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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주차. <구원론강설> 양자 삼다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20. 9. 2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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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주차. <구원론강설> 양자 삼다 2020. 7. 5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너희는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8:15)

 

때가 차매 그 아들을 보내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유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4:4~7)

 

 

1. 구원의 서정에서의 양자의 위치와 의미

 

오늘부터 구원의 서정(Ordo Salutis) 양자를 논합니다. 알다시피 신학적으로 구원의 서정을 말할 때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세 부분으로 나누지만 각 구원의 과정들이 적용되는 점을 기준으로 보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 구원의 개인적 적용: 소명, 중생, 회심, 칭의, 양자

2) 객관적 적용: 칭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3) 구원의 진행: 성화, 견인(보존)

4) 구원의 완성: 영화

 

오늘은 구원의 개인적 적용 마지막 순서로 양자를 다룹니다.

 

양자’(adoption)의 헬라어 원어는 휘오데시아인데 이는 아들로 임명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원래 우리는 아들이 아니었는데 드디어 아들로 불려지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남의 자식이었는데 내 자식으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남의 자식을 내 자식으로 여기고 길렀다라는 뜻의 한자어인 養子의 의미가 일맥상통합니다. 동시에 지금까지는 예수 그리도 밖에서(어둠 가운데, 유기 가운데) 살았을 때는 얻지 못했던 모든 권리를 아들이 된 이후부터 다 누리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양자하면 아들로 삼는 것쯤으로 알고 있는데 원어적으로는 아들로 임명한다입니다. 여기엔 어떤 진지한 의도가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 ‘아들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위치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라는 기업을 상속받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경영하고 관리하는 책임자이자 직분자로서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라는 직분에 임명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데 이 입양이 단순히 호적만 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경영하는 공동책임자로서의 사명이 함께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양자가 된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나아가 천국에서 아들은 천사들보다 더 귀한 존재로서 천사들에겐 주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특권을 받아 누리는 신분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부리는 종이지만 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자 천국의 상속권을 가진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1:14)

 

2, 양자 제도

 

세상적으로 보면 양자 제도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양자는 재산 상속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들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상속이 되지만 아들이 없는 경우엔 친족 중에서 양자로 입양하여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자신의 가문을 계승하고 보존하도록 하였습니다.

 

성경에도 양자 제도가 자주 등장합니다.

1) 아브라함도 한때는 양자를 생각했습니다. 15:2에 보면 아브라함은 다메섹에서 함께 동행한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삼으려 했습니다.

2) 모세는 바로의 딸인 공주에게 입양되어 왕자의 신분을 가졌습니다(2:10).

3)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양녀였습니다(2:7, 15).

 

신약시대의 배경이 되는 로마제국에서도 양자 제도는 하나의 법률적 관습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 이 제도를 사용했습니다. 실제로 아들이 없는 황제들은 자신의 충신 중에서 아들로 입양하여 황제직을 물려주곤 했습니다. 로마제국을 건설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 독일 황제는 카이저’, 러시아황제는 짜르’)의 양자는 옥타비아누스였고, 옥타비아누스의 양자는 티베리우스였습니다. 3대 황제인 칼리쿨라는 티베리우스의 손자였는데 양자가 되어 황제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런 양자 제도의 의미를 사도 바울은 이 개념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내용을 은유로서 자신의 신학에 차용했습니다. , 사도는 신자들이 믿음에 의하여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그분의 가족의 일원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양자의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상실했던 자연적인 가족관계를 대신하는 영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새로운 아들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을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8:14)으로 설정하고 이 사람은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이며(8:15),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며(8:15), 이 사실을 성령이 친히 증언하시고(16), 하나님의 자녀는 곧 하나님의 상속자이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17)’라고 상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17절에서는 양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뿐 아니라 고난도 함께 상속받아야 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23절에서는 양자의 미래와 관련하여 양자가 된다는 것과 우리 몸의 구속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갈 4:5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그의 자녀들을 구속하여 하나님의 양자로 만드시어 그들을 하나님 가족의 일원으로 삼기 위해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5)

 

그 결과 어떤 일이 나타났습니까? 바울은 이어지는 7절에서 이렇게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3. 하나님의 가족

 

정리하면 하나님의 양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한 가족입니다. 오늘 이 사실을 사도 요한이 미리 선언하였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무엇보다 하나님의 양자가 된 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이미 창세 전에 아브라함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은 약속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함이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9:7~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라”(4:28, 31)

 

한편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구약시대 즉, 율법의 시대에서는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 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3:23~26)

 

