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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삼손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이차식목사(김천)

by 김경호 진실 2020. 11. 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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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삼손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셨습니다(2020.4.26).

 

봉독: 사사기 15

본문: 사사기 1520

시편 18:1,10, 86:4, 18:11,12,15, 찬송 18:1,3 시편 98: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시는 여러분!

 

동물 학대는 오늘날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삼손이 삼백 마리의 여우를 잡습니다. 여우의 꼬리끼리 서로 묶습니다. 두 마리씩 하나로 묶습니다. 이제 삼백 마리 여우 꼬리에 횃불을 붙여서 블레셋의 곡식 단에 풀어놓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정말로 끔찍한 일들이 생깁니다. 꼬리끼리 묶여 있기에 여우들이 제멋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극심한 공포 속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세워 둔 곡식 단 속으로 달립니다. 이미 수확해 놓은 낟가리를 태웁니다. 들에 서 있는 곡식들을 태웁니다. 포도원도 불타고 올리브 나무도 다 타버립니다.

이 일의 발단이 어디서 생겼습니까?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 삼십 명과 삼손이 수수께끼를 하면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사기 15장에는 폭력이 난무합니다.

죽음과 파괴가 일어나고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이 계속됩니다.

 

이 사건을 접하는 오늘날 우리의 감성으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이런 일은 서로가 분노를 품고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인데 이 자체가 옳은 일은 아닙니다. 거기에다가 동물 학대도 옳지 않은 일입니다.

옳지 않은 일들이 사사기 15장 가운데 많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이같이 인간의 계속되는 파괴 속에서조차 우리 주님은 그곳에서(삭제)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13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마노아와 그 부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사사기 15장에서 주님이 성취하고 계십니다.

사사기 15장은 우리에게 뭔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우리에게 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계속되는 혼란과 파괴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들여다보고 하나님께서 어떤 전쟁을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를 보라는 말씀 같습니다.

 

삼손이 18절에서 블레셋 사람들을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삼손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삼손은 여기서 인종 차별 주의자가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이름을 더럽히고자 낮춰 부른 게 아닙니다.

 

당시 삼손의 복수에 대한 동기는 순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약함과 죄악 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과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 간에 전쟁을 선포하고 계셨습니다. 삼손과 블레셋과의 전쟁 이면에는 또 다른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 전쟁은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 사이의 전쟁이었습니다.

당신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사단의 백성과 함께하는 사단 사이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전쟁은 오늘 우리도 싸우고 있는 전쟁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는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나옵니다. 용과 그의 사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이 하늘에서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용 즉 사단이 자기 졸개들과 함께 내어 쫓김을 당합니다. 그들이 땅으로 쫓겨나서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전쟁을 벌입니다. (12:12)

땅과 바다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17절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우려고 갔더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전쟁 중에 있습니다. 그 전쟁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이에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것과 똑같은 전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과 다른 시대에 있습니다.

그래서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은 하지 않습니다. 어둠의 권세와의 싸움이기에 전쟁의 성격이 다릅니다.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찾듯이 사단이 여러분을 삼키려 미혹합니다. 그러나 이 전쟁의 결과는 삼손보다 더 크고 권세 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승리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사사기 15장에서 삼손은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이 동일하게 죄를 범했습니다.

저는 다음의 주제로 말씀을 요약하겠습니다.

 

여호와는 삼손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곤핍

하나님의 공급

 

이스라엘의 곤핍(필요)

 

모든 일은 수수께끼 때문에 시작된 것처럼 보입니다.

삼손은 칠 일간의 결혼잔치에 약간의 흥과 관심을 끌려고 그곳에 온 삼십 명에게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왔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 그게 무엇일까?”

이 질의가 사건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삼손과 함께 있던 삼십 명의 남자들이 그 답을 알 수 없어서 그 아내를 압박했습니다. 만약 답을 알려주지 않으면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집을 불로 태워버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삼손의 아내는 그들의 포악성을 알기에 삼손에게 울면서 답을 요구했습니다. 삼손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결혼잔치 내내 삼손이 항복할 때까지 절규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삼손이 답을 알려주고 맙니다.

삼손의 아내는 그 민족에게 답을 알려 줍니다. (14:17)

그들이 의기양양해서 삼손에게 그 답을 말합니다.

삼손이 사사기 1418절 하반부에서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 하였다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라고 합니다.

무슨 얘기냐면 그 남자들이 암송아지로 삼손의 아내를 압박했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불레셋인들이 수수깨끼를 알아 낸 것은 자신의 아내를 통해서 임을 직감했습니다.

