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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어떻게 신자(信者)들을 양육했나?

장대선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6. 1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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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의 기독교에 있어서 기본적인 신앙심의 패턴(pattern), 목회자에 대한 존경과 가르침에 대한 순종을 꼽을 수 있었다.

 

특별히 그것은 구한말(舊韓末)의 혼란 가운데서 침체된 사회 분위기와 민족계몽에 지대한 역할을 한 기독교 교역자들의 역할 가운데서 더욱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한 것인데, 그러한 계몽은 일제식민지 역사를 통해서는 주로 일본제국의 승인을 받은 교역자들(조선신학교 출신들과 신사참배에 찬동한 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선교사들과 일사각오(一死覺悟)의 민족지도자들을 통해 이뤄졌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통해 식민지인 조선을 다스리던 일제(日帝)는 개화파 조선민족주의 계열의 애국계몽운동(愛國啓蒙運動)’을 적극 탄압했으며, 같은 맥락에서 기독교 내의 신앙계몽운동에 대해서도 동일한 핍박과 탄압을 가했다.

 

아울러 식민지 조선에 대한 우민화정책(愚民化政策)’을 통해 민족정기와 계몽의식을 말살함으로서 조선민중의 역사의식과 계몽의 의지를 철저히 박탈함으로서 조선에 대한 장기적인 지배를 꾀했었다.

 

비슷한 시기 독일의 나치당(國家社會主義獨逸勞動者黨,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에서도 제국주의정책을 펴 유럽을 지배하려 했는데, 일본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나치(Nazi) 또한 궤벨스(Paul Joseph Goebbels, 1897-1945)를 주축으로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선동에 의한 제국주의정책을 펼쳤다.

 


그러한 독일의 대중선동 또한 일본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단일한 가치관을 강요하는 점에서 일종의 우민화정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런 특징은 대한민국 수립 후 쿠데타로 집권했던 정권들이 그대로 답습했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무렵의 제국주의 독일과 일본은 공통적으로 일종의 사이비(似而非)종교와 유사한 특색을 보였으니, 일본의 경우에는 소위 천황이라 일컫는 쇼와천황(昭和天皇, 1901-1989)이라는 자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 독일의 경우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였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제국주의종교의 특징은 이미 로마 가톨릭에서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온 형태를 답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살아있는 신적 존재인 교황(πάπας)이라는 자를 중심으로 하는 단일하고 지배력이 강한 특징을 보이는 종교의 형태가 로마 가톨릭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유지되어오고 있었던 것인데, 그러한 형태는 사실 기독교(로마 가톨릭 이전의 기독교) 외에 대부분의 이방종교들이 갖는 특징이다.

 

반면에 기독교 신앙의 독특한 체계를 형성하는데 다방면의 기여를 한 사도(使徒, Apostolus)들의 경우를 보면 그들의 거취에서부터 어떤 한 지역이나 장소에만 국한하여 사역하지 않았는데, 대표적으로 사도 바울의 경우만 하더라도 거의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부지런함과 꾸준함으로 이동하는 가운데서 사역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즉 사도들은 자신들을 추앙(推仰)하는 많은 신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세력을 형성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세력화를 위해 사람들을 모아두는 그런 사역이 아니라 복음을 깊이 깨닫고 자발적이며 견인(堅忍)할 수 있는 신앙을 갖도록 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세력과 집권에 연연하지 않은 가장 단적인 분이라 할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는 공생애(公生涯) 라는 그의 독특하고도 유일한 사역에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구속의 성취를 위한 영원한 작정의 의논 가운데서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파벌이나 세력을 형성하실만한 의향이나 여력도 없으신 분이셨지만, 그러한 태도는 그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뒤 승천하시기까지 결코 변함이 없으셨으며, 28:20절에서도 분명하게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으니 만큼 양육(養育)’에 대해 전혀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신자를 양육하는 원리와 근거는 무엇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어떤 원리나 근거를 밝히기에 앞서서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제자들과 신자들을 그들 자신에게 묶어두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공히, 자신들이 떠나서도 교회(敎會)를 형성하고 모일 수 있는 신앙의 깊이를 갖도록 하는데 관심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제자들의 질문이나 군중의 물음에 대해 항상 간단한 해답을 제시하신 것이 아니라 비유(比喩, analogy or metaphor)’로 제시하시어 깊이 숙고(熟考)해 볼 수 있도록 하셨다.

 

비유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리송하게 만들려는 의도의 답변방식이 아니라, 그 본질이나 실체에 더욱 근접하게 설명하기 위한 답변방식이다.

 

그러므로 비유에 대해 숙고한다는 것은 그 생각의 심도(深度)를 말함이지 난해(難解)함을 일컬으려는 의도가 결코 아니다.

 

바로 그러한 비유에 대한 숙고가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성경의 기록을 신약 가운데서 찾아보면 크게 두 본문을 들 수 있는데, 초기 사도들의 행적을 소상히 기록한(성경의 기록방식과 같이 특정시간이나 장소까지 언급하는 파피루스는 일반적으로 당대에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성경이 유일하다고 한다) 사도행전 본문 가운데 8장의 빌립과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와의 대화 장면이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특별히 35절의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성경, 즉 사 53:7절 이하)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라는 구절을 보면, 빌립이 결코 간단한 답변으로서가 아니라 구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도록 함과 아울러 이를 기반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이르도록 길게 변증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1세기 기독교 안에서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회중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본문이 또한 사도행전 안에 있는데, 사도행전 17장의 베뢰아 사람들에 대한 본문이 바로 그것이다.

 

특별히 11절에 이르기를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詳考)하므로라고 했으니, 그들은 성경을 기꺼이 받아들이되 그것을 면밀히 조사하여 받아들이는 점에서 데살로니가인들 보다 훨씬 고상(高尙)하더라고 평하고 있다.

 

이러한 성경의 본문들 가운데서 우리들은 사도들 당시의 1세기 교회가 얼마나 깊이 사고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으니, 그들(사도들과 직분자들)은 결코 감정에 휩쓸려서 불러불러식의 기도에 착념하도록 신자들을 이끌지 않았고, 지금처럼 자기 사람을 만들기 위해 적당히 성경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채 아무 사고함 없이 그저 시키는 일에 머슴처럼 복종하는 교인들로 양육하지 않았던 것이다.

 

작금, 한국의 기독교(개신교)는 심각한 위기 국면에 놓여 있는데 그것은 외형적인 위기국면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믿음 없는 신자, 즉 실천적 무신론자(practical atheists)들이 가득한 예배당이 대부분이라는데 따른 위기국면이다.

 

그러므로 그런 예배당에 앉아있는 신자들은 결코 사고(思考)하지 않으며 믿는바실천하는바가 별개일 뿐 아니라, 그럭저럭한 에티켓(etiquette) 수준의 신앙지식에 만족하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우민화(愚民化) 된 군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이 시대에 사도행전 8장의 빌립과 같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28:19)”,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들을 가르쳐 지키게(28:20)” 할 사역자들이 도처에 늘어나기를 세상 끝날까지항상 함께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기대어 소망해 본다.



장대선목사

http://cafe.daum.net/largoviva/WoXQ/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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