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트레스디아스

신윤식목사(대구)

by 김경호 진실 2019. 7. 22. 10:15

본문

트레스디아스(Tres Dias. TD)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의 영적인 각성을 위하여 특별한 기회나 여건을 통해 영적인 부분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출발한 운동 가운데 하나다. 일종의 영성훈련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영성훈련이라는 것 자체가 성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성경의 가르침에 집중한다면 영성이라는 것이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하는 ‘영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영성이 인위적인 훈련과 프로그램을 통해서 향상되어진다는 것 자체가 성경적이지 않다. 영성 훈련에 참석했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영성훈련에 참석했더니 자신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자다운 모습으로 향상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사람이 수양이나 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낸다 해도 그리스도가 아니면 저주에 속할 죄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다.  

영성을 굳이 성경적인 의미에서 이해하자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신자가 저주에 속한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의가 되신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에 감사하며 예수님의 종의 자리에서 그의 영광됨을 위해 살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한 일이지 훈련으로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떤 형태로 행해지든 영성훈련’이라는 것은 성경적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조금씩 확산되고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하는 트레스디아스도 예외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트레스디아스에 대해 평가 하는 일에 있어서 한 가지 어려운 점은 그들이 행하는 프로그램의 자료나 추구하는 내용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성경과 상관없이 행해지는 것이고 아예 성경에 대한 가르침이 없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교리적인 측면에서의 문제도 찾아낼 수가 없다.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다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구 트레스디아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도 트레스디아스에 대한 소개와 그들이 행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간략한 내용만 있을 뿐이고 다른 성경적인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혹 그들이 행하는 프로그램의 자료를 구할 수 있을까 싶어서 전화를 했지만 자료는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

그래서 트레스디아스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고 있는 내용들을 참고로 해서 소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들이 이단이냐 아니냐라는 것보다는 트레스디아스가 어떤 것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어떤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으로 끝내고자 한다.

트레스디아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트레스디아스 운동이 로마 가톨릭의 꾸르실료 운동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꾸르실료는 영어의 “코스(course)”즉 과정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인데, 1940년 가톨릭에서 시작된 영성훈련이다. 이 꾸르실료가 개신교에 들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 트레스디아스인 것이다.

트레스디아스는 스페인어로 “사흘”이라는 뜻인데 3박 4일간 독특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에 의해서 실시되는 크리스천 단기 수련회를 일컫는 용어이다. 1949년 1월 7일-10일까지 스페인의 말요카에서 공식적인 첫 모임이 시작되었는데 현재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 내에서는 구체적인 평신도 영성훈련으로 가장 각광 받는 프로그램으로 발전된 것이다.

이 운동은 1967년 5월 한국 천주교회에 처음으로 도입 되었고 현재 천주교회에서는 전체 한국 교구에서 신앙의 새로운 시대 적응을 위한 신앙 사고의 전환의 한 방법으로 활발하게 활용되어지고 있으며, 한국 기독교에는 1985년에 미 8군 교회와 미국에 있는 한인 교회를 통해 소개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트레스디아스가 근거로 삼고 있는 꾸르실료 운동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꾸르실료 운동의 뿌리는 로마 가톨릭 조직의 예수회(제수이트.Jesuit)인데, 가톨릭 예수회는 개혁교도(프로테스탄트)들이 유럽 전역에 빠르게 퍼지는 것을 대항하여 가톨릭을 세계적으로 포교하는데 힘쓰기 위해 16세기 중반 교황 바오로 3세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로 하여금 창설하게 한 것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예수회는 가톨릭 수도회중 가장 많은 신도와 사제수를 자랑하는 최대의 분파인데 제수이트, 또는 한자음을 따서 ‘야소회(교)’로도 불린다. ‘영신훈련’으로 단련한 초대 회원들은 16세기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 등 위기 속에 탄생해 개신교에 맞서 세를 확장해 나갔으며 1540년에 로마 교황청의 정식 인가를 받게 된다.

제266대 교황에 선출된 프란치스코 1세가 예수회의 소속으로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기도 하다. 포교와 신념을 위해 목숨도 버리는 영화 ‘미션’속 주인공도 예수회 소속으로 그려졌고, 우리나라의 서강대학교도 예수회가 세웠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 수원의 ‘말씀의 집’등도 예수회가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예수회를 창설한 로욜라는 신비주의적인 30일 영성훈련을 고안했는데 호흡수련과 관상을 포함하는 그의 수련법은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신비주의 수련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 그의 30일 영성훈련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하여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사흘로 압축한 것이 3일(영성훈련) 운동인 것이다. 결국 트레스디아스는 예수회의 로욜라에게서 물려받은 신비주의 가톨릭의 영성훈련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문제로는 트레스디아스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벌어지는 체험집회라는 점이다. 참가자가 밝히지 않으면 트레스디아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비성경적인 은사주의의 비밀 통로로 활용되기에  매우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한국의 트레스디아스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 트레스디아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레마선교회의 이명범은 김기동과 동역 했던 베뢰아 출신이며, 또 다른 전파자 김광신 목사 역시 베뢰아 출신이자 피타 와그너로 임명된 신사도 운동가라는 점이다.