삼손은 암송아지라는 은유법을 쓴 것 같습니다.

암송아지는 고대 근동 아시아의 문헌(주전 14-13세기에

이스라엘이 역사 무대에 등장하던 시기의 우가릿문헌)에서 성적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밭갈다'라는 동사는 성 행위로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딤나의 사람들이 삼손의 아내를 성적 대상으로 이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삼손은 단지 자기 아내와 딤나 사람들의 불공정과 배반을 비난하면서 성적 행위로 표현한 것입니다.

삼손의 아내는 여호와 앞에서 신앙이 있든 없든지 간에

하나님과 그 계획을 대적하는 사단의 도구로써 일을 한 셈이고

남편에게는 심리적으로 간음을 저지른 셈인데

결국에는 아내와 장인이 불로 태워 죽은 것은 아마도 여호와의 형벌이 아니 었겠는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삼손이 마음에 크게 의분을 느꼈습니다.

그때 19절에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크게 임합니다.

삼손이 이스글론으로 내려갑니다. 삼손이 그곳의 일반인 삼십 명을 순식간에 죽여 버립니다. 그들의 의복을 취해서 수수께끼를 푼 삼십 명에게 옷을 주고 그는 심히 분해서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가 버립니다.

 

반면에 삼손의 블레셋 장인은 삼손이 자기 딸을 버린 줄로 알고 결혼잔치에 온 가장 좋아 보이는 남자에게 딸을 줍니다.

 

삼손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후에 화가 진정됐을 때 다시 딤나로 갑니다.

자기 아내를 데려오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내가 더 이상 자기의 아내가 아닙니다. 장인은 삼손에게 더 어린 여동생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삼손이 거절하지요. 그래서 153절에 삼손이 뭐라 합니까?

이번은 내가 블레셋 사람을 해할지라도 그들에 대하여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라

그러고는 삼손이 삼백 마리의 여우를 잡아 옵니다.

여우꼬리에 꼬리를 꼬아서 돌리고 꼬리를 합친 사이에 불붙는 횃불을 달았습니다. 횃불을 견디지 못한 여우들이 곡식 단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곡물들을 태웁니다.

 

삼손은 그의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준 것 때문에 복수를 했지만, 장인과 그 가족에게 직접 복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이 잘못한 것은 생각지 않고 자기들의 곡물과 포도원 올리브가 다 탄 것 때문에 몹시 화가 났습니다.

앞으로 자기들이 먹을 양식 문제도 있지만,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네 블레셋 사람을 모욕한 것에 대해서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블레셋 사람들이 누가 이 짓을 했는가?”라고 물었을 때, 어떤 사람이 대답합니다.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취하여 그 동무에게 준 연고니라

그 말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 부인과 그녀의 아비를 불사르니라”(15:6)

 

삼손의 아내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집이 불에 태워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무서워서 남편에 대한 신뢰를 배반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불에 타 죽습니다.

그래서 삼손이 이 일로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습니다. 너무 화가 치밀어서 다시 한 번 보복을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의 곡물이 타버려서 한 일이지만 사람들을 불로 태워 죽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짓을 한 것입니다.

7, 8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에게 반드시 복수하고 그 후에 내가 그칠 것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을 크게 도륙하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틈에 거하니라

그래서 우리는 블레셋과 삼손이 전보다 더 티격태격하면서 둘 사이의 모든 관계가 훨씬 더 악화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사람들만의 통제할 수 없는 분노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삼손이 너무 화가 나서 고함을 치고 격노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삼손이 자기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준 것에 대해 인간적으로 화를 못 이긴 것이라면 삼손은 얼마든지 자기 힘을 사용해서 문을 부수고 자기 아내를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의 아내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장인 집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블레셋 사람의 곡물을 태웠습니다. 블레셋이라는 원수에게 최대한 큰 피해를 주려고 시간을 갖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만의 악으로 악을 갚는 문제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삼손의 개인적인 상황을 사용해서 이스라엘 사람과 블레셋 사람의 사이를 분리하셨던 것입니다.

 

삼손의 동기와 행실은 부도덕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144절의 말씀처럼 여호와는 블레셋 사람을 대적하여 움직일 기회를 찾고 계셨습니다. 그 기회를 여기서 찾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당연히 일어나야 했던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백성과 블레셋 사람 사이의 적대감을 유발해야 했습니다.

왜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 사이에 적대감이 필요했습니까?

