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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12

신윤식목사(대구)

by 김경호 진실 2019. 7. 2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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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교회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의미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는 교회를 만나기가 희박하다 할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위에 세워졌다는 것은 교회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피에 있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써만 해석되어야 하고 교회가 지향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 또한 그리스도의 피, 즉 십자가임을 의미한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영광을 증거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는 그리스도가 가신 고난과 죽음과 영광을 교회의 존재 이유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런 점에서 현대 교회는 십자가를 멸시하고 짓밟고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피가 증거 되는 것보다 교회 부흥에 모든 사활을 걸고 있는 모습들이 내 눈에는 그렇게만 보인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로써만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은 교회의 교회됨은 교인 수나 재정, 그리고 외적인 활동이나 프로그램 등등으로 평가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를 생명에 있게 하는 유일한 공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어떤 수단, 방법, 활동 등을 공로로 삼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교회는 그 숫자나 재정이나 크기와는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의롭게 하는 공로임을 고백하며 인간의 모든 공로를 내려놓는 것으로 교회됨이 증거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교회는 모든 관심이 그리스도의 피로 향해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교회로만 향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단에 대해 말하면서 자주 언급한 내용이지만 한국교회는 각종 프로그램과 운동과 훈련으로 넘쳐 난다. 가히 프로그램과 운동과 훈련의 홍수라고 할 수 있다. 온갖 이름의 치유 프로그램, 성장 프로그램, 양육 프로그램과 함께 성령운동, 영성운동, 은사운동, 신사도운동, 빈야드운동, 전도 훈련, 영성 훈련 등등이 교인들의 신앙성장과 함께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교회에 침투하여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고 G12(지투엘브)도 그 중의 하나다.

G12의 G는 하나님의 정부를 뜻하는 “Government”의 첫머리 글자를 딴 것이다. 그리고 12는 예수님의 12제자를 의미하는데 예수님께서 비전을 이루시기 위해 12명을 제자로 삼아 그들을 양육하고 훈련을 통해 강화하여 세상에 파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가 12명의 제자를 낳고 제자로 삼아 땅 끝까지 성장하여 나가는 “세계적 제자화와 복음화의 전략”이라는 것이 그들의 말이다.

이처럼 G12는 예수님이 12제자 삼은 것을 기본 원리로 하여 시작되었지만 예수님이 12제자를 부르신 것과 그들이 말하는 세계적 제자화와 복음화의 전략이라는 것은 공통점이 전혀 없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이 12제자를 부르신 것이 과연 그들을 양육하고 훈련하여 세계를 제자화하고 복음화하고자 하는 비전을 갖고 계셨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자기 비전에 실패했고 겨우 12명의 제자를 훈련하고 강화하는 일에도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보여줬던 제자들의 실상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 제자는 예수님을 팔았고 또 다른 한 제자는 예수님이 붙들렸을 때 자기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하고 다른 제자들 또한 3년간 따랐던 스승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현장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들에서 예수님의 제자답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의 제자들의 활동만을 생각하며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강화하신 결과로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훈련의 결과가 왜 십자가 사건의 현장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G12가 예수님께서 비전을 이루시기 위해 12명을 제자로 삼고 그들을 훈련시키고 양육했다고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이 그러한 비전을 가지고 제자들을 부르셨다고 말한 부분이 없다. 요 6:40절을 보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말한다.

영생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영생의 길로 세상에 오신 것이고 길이 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따라서 굳이 예수님의 비전을 언급하자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이러한 비전으로 제자를 부르셨다면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로 가게 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좁은 길로 가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길로 가게 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으로 인해 죽는 길로 가는 제자로 삼기 위해 부르신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기 영광을 추구하다가 결국 십자가 사건에서 실패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고 성령이 오셨을 때 비로소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미움을 받고 죽는 길로 가게 된 것이다. 즉 십자가의 길로 가게 되는 일에 인간은 실패했고 다만 성령이 오심으로 성령에 의해 주게 붙들린 자가 되어 복음을 위해 살게 된 것이다.

