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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2장 1-10절/요나, 드디어 기도하다

박석중목사(대전)

by 김경호 진실 2020. 3. 10.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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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피해 도망치던 요나는 결국 하나님께 붙잡혀서 바다에 던져지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의식이 있었다는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드디어 요나는 기도했습니다.

1. 여호와께 기도함
1절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그때에야 비로소 요나가 기도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았을 때에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폭풍을 만났을 때에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선장이 기도하라고 책망할 때에도 기도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물고기 뱃속에서 비로소 기도했습니다. 그렇다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왜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절박하게 기도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그가 기도하지 않으면 안될 자리까지 끌고 가신 것입니다. 그 전에 기도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평상시 기도하지 않고, 작은 고난 속에서 기도하지 않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자마자 기도합니다. 그렇게라도 기도하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요나가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곳은 어디였습니까? 1절에 보면 물고기 뱃속입니다. 물고기 뱃속은 얼마나 깜깜하고, 뜨겁고, 답답하고, 냄새나는 곳입니까? 허리도 펴지 못하고, 다리도 펴지 못하고, 숨도 쉬지 못하고, 죽을 고통을 당했을 것입니다. 2절에서는 스올의 뱃속이라고 했습니다. ‘스올’은 죽음, 음부의 상태, 지옥과 같은 곳을 의미합니다. 3절에는 “깊음 속 바다 가운데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5절에는 물이 영혼까지 둘러쌌다고 했습니다. 6절에는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7절에는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라고 했습니다. 그런 곳에서 기도했습니다. 요나가 기도한 것이 왜 중요합니까? 기도하기 전에 그는 믿음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기도한 후 요나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사명을 감당합니다.
2절에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고난으로 말미암아 기도했고, 고난 때문에 기도했습니다. 고난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비로소 하나님께 항복하고 회개한 것입니다. 정말 죽을 지경이 되면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살만하니까 원망도 나오고 불평도 나옵니다. 이것저것 핑계 대는 것은 그래도 견딜 만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정말 죽게 된 상황에 빠지면 기도밖에는 할 것이 없습니다.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자리가 바닷속 같고, 스올의 뱃속과 같고, 인생의 밑바닥이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지금이 기도할 때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요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2절에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는 그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2.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봄
4절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요나는 자기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차마 감당할 수 없는 큰 슬픔입니다. 인생의 최고의 불행은 하나님에게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때 요나는 회개하였고, 회개는 그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요나는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다시’라는 말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입니다. 요나는 사명을 저버린 사람입니다. 요나는 그렇게 도망치다가 붙잡힌 사람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있습니다. 요나는 낮아지고 낮아져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한번 실패하고 잘못했다고 낙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제자 베드로도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는 죄를 지었으나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시 일어나 능력 있는 전도자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낙심이 되어 광야로 들어가서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천사를 보내 물을 먹이고 떡을 먹여주셨습니다. 엘리야는 다시 쓰러져 자는데 천사가 다시 와서 물을 먹이고 떡을 먹여주셨습니다. 엘리야는 힘을 내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달려가서 하나님이 맡긴 일들을 다 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항상 잘하지는 못합니다. 실패했을 때 낙심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믿음생활 하다가 넘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일 하다가 중단했습니까? 다시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잠언 24:16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여기서 의인은 성도를 가리킵니다. 성도는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붙들어주셔서 일어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뒤집어보면 넘어지지 않는 것이 의인이 아니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실패하지 않는 것이 의인이 아니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일어난다면 전날의 실패가 약이 될 것입니다. 실패가 자랑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아픈 것이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성공을 통해서 배우는 것보다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또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했습니다. 1장에서 요나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2장에서는 다시 여호와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주님 계신 성전을 바라보았습니다. 자기가 피하던 그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요나의 회개이며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순종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요나는 이전에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 할 때 그 성전의 소중함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는 성전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성전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아십니까? 중요한 것은 성전 자체가 아니라 그 성전에 임재하여 계시는 하나님, 그 성전에서 은혜주시는 하나님입니다.

3. 여호와를 생각함
7절에 보면 요나는 자신의 영혼이 피곤할 때에 여호와를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생각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며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요나는 고난 중에 하나님을 생각하였습니다. 삶이 피곤하고 힘들 때 하나님이 생각하였습니다. 8절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헛되고 거짓된 것을 숭상하면서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저버리고 살아갑니다. 물론 요나는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아니지만 요나가 자기의 고집과 뜻대로 하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내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선지자로 삼아주신 것이 은혜이고, 사명을 주신 것도 은혜이고, 말씀을 주신 것도 은혜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베푸신 큰 은혜를 버렸습니다. 그것이 은혜인 줄도 모르고 불순종하고 싫다고 도망쳤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회개하고 있습니다. 자기도 헛된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자들과 다를 바가 없음을 고백하는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요나는 자기가 당하는 이 고난도 은혜라고 깨달았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난은 불평꺼리일 뿐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이 주신 고난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빌립보서 1:29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은 고난도 은혜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4. 감사와 서원을 드림
9절에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여기에 두 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는 ‘감사’라는 단어이고, 또 하나는 ‘서원’이라는 단어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큰 환난, 그 큰 고통,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그는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요나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는 요나에게 전부가 고난이며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불순종하고 원망 불평하기 좋아하는 요나가 2장에서는 한 번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요나가 감사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가 요나는 서원을 갚겠다고 말합니다. 서원이란 하나님과 약속하는 특별기도입니다. 주로 큰 은혜를 받았을 때 서원하기도 하고, 큰 고난 중에 서원하기도 합니다. 요나가 무슨 서원을 했을까요? 아마도 ‘하나님께서 한번만 살려주시면 앞으로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그런 서원을 했을 것 같습니다. 성도가 서원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일평생 한 번도 서원을 해보지 않는다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지고 성령께서 감동을 주실 때 하나님께 헌신을 결심하고 서원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또 회개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여 3일 만에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만드셨습니다.
10절에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나오게 한 것은 물고기가 아나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도 하시고 그곳에서 나오게도 하십니다. 여러분 고통과 문제와 절망의 자리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나올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39-40에 보면 예수님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삼일 간 있다가 나온 것은 예수님이 무덤에 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는 3일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냥 살아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복음 전하는 자로, 예배자로, 충성하는 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여러분이 혹 고통의 자리에 있다면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합시다.

 

 

대전 탄방교회 박석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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