 

당시에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은 점령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 속에 파묻혀서 조금도 하나님 백성의 냄새를 풍기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무기력한 이스라엘은 너무 까라진 상태여서 상황이 나아질 기미조차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압제 아래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구원자를 소망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때가 언제 인고 하니 사무엘상 4장에서 아벡 전투가 일어나고 삼손이 사사로서 등장하기 몇 년 전이었습니다.

아벡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인 사천 명이 블레셋에 의해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빼앗겼습니다.

그날은 이스라엘에게 암흑의 날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어떤 결론을 내립니까?

이제는 새 주인을 받아들이자. 블레셋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결론짓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을 주인으로 받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어떻게 됩니까?

애굽에서 여호와의 편 팔로 구속을 받은 사람들이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들의 지배를 받고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의해 삼켜질 위험에 놓였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잃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신분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때 삼손이 행한 일이 사사기 159~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삼손이 행한 일에 대해서 유다 백성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이 한 일에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유다에 블레셋 군대가 진을 치고 레히라는 곳에 블레셋 사람이 잔뜩 몰려왔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합니다. 더 이상 싸울 베짱이 없었습니다.

사사기 1510절에서 유다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당신들이 어째서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치려고 하십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우리가 삼손을 잡아서 결박하여 삼손이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복수하러 올라왔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11절에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어떻게 했습니까?

에담 바위틈에 있는 삼손에게 가서 어떻게 했습니까?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멍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에 대해 말했습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전사 삼손이 일어난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까?

삼손이 여우의 사건을 일으켜서 블레셋의 곡물과 올리브 단을 태웠고 많은 블레셋 사람을 쳐죽인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흥분하며 기뻐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뭐라 합니까?

삼손!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고 지배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했느냐?”라고 했습니다.(15:11)

오히려 유다 사람들은 삼손이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에 대해서 몹시 화가 났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삼손이 그렇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유다 사람은 구원자를 원치 않았습니다. 유다 사람은 사사를 원치 않았습니다. 유다 사람은 블레셋 사람에게서 해방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여호와께 더 이상 어떤 도움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삼손을 자기들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삼손을 자기들의 적으로 간주합니다. 삼손을 자기들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인물로 간주합니다.

여러분! 이런 삶을 원하십니까?

여러분 자녀들이 이런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유다 사람들이 항상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사사기 12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가나안 땅에 가장 먼저 올라가서 선봉에서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 유다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사기 118절에 유다가 가사와 그 경내와 이스글론과 그 경내와 에그론과 그 경내를 취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지난 과거에 유다는 여호와만을 신뢰했습니다.

여호와만을 주목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도 유다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나 삼손 시대 유다의 그 도시들은 블레셋의 요새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적당히 그들을 받아들이더니 이제는 통째로 그들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삼손을 일으키시고 하나님의 신이 삼손에게 큰 권능으로 임했습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이 삼손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 땡큐! 삼손! 우린 너의 행위 그것 원치 않아. 우리는 블레셋과 평화를 원해. 그들의 문화, 그들의 종교! 우린 이상 없어. 평화가 중요해. 그러나 너는 평화를 반대하고 있잖아!

너는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 몰랐어? 네가 우리에게 이렇게 한 이유가 뭐야?”

그러고는 유다 사람들이 삼손을 데리고 가서 새 밧줄로 꽁꽁 묶습니다. 삼손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줍니다. 삼손을 죽이라고 넘겨줍니다.

이와 같이 유다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의 속박 아래 편히 살기를 바랐습니다.

 

여러분! 이런 일이 혹 우리에게 앞으로 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저는 심히 우려됩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너무 끔찍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끔찍한 배도입니다. 현실이 중요하고 하나님을 소중히 생각지 않는 것은 우상 숭배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삼손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삼손을 묶어서 블레셋에게 넘겼습니다. 우리 이스라엘은 블레셋 외에 사사가 필요 없다고 소리쳤습니다. 놀라운 현상입니다.

 

삼손이 밧줄에 묶여서 적에게 넘겨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예표입니다.

자기 백성에게 거부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요한복음 111절은 그가 자기 백성에게 오매 그의 백성이 그를 영접지 아니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72절에 그들이 그분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주고예수가 왕이라고 했기에 이스라엘에 위협이 된다고 고발했습니다.

요한복음 1915절에 저희가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고 십자가 아래서 그들이 다시 한 번 하나님이 보내신 그분을 거절합니다.

 

무슨 얘기냐면 예수를 왕으로 모시면 로마 군대가 우릴 죽일 겁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참 자유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현실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현재 이 모습으로 살 겁니다.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말입니다.

