란트(혹은 므나) 받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 그것을 땅에 감추어 두었다는 것은, 말씀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을 나타낸다.

 

또한 27절에서 이자(usury)’로 번역된 헬라어 τόκος가 이자의 뜻 외에 자식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그처럼 죽은 것과 대비되는 살아있는 것으로서의 대조를 나타낸다.

 

아울러 마태복음에서는 달란트라는 화폐단위를 사용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므나라는 화폐단위를 사용하며,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가 아니라 동일하게 한 므나씩 준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 때문에 마태복음에서 각각 그 재능대로라는 표현으로 언급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속에 내재된 능력의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에게 속한 것을 위임하는 성격과 같이 외부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의 개념이다.

 

이처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공히 이 비유를 복음(말씀)의 사도들인 제자들과 관계되어 언급하고 있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여 조급했었던 제자들에게 더욱 인내하며 말씀에 착념토록(복음의 말씀을 살아있는 것으로 선용토록) 하시는 취지의 말씀인 것이다.

 

아울러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비유 가운데서 성도의 견인교리의 반대증거를 찾았던 자는 말씀을 땅에 묻어 죽은 것으로 만든 것과 같다.

 

생명의 말씀인 마태복음 25장과 누가복음 19장의 비유는, 당장에 나타날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임할 마지막 때를 예비하여 등잔만이 아니라 기름까지도 예비하여 성경의 말씀을 살아있는 복음의 진리로서 선포할 착하고 충성된 종들을 깨우치는 말씀인 것이다.



장대선목사

http://cafe.daum.net/largoviva/WoXQ/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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