이것을 보면 트레스디아스는 알파 코스의 주말수양회를 포함하여 신사도운동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모두 말씀보다는 신비체험을 증진하는 면에서 서로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는 이들 프로그램 중에는 묵상기도, 성찬식, 편지 보내기, 선물 보내기, 특별기도회, 세족식, 회개한 죄목 태우기, 촛불 길 걷기, 사랑의 포옹, 아침 만남의 시간, 침묵훈련, 개인 고백의 시간, 간증 시간 등 실로 다양하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어떤 형태로 어떻게 실행되는지 알 수 없고, 이런 프로그램들을 행한다는 것만으로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런 프로그램들로 인간의 성향이 변할 것이라고 믿게 하는 것이다.

이들 프로그램에는 말씀이 없다. 즉 복음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도 무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자신의 죄를 보면서 철저하게 죽은 자임을 알게 되고 선을 행할 수 없는 전적 무능력자임을 깨닫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없다.

오로지 성령 체험만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것이야 말로 빈야드 적이고 신사도적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영성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만 하면 체험하지 못했던 것을 체험하게 되고 믿음이 깊은 신자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말씀을 부인하고 성령의 참된 역사를 왜곡하게 되는 것임을 주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의 3일간의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많이 비판을 받는 것은 ‘아브라조’라는 포옹 인사법이다. 아브라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먼저 받아야 “서로 사랑하라”(요 13:34)는 새 계명을 실천할 수 있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고 말씀하신 것에서 좀 더 나아가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트레스디아스는 이 인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덜어주고, 둘째, 우리에게 공포와 긴장을 극복하게 만들고, 셋째, 신앙생활과 주님의 뜨거운 사랑이 지속되도록 도와주고, 넷째, 마음을 밝고 행복하게 해주며 불가능성에서 가능성을 창조하도록 마음을 고무시킨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들이 말하는 아브라조의 효과라는 것이 성경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설사 서로 포옹하는 아브라조 인사법이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해도 그것은 미미한 심리적인 현상일 뿐이다.

트레스디아스에 참여하여 훈련을 받으려고 할 때, 먼저 수료한 수료생의 인도를 받아 개별적으로 훈련장에 도착하거나 혹은 단체로 참가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때 훈련장에 도착할 때부터 전기 수료생들이 양쪽에 도열하여 새로 입교한 사람들을 환영하고 포옹하며 그것으로 이들은 마치 천사 대접을 받는 것처럼 큰 감동을 받는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결국 어떤 방법으로든 감동을 받게 하여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모든 것들은 복음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복음과는 무관하면서도 마치 신자를 그리스도와 더 가까운 관계로 나아가게 하는 크리스천 운동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니 위험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운동의 특징을 좀 더 실제적으로 표현한다면 수련회기간 동안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마치 왕이나 공주를 모시고 받들 듯이 섬기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찌든 현대인에게 특별히 외국생활로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이런 대접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며 놀라운 경험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또한 모태신앙으로서 형식적인 교회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체험을 통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들 프로그램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자기 스스로 생명력이 있는 존재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로서의 움직임이다. 자기 신앙과 성품을 좀 더 고상하고 멋있고 아름답게 변화시켜서 크리스천 모습으로 존재하기를 열망하지만 그 자체가 인간을 심판의 존재로 보지 않는 마귀적 사고방식임을 간파하지 못한다. 마귀가 인간을 부추기는 것은 참된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 앞에서 참된 존재로 인정될 수 없음에도 성품과 외적인 삶의 변화를 통해서 참된 인간이 되어져 가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이것이야 말로 마귀의 유혹임을 모른다. 인간의 성품이 제아무리 변화된다고 해도 자기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레스디아스에 참여한 기독교인이나 목회자들의 경우 나름대로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게 된다는 것으로 좋은 효과가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기존의 교인이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게 되는 것으로 신앙이 나아졌다고 판단하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으로 좋은 프로그램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천국에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신비한 체험과 현상 등으로 자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도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닌 독자적인 몸을 구축하여 하나님을 상대하고자 하는 취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트레스디아스를 포함하여 그 어떤 프로그램도 그 방향이 인간의 발전으로 향해있다면 복음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대구 은석교회 신윤식 목사



728x90

'신윤식목사(대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G12  (0) 2019.07.23
관상기도  (0) 2019.07.23
크리스천 사이언스  (0) 2019.07.22
알파코스   (0) 2019.07.22
대구 은석교회  (0) 2019.07.16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