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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인간이란 무엇인가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20. 1. 1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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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강설> 2. 인간이란 무엇인가? 2020. 1.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6~28)



인간 창조이야기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입니다. 그중에 사람에 대한 창조 이야기는 창조 기사의 백미입니다. 이에 대해 전 피츠버그 신학교의 역사신학 교수였던 존 거스너(J. Gerstner) 박사는 이것을 다섯 가지로 요약합니다.

사람은 창조되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사람은 몸과 혼으로 창조되었다.

사람은 동물보다 우월하게 창조되었다.

사람은 거룩하게 창조되었다(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를 기준으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람은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가장 고차원적이며 가장 하나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는 이것을 인격과 도덕성과 영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먼저 인격적인 속성입니다.

~ 인격을 소유하려면 지, , 의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고유한 속성인데 이 속성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나누어 주시고 공유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속성은 오로지 인간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은 사람이 하는 것처럼 논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단지 어떤 문제나 자극에 본능적으로 반응할 뿐입니다. 또 동물은 인간처럼 새로운 무엇을 만들거나 의미있는 조작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물을 본 떠 모형을 만들거나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문명의 이기들을 창작하지 못합니다. 그저 주어진 본능대로 일정한 행동양식을 따르고 번식할 뿐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도덕성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 도덕을 가진 사람을 인격적인 사람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완전히 도덕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도덕적인 존재라는 것은 자기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주어진 양심에 따라 살면서 죄를 짓지 않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이를 두고 어거스틴은 죄를 짓지 않을 가능성을 가진 상태’(posse non peccare)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담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죄악을 범하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러자 즉시 영적인 타락과 함께 그에게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이후 모든 인류는 이 사망의 죄, 원죄를 물려받아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후 인간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non posse non peccare)가 된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형상은 영적 존재로 나타납니다.

~ 영이신 하나님은(4:24) 인간에게도 영혼을 불어넣으시어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사람은 식물이나 동물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soul, spirit)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위한 것입니다. 영적 존재와 교제하기 위해선 교제의 대상 또한 영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분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사랑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피조물을 보호하시고 보존하시지만 오직 인간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구원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동정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속하시고 구원받은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십니다. 여기에 사람의 참가치가 있습니다.



둘째,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 남자는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시고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의미합니다. 하나는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는 그렇다고 둘 사이에 우월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정리하면 남녀의 성별은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가 아니고 여자는 남자가 아닙니다. 우주에서 가장 슬픈 일 중 하나가 남자가 여자가 되려고 하거나 여자가 남자가 되려 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본질과 기능과 목적이 다른 사람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 위에 군림하거나 여자가 남자의 통치 대상도 아닙니다. 둘은 서로 한 몸을 이루어 사랑하고 보호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물론 이 일은 살아생전 이루지 못하는 우리의 소망일 것입니다).

~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결혼을 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극적인 결합에 목적을 두신 것입니다. ,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모든 죄인들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게 하심을 의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결혼 관계로 비유하듯이 그리스도는 우리 신랑이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바로 이것이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어 둘을 부부관계로 짝지어 영원히 한 몸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우주적 섭리가 내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누가 우월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 앞에서 동등합니다.

~ 그러나 서로에게 다른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이나, 혹은 교회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습니다. 남자는 인도하고 보호하고 돌보고 교훈하고 주도하며 모든 일에 책임을 집니다. 반면에 여자는 수용하고 응답하고 출산하고 양육하고 따릅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인간의 가정은 삼위일체론과 깊은 유사성이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은 한 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각 위에는 구별이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구속을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구속을 성취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구속을 각 개인에게 적용하십니다. 또 삼위하나님은 각 위에 상호 종속되거나 발출되어 존재하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사람의 구속을 위한 아버지의 소원을 수행하시려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아버지께 종속시키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된 뜻에 자신을 종속시키십니다. 결혼에 있어서 이 자발적인 종속의 관계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남자에 대한 여자의 종속과 여자에 대한 남자의 종속은 자발적입니다. 이에 대해 존 거스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여자도 아무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여자는 자발적으로 한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을 하고 그 남자에 자발적으로 순종한다

~ 성경에도 이 자발적인 순종이 기록되어 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벧전 3:1)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3:18~19)

~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순종하는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 가정들이 겪고 있는 위기의 단초입니다.

