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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은 해도 ‘개혁’은 안하는 현대의 종교개혁

장대선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6. 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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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記念)’이라는 말은 뜻깊은 인물이나 그의 일, 혹은 중요한 사건 등을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여 되새기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기념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되는 주체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신교에서 매년 기념하는 종교개혁의 경우에는 얼핏 그 대상이 되는 주체가 분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 광범위한 지역과 너무 광범위한 시간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기념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물론 종교개혁의 선봉장을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로 삼아서 그가 비텐베르크 성의 교회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일을 기념한다고 한다면 기념일로서는 좀 더 명백할 수 있겠지만, 실상 당시 루터에게는 전혀 종교개혁의 의지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보다 앞서서 왈도(Peter Waldo, 1140-1205),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와 같은 인물들이 더욱 분명한 개혁의 의지와 태도를 보여준 바 있었다는 점에서 굳이 루터만을 지목할 근거가 희박하다.

 

무엇보다 당대의 이미 루터보다도 훨씬 개혁적인 인물들이 유럽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그들의 개혁이 훨씬 개혁에 부합했다는 점에서도 루터를 종교개혁의 선봉으로 삼기에는 설득력이 많이 부족하다(이런 점에서 루터 자신보다는 95개조의 논제에 오히려 비중이 있다).

 


이처럼 루터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개혁의 기념은 취약점이 너무도 명백한데, 그 사실을 인정하고 종교개혁을 정의한다고 하면, 그때부터는 그야말로 유럽 전역에 걸쳐서 수 없이 많은 인물들과 최소한 16세기 전체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이해가 요구된다. 그리고 그러한 조사와 이해 가운데서 다다를 수 있는 결론은, 최소한 인물이나 시대 혹은 지역에 국한된 사건들이 아니라 개혁하고자 했던 신학의 실제적인 내용과 의미들 가운데서 비로소 종교개혁이 이해되고 기념될 수 있는 성격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처럼 16세기 유럽 전역에 걸쳐서 상당히 긴 기간에 걸쳐서 이뤄진 종교개혁에 있어서 중요하게 개혁된 신학의 내용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이신칭의(以信稱義)로 불리는 칭의(Justification)’를 비롯하여, 사제주의를 논박하는 만인제사장주의(Priesthood of All Believers)’와 성찬에서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의 부인 등 많은 신학적 내용들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종교개혁의 내적 원리가 되는 것은 성경에 있어서의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와 전체 성경(tota scriptura)’의 원리라 할 것이다.

 

개혁된 신학(신앙)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할 때에 가장 기초가 되며 본질적인 로마가톨릭과의 차이가 바로 성경에 대한 이해다. 로마가톨릭의 교회론이 철저히 조직교회와 교직의 위계에 있었던 데에 반해, 이를 개혁한 교회들 가운데서 정립한 교회론은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여서 교회가 있고 분별된다고 하는 신학적 원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신교, 그 가운데서도 장로교회들의 신학에서 말하는 교회의 표지는 항상 성경과 성례, 그리고 권징(치리)인데, 그 모든 표지들의 바탕이 바로 성경이다.

 

특히 개신교의 성경관은 오직 성경이 교회와 신앙의 유일한 원리와 규범을 이룬다는 것임과 아울러, 그러한 원리와 규범은 신약, 혹은 구약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 전체 성경에서 나타내는 원리와 규범을 말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모든 개신교의 신학과 조직(교회)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으로 인해 로마가톨릭의 사제주의를 반대하면서도 반()교직주의를 지향하기 쉬운 만인제사장주의를 보완하는 개신교의 독특한 직제(職制)가 성립한다.

 

, 개혁된 교회들에서 로마가톨릭과 같이 사제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론을 배격하는 근거가 만인제사장주의이지만, 그것은 교직(敎職)의 직분에 대한 불신이나 부정이 아니라 강조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재세례파를 중심으로 하는 진영에서는 만인제사장주의와 신앙의 지나친(편중된) 강조로 인해, 직제에 있어서 가르치는 직분인 목사에 대한 부정이 팽배했었다.

 

그러한 재세례파 신학의 영향으로 오늘날 평신도신학이라는 것이 강조되곤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가정교회, 제자도, 알파, 두 날개 등, 현대 장로교회들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 대부분이 재세례파에서의 만인제사장주의에 대한 편중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예가 아니라도 만인제사장주의에 대한 오해에 바탕을 둔 편향된 신학의 맥락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목회사역을 감당하지 않는 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프로그램들이다.

 

그리고 그처럼 목회사역을 감당하지 않는 자들로서 지교회의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신학교수들의 강연(특강)들 일 것인데, 사실 종교개혁시대와 이후의 개혁파 교회들에서는 신학교수가 별도로(목회직과는 별도의 양성과정으로) 세워지지 않고 목회를 감당하는 목사들 가운데서 세워졌었다.

 

그러므로 현대 장로교회들의 신학교에서 처음부터 목회사역이 아니라 교수 사역만을 염두에 둔다거나, 심지어 목회경험이 전혀 없는 자를 신학교 교수로 임용하는 현상은, 현대주의 사조나 재세례파 전통에 가까울지언정 장로교회에서의 종교개혁의 원리와는 전혀 동떨어진 양상이라 하겠다.

 

이처럼 특정한 인물이나 지역 혹은 시대에 국한하여 기념할 수 없고, 오히려 종교개혁의 원리와 의미를 계승하고 지향하는 차원인 성경중심의 신학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것이라 할 것인데, 이미 언급한 사례는 그 실천적 사례다.

 

이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 한해, 각 교단별로 다양한 강좌와 강연들이 줄줄이 개최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강연들이 목회와 상관없이 강연에만 종사하는 분들에 의해서, 또 목회와 상관이 없이 그저 특강으로 그치는 강연들로 이뤄지는 한, 그것은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행하는 것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참된 종교개혁은 특강의 강사들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과 전체 성경의 맥락으로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보고 살피는 목사들의 목양 가운데서 오직 은혜(sola Gratia)’로 기념되고 실천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장대선목사

http://cafe.daum.net/largoviva/WoXQ/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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