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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여행/마지막 회> 주님의 마지막 결산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20. 1. 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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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주차. <사마리아여행/마지막 회> 주님의 마지막 결산 12.2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11).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 먼 나라로 갈 때에(12),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12).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14).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15),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16).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17),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18),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19),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나이다(20).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21).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22).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23), 곁에 선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24),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는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25),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26).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2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28). (19:11~28)







1. 달란트 비유와의 비교



오늘 이 비유는 마 25:14-30에 있는 달란트 비유와 유사합니다.

1) 두 비유 모두 주인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종들에게 일정액의 돈을 맡깁니다.

2) 또 주인이 돌아와서는 맡긴 돈의 결과를 회계하기 위해 종들을 부릅니다. 그리하여 충성된 종에게는 상을 내리고 게으르고 악한 종에겐 벌을 내립니다.



반면에 차이점도 있습니다.


1)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맡긴 돈이 거액이며 각각 종들이 다른 액수의 돈을 맡습니다. 그러나 오늘 므나의 비유에서는 맡겨진 금액이 비교적 소액이고 종들이 모두 동일한 금액을 받고 있습니다.

2) 달란트 비유에서는 주인과 종들만 등장하지만 므나 비유에서는 주인과 종 외에 백성들이 함께 등장하고 있습니다.

3) 므나 비유에는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간다는 이야기가 삽입되었지만 달란트 비유에는 누락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 비유는 내용상 비슷하지만 동일한 비유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예수님은 적절한 때와 장소에 따라, 그리고 대상이 누구이냐에 따라 비슷한 비유를 들어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진리의 복음을 설파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때로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른 관점에서의 기록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혀 다른 사건에 대한 비슷한 기록을 두고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기록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성경비판자들의 견해와 주장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2. 예루살렘 근처



아무튼 여리고를 떠나신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 근처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제자들과 백성들 사이에서 이제 드디어 하나님의 나라가 즉각 나타날 것이라는 오해가 발생했습니다(11)




알다시피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끊임없이 고대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바라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라는 나라는 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새로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이 이 나라의 새로운 임금이 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가령 요 6:15을 봅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그런 판에 바로 앞에서 예수님이 직접 내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자 구원함이라“(10)고 말씀하셨으니 드디어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새로운 왕으로 예수님이 입성할 줄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마침 유월절 축제기간이 도래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의 유월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순례자들을 포함한 더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런 정보는 로마당국의 귀에까지 들어갔을 것이며 그들도 바짝 긴장하고 더욱 검문검색을 강화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 예수님은 백성들의 잘못된 사상을 고쳐주기 위해 교훈을 하실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은 하나의 비유를 들어 백성들을 가르치십니다.





2. 4막의 연극



, 오늘 이야기를 연극무대에 올려놓고 해설해 봅니다. 구조적으로 오늘 이야기는 총 4막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막은 12~13절이고 2막은 14절이며 3막은 15~26절이며, 4막은 27절입니다.





1(12~13)



1) 연극의 막이 오릅니다. 먼저 한 귀인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에서는 아직 왕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에게 찾아가 왕권을 승인받아야 합니다(12).



2) 가기 전에 귀인은 열 명의 종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각자에에 은화 한 므나씩을 나누어 주면서 이 돈으로 장사를 하라고 명령을 합니다(13)

~ 잠깐 화폐단위에 대해 배워보겠습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세 화폐가 공존했습니다. 그것은 유대화폐와 그리고 로마와 그리스의 화폐단위입니다.

먼저 성경에 등장하는 유대화폐단위로는 최소값이 세겔입니다. 이는 다시 금세겔과 은세겔로 나누어지는데 1 세겔은 노동자 4일 품삯에 해당하고 1 금세겔은 15 은세겔이므로 60일치 품삯입니다. 하루 품삯으로 치면 로마는 1 데나리온이고 그리스 즉, 헬라는 1 드라크마입니다. 이를 환산하면 1 세겔은 4데나리온 혹은 4 드라크마가 됩니다.

다음으로 유대화폐로 달란트(talent)와 므나(mina)가 있습니다. 먼저 달란트인데 원래 이것은 하나의 덩어리를 뜻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재능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것도 금 달란트가 있고 은 달란트가 있습니다. 은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이자 드라크마에 해당하고 금 달란트는 은 달란트의 15배이므로 90,000 데나리온(드라크마)에 해당합니다. 이를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1 금 달란트는 하루 품삯을 10만원으로 칠 때, 90억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등장하는 1 므나는 얼마나 되나요? 1 므나는 금달란트의 60분의 1이므로 약 15천만원 정도 됩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종에게 각자 맡긴 돈이 적은 액수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2(14)



이제 2막이 열립니다. 자신의 주인이 왕위를 받으러 떠난 것을 알게 된 백성들이 자신들의 주인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여 몰래 사신을 파견하여 반대의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원치 않는 주인이 왕이 된다면 더 삶이 고달파지리라 생각했습니다.