즉 제자의 존재는 복음의 전파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역할로 부름 받은 것이다. 이점에서부터 G12는 제자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잘못된 이해는 G12만이 아니라 전도를 강조하는 현대 교회의 총체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G12의 창시자는 ‘세자르 카스텔라노스’(콜롬비아 ICM, 국제카리스마미션 교회)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예수님이 12 제자 삼은 것을 기본 원리로 G12를 시작하였고 이 선교운동 이후에 교인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속칭 뒷문으로 빠져나간 교인들의 숫자 또한 많은 것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 후에 그는 1985년 한국의 조용기 목사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방문하여 순복음교회의 셀 조직을 롤모델로 사용하면서 성공을 하였다고 주장하는데, 본인 스스로 밝히는 G12의 동기에 대해서는 1983년 “너의 교회는 하늘의 별들만큼 바닷가의 모래만큼 커져서 사람 수를 셀 수 없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적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의 부인도 영의 말씀을 받았다고 하는데 “12개의 돌이 있었는데, 그는 주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라고 증언한다. 이것을 보면 세자르 카스텔라노스의 G12는 신비주의적인 직통계시와 예언을 근거로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견해로는 카스텔라노스가 알파운동과 순복음교회의 셀 조직을 변형시킨 것이며, 그것에 신사도운동적인 성향을 접목시킨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처럼 조용기 목사의 영향을 받은 세자르 목사는 조용기 목사를 자신의 영적인 아버지로 여긴다. 지난 7월 27-29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5 G12 컨퍼런스에서도 세자르 목사는 조용기 목사를 초청하여 자신의 영적인 아버지로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이 10여 년 동안 목회에 혼신을 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목회를 그만 둔지 4개월이 되는 어느 날, 아내와 함께 해변으로 휴양을 갔는데, 그 때 조용기 목사의 ‘4차원의 영성’이란 책을 가지고 갔었고 그 책을 통하여 오늘날의 사역을 이룰 수 있는 꿈을 받았으며, 거기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의 원리를 발견했다는 간증을 하기도 한다.

이 컨퍼런스에서 세자르 목사의 12제자 중의 하나인 앤드류 목사라는 사람은 강의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교회를 세워야 할 것인가?’를 말하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뤄 가시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꿈을 가져야 하고, 꿈만 꾼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는 내게 주신 꿈을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꿈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결단 다음에는 이 꿈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기도하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 꿈을 이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내용들 하나하나에는 지독한 인본주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말에 열광한다.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든 아니든 인간의 꿈과 결단과 열심을 강조하는 말에 열광하는 모습이야 말로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종교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G12의 2015 컨퍼런스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서 기독교를 빙자한 종교 단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나님, 예수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을 뿐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가 누구신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인간에게만 모든 초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위해 우리는 최고의 기술과 탁월함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맞는, 곧 새로운 세대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선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중에 배우나 탤런트나 정치가나 음악인들이 나와서 TV를 통해서도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한다.

과연 이것을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까? 단연코 아니다. 다만 인간을 선동하기 위한 종교적 멘트일 뿐이다. 이점에 있어서는 현대 교회도 무관하다 할 수 없다. 때문에 현대 교회가 이단을 경계하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들의 실상부터 점검해야 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만이 아니라 G12는 알파운동, 빈야드운동, 신사도운동과 접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보인다. 이처럼 알파운동, 빈야드운동, 신사도운동과 접목되어 나타나는 G12의 신비주의 특성은 세자르 목사의 자기 체험에 대해 말하는 내용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의 “G12 비전으로 세계를 주님께”라는 책 49쪽에서 그는 “나의 몸은 바닥에 쓰러졌으나 나의 영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 순간에 나는 나를 호위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어린아이의 청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수천 명의 천사를 보았다. 그들은 좁고 커다란 하나의 터널을 만들어 나를 안전하게 지켜 주었다. 앞과 뒤가 보이지 않는 그런 긴 터널 같은 곳에 내가 있었다. 그들이 하늘로 올라가자 나 역시 그들을 좇아 올라갔다. 천사들이 하나님께 경배의 찬양을 올려 드리기 시작하자 비록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였으나 나는 기쁨으로 충만했다”라고 말한다. 이것을 보면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 대화를 하고 천사를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책 23-24쪽에서는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예수님을 일대일로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가다듬고 그분께 이렇게 속삭였다....... 약 15분이 경과한 후에 내가 있던 그 방은 순식간에 찬란한 빛으로 밝아졌다. 그 느낌은 마치 하늘과 땅은 사라지고 천지의 무대 위에 지극히 작은 내가 장대한 그 분 앞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환상 가운데 사람의 손과 같은 형체가 내 곁으로 다가와 머리에서 발끝까지 쓰다듬어주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따스한 손길이 닿은 곳마다 나의 죄악의 무거운 짐이 벗겨지는 체험을 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서 죄가 벗겨지는 체험을 했다는 것도 비성경적인 말일 뿐이다.

