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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의 죄는 ‘회개(悔改)’만 하면 다 용서되는가?|

장대선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6. 2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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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불신앙의 사람들이 신자(信者)들에 대해 비난하는 말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와 똑같이 죄를 범하면서 회개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고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자기들도 죄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또 그런 죄를 범한 죄책감이 없지 않지만, 그리스도인들처럼 그렇게 쉽게 죄의식을 털어내 버리지는 않는다는 일말의 변명과도 같은 비난의 마음이 그들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두 가지의 오류(誤謬) 가운데 있는 생각인데, 먼저 그러한 생각은 인간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즉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상태에 대한 무지(無知)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비난과 달리 죄를 범하여 회개하고서도 의도적으로나 고의적으로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속죄(贖罪)도 허락하시지 않으신다.

 

10:26-27절 말씀에서 사도는 이르기를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고 했으니, 회개의 은혜 가운데서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고서도 다시 이를 거슬러 죄를 범하여 진리를 대적하는 공공연하고 의도적인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심판(審判)과 멸망(滅亡)이 있을 뿐이다.

 


구약성경 민 15:30절은 이르기를 본토인이든지 타국인이든지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누구나 여호와를 비방하는 자니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고의로 범한 무엇이란 다름 아닌 율법을 말한다. 즉 율법을 무시하여 고의로 율법을 범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 17:12절에서도 이르기를 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고 한 것이다.

 

또 민 35:31절에서는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했고, 21:14절은 그런 자에 대해 심지어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고 했으니, 이처럼 성경은 공공연하고 의도적으로 죄를 자행하는 자들에 대해 단호하게 심판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에게는 히 10:27절 말씀과 같이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완전하지 않은데, 심지어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구원의 백성이라도 죄에 대해 완전하지 않다.

 

한마디로 인간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에 대해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로서, 그러한 무능력과 불완전함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왕 다윗이다.

 

51:5절에서 다윗은 자신에 대해 이르기를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는데, 이는 사무엘하 11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고의로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게 한 범죄가 나단 선지자에 의해 고발된 직후의 다윗의 고백을 담은 것이다.

 

하지만 다윗의 그러한 범죄는 민 15:30절이나 신 17:12절에서 말하는 고의로 율법을 범하여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무시하는 가운데서 행한 죄가 아니라, 육체의 연약 가운데서 범한 것이었다.

 

물론 일차적으로 사무엘하 11장에서의 다윗의 죄는 고의로 사람을 죽게 한 것이며, 고의로 형제의 아내를 범한 죄로서 용서할 수단이 없는 심각한 죄였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 다윗은 시 51:1-2절에 이른 것처럼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라고 고백했다.

 

아울러 17절에서는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으니, 그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만을 의뢰한 것이다.

 

그러나 다윗에게 긍휼이 내려졌다고 해서 그에 대한 징계(懲戒)까지 제거됐었던 것은 아니다.

 

삼하 12:11-15절에서 알 수 있듯이 여호와께서는 그의 죄를 사하셨으나 그 벌로서 삼하 16:22절의 사건, 즉 백주(白晝)에 아들 압살롬이 그의 후궁(後宮)들과 동침하는 일을 겪어야 했고,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 또한 이레 동안의 금식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죽고 말았으니, 하나님의 공의의 판결은 결코 제거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다윗은 아이의 죽음과 압살롬의 패역이 바로 자신으로 말미암은 형벌이라는 사실을 뼈에 사무치게 바라봐야만 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성경은 의도적으로 밧세바 만을 언급하지 않고 우리아를 밧세바의 이름에 앞서 기록하는 듯하다)가 나은 아이가 죽었을 때에, 그리고 늙은 몸으로 아들 압살롬이 대낮에 벌인 패역한 참극을 바라보아야 했을 때에도 그는 마치 아벨을 죽인 가인을 처절하게 바라보아야 했을 아담과 같이 비통하고 상한 심령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그냥 용서하시는 법이 없으시다.

 

다윗이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했을 지라도 그의 죄에 대한 형벌은 아이의 죽음과 압살롬의 패역을 목도(目睹)하는 것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삯을 치르심으로 말미암아서만 그에 대한 용서가 가능했다.

 

그러니 참된 회개와 은혜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어찌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고서도 짐짓 죄를 범하여 맹렬한 심판의 불로 향하려 하겠는가.

 

분명 우리들은 연약한 인간들로서, 믿음 가운데 있을지라도 육체의 연약함 가운데서 완전한 의에 이르지는 못하는 비참하고 무능한 존재들이다.

 

아울러 고의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무거운 것일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와 똑같이 죄를 범하면서 회개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불신자들의 비난은, 하나님의 공의(公義)도 인간의 연약함도 도무지 모르는 어리석은 시기심(猜忌心)이요 자기 죄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참된 그리스도인)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10:39)들이라는 사실이다.



장대선목사

http://cafe.daum.net/largoviva/WoXQ/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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