역사가들은 예수님이 헤롯 아켈라오를 염두해 두고 이 비유를 들었다고 추정합니다. 실제로 헤롯 아켈라오는 팔레스타인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 로마황제를 알현하러 갔습니다. 그는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이 세운 에돔의 다른 이름인 이두메 출신입니다. 알다시피 에돔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다윗왕 때 유다에 복속되어 속국으로 전락하여 조공을 바치며 생존한 신하의 나라입니다. 이 신하의 나라 출신이 이제 상황이 역전되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아켈라오가 왕이 되는 것을 극히 싫어했습니다. 결국 백성들의 이런 반대로 인해 아켈라오는 왕이 아니라 분봉왕(로마에 의해 임명되는 왕)이 되었고 나중에 다시 백성들의 반대 상소로 인해 AD 6년에 실각하고 맙니다. 예수님의 오늘 이 이야기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꾸며진 비유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저는 마라톤의 유래를 떠올립니다. 주전 490년경에 동방의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하여 아테네와 전쟁을 벌이는데 예상을 뒤엎고 아테네가 승리합니다. 이 기쁜 승리의 소식을 본국에 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라는 병사가 쉬지 않고 42.195km를 달려 아테네네 도착한 뒤 기뻐하라. 우리가 승리했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고 합니다(물론 그 거리가 정확한 것인지는 모릅니다. 하나의 레전드가 된 것이지요). 이 고사에서 힌트를 얻어 쿠베르탱 남작이 마라톤경기를 고안하고 1896년 제1회 올림픽대회에서 채택했다고 하지요.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주인이 자신들의 왕이 되는 것을 극구 막기 위해 백성들의 사신으로 주인보다 먼저 로마황제에게 도착하기 위해 달려가는 한 사람의 질주를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신앙여정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4)





3(15~26)



그러나 오늘의 비유에서 백성들의 시도는 실패하였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귀인은 왕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선 종들을 불러 결산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이야기의 의도를 간파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왕위를 두고 발생한 실제 역사적 사건에서는 백성들의 시도가 일부 성공하였으나 이와는 별도로 이 비유에서는 백성들의 시도가 실패한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이 암시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을 두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도가 아무리 극렬하다 해도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사람들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모든 모략과 지혜와 술수를 다 동원해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릴실 것이며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이며 살아나시어 다시 하늘에 올라 원래의 자리에 앉으실 것이며 영원토록 하나님의 나라를 얻어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왕이 되어 다시 돌아와 모든 사람들의 죄악을 두고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3막에서 일어나는 주인의 결산의 내용이자 의도이자 목적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선 주님이 각자에게 맡기신 복음의 의무를 회계하실 것입니다. 복음을 다룬 태도와 복음과 관련된 봉사를 위하여 그들의 재량에 맡겨준 은사와 기회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회계하고 결산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을 명심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신앙의 책무들을 망각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이면서 땅의 일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망각하고 배반하는 죄악입니다. 사도 바울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의 마침은 멸망이라“(3:19)고 경고했습니다.



이제 각 종들의 회계하는 장면들을 보겠습니다.



첫째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불렷다고 보고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실적을 올렸으멩도 이 종은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참으로 겸손하게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16). 마찬가지로 다섯 므나를 남긴 둘째 종도 그리하였습니다. 이에 왕이 된 주인은 둘을 칭찬하고 상으로 고을을 통치하는 권세를 허락합니다(17, 19).

~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17절의 주인의 평가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다는 표현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한 므나를 가지고 열므나를 남긴 것은 엄청난 실적이요 공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이룬 실적들은 지극히 작은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더욱이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새로운 임무에 비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들은 한 마디로 조족지혈입니다.

이제 세 번째 종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돈을 불린 것이 아니라 수건으로 싸두엇다고 보고합니다(20). 이 종은 내가 당신의 돈에 손을 대지 않고 잘 보관했음을 은근히 자랑하는 것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당신 돈을 훔쳐 달아나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는 속내가 담긴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 종은 주인이 묻지도 않은 말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킵니다. 21절을 보세요. ”당신은 엄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둡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한 마디로 악평입니다. 이 악한 종의 입은 아무 근거도 없이 주인을 헐뜯는 입입니다. 대개 심리학적으로 이런 사람은 매우 이기적인 상상력이 뛰어난 경우입니다. 모든 일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주인이 자신에게 돈을 맡기는 행위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입니다. 늘 부정적인 사고에 길들여져 있기에 주인이 돈을 맡긴 것을 지나치게 의심하고 반드시 무슨 음모나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도 의심하고 삐딱하게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비판적이고 모든 일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불만을 가지는 타입니다.