그런데도 군중들은 이러한 말에 열광하며 신비한 체험을 한 상대방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한다. 자기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우시고 사용하시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체험할 수 없는 특별하고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 체험이라는 것이 성경적인지 아닌 지에는 관심 없고 무조건 체험을 했다는 것만으로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이러한 종교성을 등에 업고 이단이 성행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단의 공통점은 신비주의와 직통계시로 연결되어 나타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자르의 책을 보면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거나 음성을 들었다는 내용이 수십 번 등장하고 심지어는 일상적인 생활의 문제에서까지 예수님이 직접 말씀을 주신다고 말한다.

또한 예수님이 손으로 자신을 만졌고 손으로 만지는 곳마다 무거운 죄가 벗겨진다고 하면서 이것을 거듭난 것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성경에는 이러한 거듭남이 기록된 적이 없고 예수님이 손으로 만져주셔서 죄가 용서되는 것도 없다.  

이러한 신비적 체험은 세자르만이 아니라 그의 부인 끌라우디아에게도 나타났다고 하는데, 특히 그녀는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가서 다시 한 번 세례 받을 것을 말씀하셨고 멕시코인 선교사가 세례를 베풀어 줄 것이라고 말씀했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는 순간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께서 내려오심을 영적으로 느낀 순간 그의 삶이 변화되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세례를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것과 비슷한 것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세자르의 책에는 축귀, 축사 등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처럼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성경 이해와 함께 신사도 운동의 잘못된 현상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들이 G12가 빈야드 운동, 신사도 운동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해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G12라는 프로그램이 한국의 기독교에 조금씩 정착되고 정당화하는 이유는 교회성장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교회성장이란 대부분이 기적과 표적이 나타난다는 현상에 의한 교회에서 교회로의 수평적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음은 교회성장으로 증거 되지 않는다. 한국의 기독교가 교회성장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으로 미화하며 복음으로 인한 정당한 결과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다면 이단의 성장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이단이라고 해서 외면 받고 결국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크게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교회 성장을 복음의 정당성으로 여기거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초점을 맞춰 말한다면 이단이라 할지라도 성장했다면 정당한 교회가 되고 성장하지 못하면 아무리 바른 복음을 전해도 정당하지 못한 교회라는 결론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교회가 성장하면 이단이라거나 교회가 성장하면 안된다는 뜻도 아니다. 교회가 성장하든 성장하지 않든 하나님이 보내시기도 하시고 떠나게도 하신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말한 것처럼 G12는 12명의 훈련된 제자를 통한 통치를 뜻한다. 여기에서 또 하나 등장하는 것이 셀이다. 예수님이라는 1명의 스승이 12명의 제자를 키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한 것처럼, 1명의 스승과 12명의 제자가 견고한 셀을 형성하여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고, 건강한 셀이 생명력을 갖고 번식하면 무서운 핵폭발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즉 스승과 제자라는 견고한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영적 스승을 두어야 하고 새 신자도 어느 정도 믿음이 성장하면 반드시 제자를 삼아야 하며, 그 제자도 언젠가는 12명의 제자들에게 영적 아비가 되어 소그룹을 인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1명의 영적 아비가 12명의 영적 자녀를 잘 양육시켜 놓으면 그들도 결국에 영적 아비가 되어 각기 12명의 제자를 삼게 된다는 것인데, 이들이 말하는 셀은 결국 다단계 판매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셀로 구성되는 G12는 모든 신자를 잠재적 리더라고 말한다. 모든 신자는 반드시 어느 한 셀에 속해야 한다고 하고 ‘영혼구원-훈련-제자화-리더’의 과정을 거쳐 영적 아비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땅 위에 영원히 존재할 교회를 위해 준비한 예수님의 묵시적 가르침이라고 하면서 그것이 곧 G12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는데 과연 예수님이 그러한 가르침을 주시고 하늘로 가셨는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G12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복음과 무관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도 무관하며 교회 성장에 눈 먼 자들의 놀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구 은석교회 신윤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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