이 말씀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율법 아래에선 매인 바 된 종의 신세였지만 복음이 온 이후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의 가장 핵심적인 요건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며 천국을 상속받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계속해서 양자됨을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연관시켜 이 믿음을 가진 자녀를 그의 가족으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양자됨은 중생과 회심과 신앙의 결과로서 채택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양자의 삶의 증거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1) 성령의 증언

~ 바울은 이 사실을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소개한 갈 4:4~7이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때가 차매 그 아들을 보내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유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4:4~7)

 

2) 하나님의 사랑

~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의 증언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3:1~2)

~ 특별히 요한은 종종 신자들을 매우 부모된 입장에서 매우 다정하게 자녀들혹은 어린 자녀들이라 부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이 충만한 눈빛은 무엇입니까?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의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길일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그런 심정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어린 신자들을 바라본 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이해하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103:13~14)

~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애정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납니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을 두고 형제’(2:12) 또는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맏아들로서 우리를 동생처럼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큰 형이 됩니다.

 

3) 특권들

~ 우리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시절엔 하나님 아버지와 원수된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6:9)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아들로서, 아버지의 상속권, 즉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엄청난 권리를 기반으로 당당하게 아버지께 간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필요한 것들을 달라고 요청하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청하며, 심지어 말도 안 되는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도 기도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아무런 반응이나 응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 아버지는 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 또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의 예배를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에 그의 예배를 하나님이 거절하신 것입니다. 예배함에 있어서 특이한 것은 하나님은 영과 진리 안에서(in spirit and truth) 드리는 예배를 원하시고 그런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으시는데(4;24), 이런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드릴 수 없는 예배입니다. 왜냐면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녀만 택하시고 그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 이 모든 특권 중에 가장 위력적인 특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심판의 때에 증명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심판의 때에 모든 사탄의 참소에 맞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악들을 변호하시고 우리를 보증하실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특권이 어디 있습니까? 이러한 특권을 지금 당신이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5. 결어

 

이제 오늘 말씀을 메조지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로 사탄에게 팔린 자가 되었던 지난 시절의 불행했던 과거를 모두 벗어던지고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고 완전한 자유함을 얻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표현합니다. 이 양자의 영이 임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첫째, 하나님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 이 사랑은 육신적인 사랑과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감정입니다. 이 사랑을 아가페라 말합니다. 아가페는 하나의 은사이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사랑의 선물을 받은 사람은 다른 차원의 사랑을 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불행히도 인간은 거듭나지 못하면 이 아가페적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늘 자기사랑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가페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이 사랑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습니다. 우리도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이런 사랑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더욱 사랑해야 할 곳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로 이런 사랑의 능력으로 믿음을 성장시켰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사랑함이 풍성함이니”(살후 1:2)

 

둘째,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이 생깁니다.

~ 사람은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가정을 선물로 받습니다. 육신의 부모 아래에서 지극한 돌봄과 사랑을 받으면서 자랍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소명) 거듭나는 은혜(중생)와 믿음의 선물을 통해 의롭다 함(칭의)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고(양자) 이후부터 교회라는 또 다른 공동체 안에 거하게 됩니다. 이 사람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공동체가 주어집니다. 하나는 가정이요, 다른 하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가정에서는 주로 사랑을 받기만 한 곳이라면 교회는 이제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것도 누가 시켜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스스로, 기쁨과 감격에 겨워서 교회를 위해 충성 봉사하는 것입니다.

 

셋째,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은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모든 혜택을 누리면서 무엇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은 성령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육신에 속하였던 한 사람의 전인격을 서서히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잘 변화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독특한 성격과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개 이런 류를 까탈형’(difficulty)이라 하는데 대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부류입니다. 더 독하게 말하자면 이런 부류는 사회의 폭탄입니다. 참을성이 없어 무엇이든지 쉽게 포기하고, 자주 짜증을 내고, 툭하면 분노를 폭발하고, 불만을 가진 타입입니다.

~ 그런데 양자의 영을 받기 전에 우리 모두가 실상은 이런 부류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이 중심으로 돌아가고, 인생은 를 위해 주어진 것이라 여기고 모든 인생의 목적을 추악한 탐욕의 충족에다 두고 삽니다. 그래서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돈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거듭나기 전에 였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이제 변화되고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무엇에든지 감사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침마다 깨어 숨을 쉬는 내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오늘도 건강한 모습으로 깨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부터 합니다. 무슨 일이든 감사하고,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람으로 알고 귀하게 대접하고 섬깁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고 자격을 얻었기에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새롭게 변화시킨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나아가 이제부터라도 아들답게살도록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출처] 27주차. <구원론강설> 양자 삼다 2020. 7. 5 (바로선개혁교회) | 작성자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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