~ 이에 주인은 그렇게 내가 고혈을 짜내는 자로 여겼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어 이자라도 벌 수 있도록 하지 않았느냐고 힐책합니다(22). 은행에 저금하면 악한 종이 노력하지 않아도 이자를 벌어줄 수도 있는데 이 악한 종은 그것마저 주인을 위해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본심적으로 이 종은 주인을 미워하고 불순종하는 자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입니다.

~ 마침내 주인은 이 악한 종을 향해 판결을 내립니다. 그것은 악한 종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를 가진 착하고 충성된 중에게 주라고 명령합니다(24). 그런데 이 명령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합니다. 대개 사건의 전후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뒤늦게 마지막 판결만을 들은 사람의 경우엔 어째서 예수님은 적게 가진 자에게서 제산을 빼앗아 부자에게 주는가?“하고 오해할 것입니다. 이것이 악한 자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악한 자는 본질보다 현상을 중시하고 일의 시초와 과정과 본말과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또 무엇이 옳고 그른것인가를 따지기보다 결과만 놓고 따지고 판단합니다.

~ 그러나 이 판결은 우리 그리스도인을 염두하고 내린 판결입니다. 만약 당신에게 주신 복음의 의무들을 당신이 소홀히 하고 땅에 묻어두고 산다면 당신에게 주신 모든 은사들을 하나님이 도로 가져가시고 다른 사명자에게 은사들을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26절의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임무를 소홀히 한 게으른 종에게 엄한 문책이 떨어질 것입니다. 이 악한 종에게 내린 주인의 판결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4(27)



3막까지 종들에 대한 판결이 단행되었습니다. 충성된 종들은 성급을 받고 악한 종은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아마 주인의 집에서 추방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주인의 왕위를 반대한 배성들에 대한 판결이 남았습니다. 주인은 망설임없이 백성들을 원수라고 구정하며 그들을 멸하라고 명령합니다(27). 이 명령은 주님을 반대한 자들에게 궁극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쉼 없는 사랑을 받고도 그 은혜를 부정한 모든 사람들은 주님이 엄중한 심판대 앞에 서서 가장 무서운 지옥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3. 결어(28)



이제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 나라가 언제 임하게 되며 그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충성해야 하는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요약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첫째, 하나님의 나라의 외형적인 도래는 바로 당장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론자들이나 어떤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현혹되거나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도 이런 류의 작자들이 유투브 상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성경 밖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경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특정한 사람의 귀에 별도의 구원의 방책이나 무슨 큰 일을 맡기시기 위해 귀에 음성을 들려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 둘째, 또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 특정한 국가에 국한되거나, 어떤 정치적인 자유를 얻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교인들은 아직도 그리스도의 도래를 고대하며 이스라엘만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들은 마지막 버스가 떠난 뒤에 뒤늦게 정류장에 나아와 버스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온 천하에 울려 퍼졌으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듣고 주님에게 나올 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 셋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어떻게 어디에 도래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날에 충성했던 이는 상을 받고 충성하지 못한 이는 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올 한 해 동안 진행되었던 사마리아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그 마지막 장면은 드디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시는 예수님의 뒷 모습입니다. 이제 모든 약속의 시간이 다다랐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구속의 때가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탕감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해 창세전에 예정되었던 삼위일체 하나님간의 구속의 언약을 몸소 이루기 위해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를 향해 스스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한 마디로 이 걸음은 죽음을 향해 내딛는 걸음입니다. 우리 같으면 발을 당에다 붙이고 가기 싫어 비틸 터인데 우리 주님의 마지막 행보는 참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그것이 28절의 기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습을 잊지 마세요. 주님은 윌를 구하기 위해 그 참혹한 십자가 형벌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보다 앞서서걸어가셨습니다. 함게 읽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on ahead) 가시더라



주님 주님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셨고 그 일을 자발적으로, 기꺼이 감당하셨지만 참으로 부끄럽게도 우리는 죽기 싫어 발버둥칩니다. 이 죄인을 용서하세요. 자기 밖에 모르는 이 불쌍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오직 주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힘 입어 담대케 하옵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는 도무지 주의 뜻을 이룰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탐욕에 빠진 저희는 도저히 자발적으로 주의 길을 따를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니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에필로그>

2019년 한 해 동안 주님과 함께 사마리아여행을 동행토록 허락하신 은헤에 감사드립니다. 이 여행을 통해 저는 늘 낮고 천하고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을 먼저 사랑하시고 보살피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모습을 재발견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앞으로 이 점을 명심하고 사는 날까지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으로 맡은 바 복음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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