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바다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긋지긋한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이 약속한 새로운 세계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종살이에서 해방된 기쁨과 가나안 땅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열심히 가다 보니 앞에 홍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대로 길을 갔는데 어려운 문제를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들을 구원하셨습니까?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하셨습니다. “돌이켜”라는 말은 곧바로 가지 말고 방향을 틀어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3절에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진 친 곳은 홍해 바다 바로 앞에 있는 ‘믹돌’이라는 곳입니다. 두 지점 사이에 쑥 들어간 곳에 이스라엘이 갇힌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갇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이같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성경 말씀대로 순종했는데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합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가?’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사건에 계획을 갖고 계시고 목적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만날 때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을 돌려서 인도하셨을까요?
1. 하나님의 계획
4절에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첫째.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다시 추격하게 하시겠는 것입니다. 바로는 지금 추격하면 따라잡을 수 있고, 다시 종으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바로 왕을 유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곤경에 빠지게 하신 것은 실수가 아니고 괴롭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곳으로 인도하셔서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숨겨진 계획과 섭리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셉이 어느 날 갑자기 종으로 팔려 가서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하고, 또 갑자기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일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요셉을 총리로 삼아서 흉년이 올 때 이스라엘을 구하려는 계획이 이었습니다. 욥에게 어느 날 갑자기 고난이 닥쳐서 모든 재산을 잃고 자식이 죽고 몸에 병이 난 것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왕궁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야 하는 일이 생긴 것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모세를 연단시키고 훈련시켜서 지도자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을 연단시키며 큰 은혜를 경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겨우 애굽에서 구원받아 나왔습니다. 믿음이 약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잘 모르고, 하나님의 역사도 잘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잘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연단시켜서 큰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시고, 능력이 많으시고, 대적들을 심판하시고,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고두고 감사하며 찬송한 것이 무엇입니까?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바로와 그 군대를 멸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5-6절에 보면 하나님의 계획대로 모든 일이 진행됩니다. 어떤 사람이 바로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하여 바닷가에 장막을 쳤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런 정보를 접한 바로 왕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다시 강퍅해졌습니다.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보냈는가” 하면서 다시 추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떠났다고 생각이 되었으면 포기하고 잊어버릴 텐데, 아직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쫓아가고 싶었고, 다시 잡아다가 종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7-9절에 보면 바로는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지휘관들을 거느리고 추격했습니다. 그러자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과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서 쫓아갔습니다. 애굽의 국력을 다 기울인 것입니다. 이같이 마귀는 권세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동원시키고 많은 무기를 사용하여 성도들의 가는 길을 막고 붙잡아 종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대적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끝까지 괴롭히는 강퍅한 바로와 그 군대를 완전히 심판하려고 홍해 바다 앞에 총집합시켜 놓은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반응
10절에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첫째.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뒤쫓아 오는 애굽의 군대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두려워한 이유는 “눈을 들어 본즉” 애굽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애굽 군대만 보았지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하시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하나님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바로의 군대를 멸하시고 영광 받을 계획을 세우셨는데 이스라엘은 걱정만 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하나님의 계획도 모르고,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적과 문제만을 보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둘째.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었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위기가 닥치니까 부르짖습니다. 어려움이 생기니까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시편 50:15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편 46:1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우리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기도해야 합니다. 답답한 일을 만나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고 은혜의 기회입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은 것은 잘한 것이나 기도한 후에 원망한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기도하면서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셋째. 원망했습니다. 무엇이라고 원망했습니까? 11-12절에 1)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2)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3) “우리를 내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4)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들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행하신 10가지 재앙들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문제는 애굽 군대가 아니라 불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살리려고 애굽에서 이끌어냈는데 죽이려고 인도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배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는 담대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걸어갈 때 어려움이 있고, 원수들이 추격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담대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4:8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갈 때 처음에는 담대히 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추격하는 대적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을 때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어려움에 처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3. 하나님의 구원
막다른 곳에 갇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보겠습니다(13-14절)
첫째, 두려워 말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귀는 우리를 두렵게 하려고 합니다. 그럴 때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1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디모데후서 1:7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다 세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두려움을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주십니다.
둘째, 가만히 있으라. 두려워하지 말고 당황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도망칠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수단 방법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우왕좌왕하지 말고 침착하게 있으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너무 설치다가 자기 스스로 일을 만들고 사고 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바다를 가를 수 있습니까? 애굽의 군대를 멸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시편 46:10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셋째, 하나님의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3-14절).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바라봅시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어떻게 물리치는지, 하나님께서 애굽의 군사와 어떻게 싸우시는지, 하나님께서 바로의 세력을 어떻게 꺾으시는지 바라봅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바라봅시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온 우주를 다스립니다. 이런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넷째, 앞으로 나가게 하라(15절). 홍해 바다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앞으로 나가게 하라고 하십니다. 홍해 바다를 향해서 나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앞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16절에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서 나가면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전진만 있습니다. 사방으로 막혀서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일으키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 있던 홍해 바다, 이스라엘을 광야에 가두고 낙심과 좌절에 빠지게 했던 홍해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그리고 추격해 오는 바로의 군대는 홍해 바다에 빠져 죽임을 당했습니다. 홍해는 기적의 현장이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에 고난과 시험이 많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기를 소원합니다.
대전 복용교회 박석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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