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21~48절은 율법의 가르침, 즉 사람들이 믿는 것(what men believe)에 초점을 맞추고, 6장 1~18절은 율법의 실행, 즉 사람들이 행하는 것(what men do)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종교 활동에 대한 세 가지 외적인 의로움을 강조한다.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이다. 구제는 다른 사람을 향해 행하는 활동이고,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 행하는 활동이다. 그리고 금식은 우리 자신과 관련하여 행하는 신앙 활동이다. 이 중에서 본 논단에서는 구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구제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 6:1~4) 그러나 문제는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른 크리스천들이 있다. 이런 것을 예수님은 위선(hypocrite)이라고 표현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위선의 달인이다. 그들의 종교는 대부분 행위였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하신 참된 가르침을 조롱했기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결코 친절한 척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들은 최초의 위선자도 마지막 위선자도 아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 위선자들이 있었다. 가인은 최초의 위선자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가장 위선적인 행동을 한 사람은 가룟 유다일 것이다. 아직도 교회 안에 위선자들이 많이 있다.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허세를 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허세가 우리를 분노케 한다. 베풀면서 돈 액수가 크게 적힌 팻말을 들고 총회 지도자부터 나팔을 불지 않는다면 허세는 교회에서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교회가 세상보다 허세가 많아 보일 때가 가끔 있다. 양자전기역학에 관한 탁월한 업적으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이미 상을 받았어요. 발견했으니까요. 그리고 사람들이 내 발견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 기쁘죠. 이것이 진짜이지 노벨상의 영예는 그저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위선은 결코 가볍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1~24)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종교적 행위는 하나님에 의해 규정되었지만, 그것들을 성실하게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사, 제물, 그리고 찬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려지지 않고 자신의 영광과 자기만족을 위해 드려졌다.
우상 숭배를 제외하면 유다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죄는 위선적인 종교 허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예배를 거짓 조롱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 진리와 관련하여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1~12)라고 외쳤다. 하나님은 무가치한 제물에 대해 자신의 불쾌함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의식이 아니라 순수함과 의로움을 원하신다.
존 칼빈은 “모든 미덕에 위선이 들어오는 것을 피해야 한다.”라고 했고, 어거스틴은 “명예에 대한 사랑은 참된 경건함의 치명적인 재앙이다”라고 했다. A. B. 브루스는 “숨기고 싶은 유혹을 받으면 드러내고, 보여주고 싶은 유혹을 받으면 숨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솝 우화에 양 한 마리를 저녁으로 먹고 싶어서 양으로 변장하고 양 떼를 따라 우리로 들어간 늑대 이야기가 나온다. 늑대가 양이 잠들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양치기는 양고기를 저녁 식사거리로 결정했다. 어둠 속에서 그는 가장 크고 살찐 양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골랐지만, 그 동물을 죽인 후에 그것이 늑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치기가 양의 옷을 입은 늑대를 양으로 알고 실수로 잡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위선을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이번 제109회 총회장은 돈으로 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기대가 된다.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 그리고 거짓이 없는 믿음(딤전 1:5)으로 총회를 바르게 세워주길 소망한다.
김호겸 목사(우리들교회)
출처 : 주간기독신문(https://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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