(특별히 요즘 시대는 남자들의 수난시대입니다. 가정마다 매 맞는? 남편들이 늘고 있다는 슬픈 소식입니다. 60대 남편들은 하루에 밥을 세 끼 먹는다고 매를 맞고, 70대 남편들은 눈앞에 얼쩡거린다고 매 맞고, 80대 남편들은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났다고 매를 맞고, 90대 남편들은 남들은 다 산에 가 잠자는데 혼자 방에서 잔다고 구박을 받는다 합니다. ggg)



셋째, 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창조되었습니다.

~ 인간의 구조에 대해 논쟁이 있습니다.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크게 몸과 혼과 영으로 구분하는 삼분설이 있고 육체와 영혼으로 구분하는 이분설도 있고 히브리서 4장이 말하듯이 몸과 혼과 관절과 골수 등 4분설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크게 물질적인 부분과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구분하고 이 비물질적인 부분을 성경은 때로 혼, 영 혹은 영혼, 인격, 마음, 정신 등으로 표기합니다.

~ 무엇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이 영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이것을 나타내는 특별한 단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먼저 네페쉬으로 주로 번역되고 루아흐는 주로 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는 주로 루아흐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네페쉬soul, ‘루아흐spirit로 번역했습니다. spirit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특별한 교재를 나눈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도 이 둘을 구분했습니다. ‘네페쉬’()프쉬케, ‘루아흐()’프뉴마로 번역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사용 용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 ‘프쉬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가지고 있음을 말하지만 프뉴마는 구속된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특별한 능력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 정리하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혼과 영을 주셨습니다. 이 혼은 생각할 수 있는 정신적 기능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혼의 기능만으로는 하나님을 인지하고 관계를 맺고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반드시 영의 기능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와 타락 후에 모든 인간에게 이 영의 기능이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의식하거나 인식하거나 이해하거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죽은 우리의 영적 기능을 회복시켜야만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되고 느끼게 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났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오셨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성령님이 오시지 않은 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8:9 선언을 기억하고 사세요. 이 성령 하나님이 아니고선 그 누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주님이라 인정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이 모든 것을 다 선물로 받고 그것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송축합니다.



넷째, 사람은 동물보다 우월하게 창조되었습니다.

~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람은 동물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영적인 부분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육적인 힘은 어떤가요? 과연 인간이 동물보다 힘이 더 우월한가요? 우리가 코끼리처럼 힘이 셉니까? 사자나 호랑이처럼 빨리 달립니까? 독수리처럼 자기 마음대로 하늘을 날 수 있습니까? 그런 점에서 사람은 동물보다 유약한 존재입니다.

~ 그런데 이런 의견에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의 깃발을 올렸던 마르틴 루터입니다. 그 창세기 강해에서 원래 아담은 지음을 받았을 때 동물들이 가졌던 힘보다 더 탁월한 힘과 능력을 가졌다고 보았습니다. “범죄 이전에 아담의 눈은 아주 예리하고 맑아서 시라소니나 독수리를 능가했으며, 사자나 곰보다 더 강해서 그들을 마치 강아지 다루듯이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죄로 말미암아 다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 죄가 그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죄는 암세포처럼 우리 몸 안에 도사리고 있으면서 영원히 떠나지 않고 우리의 정상적인 모든 기능들을 다 마비시켜 버립니다(조카가 지금 암 투병 중입니다. 건강한 청년이었던 그가 암세포에 포로가 되자 정상적인 기능을 행사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습니다). 죄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에 사로잡히면 올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죄를 들키지 않기 위해 그는 모든 인생을 거짓으로 철저히 위장해 두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반드시 이런 위장과 모순과 위선들을 다 밝혀내어 그에게 불명예의 관을 씌우고 몰락시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이런 인물이 한 사람 있지요. 그의 종말이 눈에 보임에도 아직도 그는 자기를 합리화하고 변명하고 나만 그랬냐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마귀의 자녀일지 모릅니다.