 

삼손을 거절한 것은 유다 사람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도 거절했습니다. 예수님도 모든 사람에게 거절당하셨습니다.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지, 힘들고 어려울 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고 기도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도 영적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 삶 사이에 전쟁이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가 세상의 노예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단은 우리가 계속 죄 가운데 살기를 원합니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은 바라보고 계십니까?

사단과 죄의 속박에서 구원받기를 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해야 죄의 용서가 주어지고 사단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을 정말로 아십니까?

삼손 시대에 이스라엘이 가장 필요했던 것은 그들의 영적 눈이 뜨이는 일이었습니다. 자신들을 블레셋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할 사사를 갈망했어야 합니다. 그들은 사사를 원치 않았습니다. 삼손이 죽도록 넘겨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고 사사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사사를 원치 않았지만, 하나님은 구원자를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공급

 

여호와께서는 아직 삼손과 끝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사용하셔서 그분의 언약 백성과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을 분리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을 소유하길 바라셨지만 삼손은 하나님 앞에 옳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15장에는 엄청난 개인적인 복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삼손에게 힘을 주신 이가 여호와의 성령이라고 명백히 말하지만, 삼손은 그 사실을 늘 깨닫지 못했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새 밧줄로 삼손을 꽁꽁 묶어서 블레셋 사람에게 넘겨줄 때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게 달려들면서 마침내 이 골칫덩이를 잡았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성령이 삼손에게 강권적으로 임해서 삼손이 묶여 있는 밧줄이 아주 쉽게 풀어졌습니다.

그것을 본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삼손이 단단하고 생생한 당나귀 턱뼈를 발견하고 그것을 가지고 이곳저곳 날뛰면서 블레셋 남자 천 명을 죽입니다.(15:15)

16절에서 삼손이 말합니다.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

 

여기서 삼손이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일천 명의 남자를 죽였노라, 내가 그들을 대량으로 쌓아 두었노라, 내가 그 일을 했다.”는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 던집니다. 그곳을 턱뼈 언덕이라 했습니다.

삼손이 내가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삼손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힘을 주신 분은 여호와의 신이었습니다.

삼손은 천 명이나 죽인 후에 너무 기진맥진해졌습니다.

18절에서 삼손은 자신이 너무 목말라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개가를 부를까 두려웠습니다. 삼손이 이 사실을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당신의 손가락을 우묵한 곳에 터치하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납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삼손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18절에서 삼손이 뭐라 합니까?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서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이 고백에서는 두 가지를 말합니다.

삼손이 그동안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 큰 힘은 삼손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기적도 삼손이 행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일은 여호와, 언약의 하나님이 행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셨습니다. 물이 솟게 하셔서 삼손이 그 물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고 육체도 소생했습니다. (19)

그곳 이름을 라맛 레히”, 곧 당나귀 언덕이라 했습니다.

또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서 샘이 터져 나왔기에 엔학고레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준비가 된 것은 이 일을 겪은 후였습니다.

20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20년을 지내었더라.”

여호와께서 삼손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그 전에 이스라엘은 삼손이 사사로 다스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블레셋 사람에게 죽도록 삼손을 넘겨줬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제는 삼손을 사사로 받아들여서 그가 2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게 됩니다.

 

물론 여전히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한 번 더 블레셋의 멍에를 쳐부수고 그들을 또 다시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삼손이 사사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를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신 분은 여호와입니다.

삼손이 공개적으로 죄를 범했지만, 히브리서 1132절에서 성경은 그를 사사로 증언합니다.

삼손은 약했습니다. 죄인이었습니다. 사사로서 자질 면에서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원수 천 명을 낙타 턱뼈로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바위에서 생수가 터져 그 물을 마셨습니다.

대단한 권세가 삼손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삼손과 비교할 수 없는 참된 사사요, 자기 백성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짐을 짊어지신 진정한 구원자이시지요. 우리를 대신해서 주님이 하나님의 진노의 짐을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이 목마르다고 외칠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바위를 터뜨려서 생수를 마시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비를 하늘에서 내리셨습니까?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은 아무것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그 아들에게서 등을 돌리셨습니다. 주님이 숨이 넘어가기까지 성부 하나님은 그 아들을 외면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죽으셨고, 죽을 때 자기 영혼을 성부께 맡기시고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궁극적인 참된 사사, 마지막 구원자는 우리가 더 이상 목마르지 않고 그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신뢰를 예수 그리스도께 두어야 합니다.

 

 

 

이차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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