~ 어쨌든 사람은 범죄와 함께 타락했습니다(이 부분은 따로 다룰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은 많은 중요한 기능들을 상실했습니다. 이 상태를 히브리서 기자는 짐승보다는 조금 높지만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짐승과 천사 사이에서 둘을 중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가 끊어진 상태에서 자기보다 더 낮은 존재인 짐승들과 어울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원래 천사는 구원받은 상속자를 섬기는 영으로 지음을 받았는데(1:14), 타락 후에 오히려 사람이 천사를 섬기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 분명히 사람은 동물들보다 우월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구속받지 않은 상태의 인간은 동물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들은 땅 위에서 살면서 땅을 바라보고 땅의 일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짐승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짐승들도 그런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하늘의 일을 동시에 하고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3:20)고 권면했습니다.



다섯째, 사람은 거룩하게 창조되었다(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 하나님은 사람을 거룩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죄로 인해 모든 부분이 비정상적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사람의 죄로 인해 자연 세계도 파괴되었습니다. 지구의 환경이 저주를 받자 인간에게 사망이 찾아왔고 육적인 생명의 연수도 천년의 수준에서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수준으로 급전직하했습니다. 이보다 더 슬픈 것은 육적으로만 약해지고 부서진 것이 아니라 영혼의 기능, 즉 생각마저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인간의 이 상태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6:5) 이라고 진단했습니다.

~ 한 마디로 인간은 철저히 타락했습니다. 인간에게 선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가 제아무리 교육을 받고 선의 옷을 입고 웃음을 띠고 다른 이를 섬기고 선행을 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죄인일 뿐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선해 보여도 하나님의 기준에는 모든 인간이 죄악 그 자체입니다. 무엇보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는 거룩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말이 있듯이 범죄와 함께 타락한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거룩하지 않은 일입니다.

~ 바로 이 점이 인간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지만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를 거룩한 존재로 새로 만드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이렇게 새로 만들어지고 다시 거룩해지지 않으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11:45, 20:26/ 참조: 시편 13~14, 잠언 26))고 하셨습니다.



2. 자유와 책임



오늘 본문에서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인간은 창조 후 자유의지적 존재로 지음 받아 마음껏 자신의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에 합당한 책임도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음과 동시에 책임도 동시에 주어졌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만약 사람이 자신을 창조했다면 사람은 아무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을 창조한 자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이것은 그의 삶 전 영역에서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 도덕적 책임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죄를 범할 필요가 없음에도 죄를 범하거나 그것도 자주 죄를 범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자기를 변호하고 합리화해도 스스로 부득이하게 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나아가 자신의 죄를 보편화시킵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우깁니다. 그러나 지옥에 갈 때에도 나만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고 우겨 보세요. 지옥갈 때 동료들이 있으면 기분 좋겠습니까?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악행을 하지 않고 다른 이를 괴롭게 하지 않을 도덕적 책임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자유는 책임이라는 부분과 공유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개인적인 자유의 일탈이 극심한 사회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격적인 행위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니편내편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서로 적대시합니다. 바로 이것이 사탄이 노리는 인간사회의 파탄의 장면들입니다. 어느 사회학자가 예견했듯이 미래의 인간의 뇌는 단지 두 개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것과 내 편은 좋은 것이고 니것과 니편은 나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것이겠습니까?



3. 결어



세 가지를 생각합시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감사해야 하고 그것을 인해 그분을 영원토록 찬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과 뜻과 힘과 전인격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여i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진리이자 우리 삶의 규범이 됨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피조물 안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침마다 햇빛과 맑은 날씨와 좋은 기온과 바람과 향기를 주신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즐거워하라”(33:1)고 노래했습니다.



셋째, 우리는 자연에 대해 책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리를 부여 받았지만 자연을 파괴하는 자유를 부여받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전 지구적으로 자연파괴의 위험신호가 들여옵니다. 호주의 산불이 그냥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극지방의 얼음들이 나날이 녹아 내리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지구의 표면 온도가 계속 끓어올라 사람이 살지 못하는 환경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자유의 남용이자 오용의 결과입니다. 아울러 타인에 대한 책임도 다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귀한 존재임을 기본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마귀의 자녀인지는 그다음의 문제입니다. 인간을 사랑해야 합니다. 더욱 사랑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권면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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