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탄생 기사입니다. 예수님 탄생은 우연한 일이 아니며 갑자기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입니다. 최초의 예언은 아담 하와가 타락한 이후, 예수님께서 태어나기 약 4000년 전에 예고했습니다. 창세기 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모든 사람은 남자의 후손이고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2000년 전에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네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의 자손이 번성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또 주님 나시기 1000년 전에는 다윗에게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서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이것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주님 나시기 약 700년 전에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습니다. 이사야 7:14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님 탄생 열 달 전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고했습니다. 누가복음 1:31에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바빙크 박사에 의하면 구약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 456번이나 나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 이 모든 예언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성탄절을 맞으면서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고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이제 거의 다 이루어졌고 마지막 남은 것이 예수님 재림입니다. 주님 재림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이 오셨을 때 주님을 맞이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신앙이 잠들고 믿음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정말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성탄절에 예언대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 좋겠습니다.
1. 베들레헴에서 나심
이사야 11:1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새의 줄기는 다윗의 후손을 가리키고, 한 싹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4절에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11절에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예수님이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미가 5:2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1-2절에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가이사 아구스도가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 내용은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것입니다. 이 호적 명령은 세금을 정확하게 거두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명령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고향으로 가서 호적을 하게 되었고, 요셉도 약혼녀인 마리아를 데리고 자기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가서 해산하므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만일 이 호적하라는 명령이 없었더라면 예수님은 베들레헴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태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만삭이 된 아내를 데리고 굳이 베들레헴까지 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황제의 명령이므로 요셉은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갔고 그렇게 베들레헴에서 아이를 낳게 된 것입니다. 나사렛에서부터 베들레헴까지는 약 145km 떨어진 먼 곳입니다. 그 멀리까지 이동하게 된 것은 바로 이 호적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 역사를 움직이고 섭리하셨습니다. 로마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라를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역사를 움직이고 세상만사를 주장하십니다.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지도록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섭리하십니다.
2. 처녀 마리아를 통해 나심
5절에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당시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었고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습니다. 약혼만 하고 동침하지 않은 상태로 처녀였습니다. 마 1:18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 1:20에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 1:23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눅 1:35에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천사가 마리아에게 찾아와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마리아에게 성령이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어 예수님을 잉태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성육신은 참으로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며, 기적 중의 기적이고,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변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과 영혼을 취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를 취하셨지만 하나님 그대로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사람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죄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되셔서 죄인을 구원하십니다. 이 성육신 사건은 창조주께서 피조물이 되신 일이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신 분께서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오신 일이고, 영광이 충만한 분께서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입으신 사건입니다. 가장 높은 하늘 보좌에 앉아계시던 주님께서 가장 낮은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종이 되어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하셨습니다.
7절에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태어난 예수님은 구유에 뉘어졌습니다. 12절에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당시 호적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방을 구할 수 없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비천한 여인에게서 태어날 뿐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은 몹시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구유에 뉘셨습니다. 화려한 왕궁도 아니고 따뜻한 여관방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누울 곳조차 없어서 낮고 천한 구유에 뉘었습니다.
주님은 태어날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생을 그렇게 낮은 곳에서 사셨습니다. 가난하게 사셨고 평생 낮아지셔서 종의 모습으로 섬기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낮은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주님을 모시려면 우리 마음도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높고 부유해지면 주님을 모실 수가 없습니다. 교만해지면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서 보여준 모습, 그리고 살아가면서 보여준 모습을 통해서 낮아짐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 따라가야 합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아야 합니다. 내가 낮아지고 희생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삶입니다. 성탄절에는 이웃을 생각하고 낮고 천한 이들을 돌아봅시다. 가난하고 굶주린 영혼들을 살핍시다. 구약에 예언한 말씀들을 볼 때 불가능한 것 같았지만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성경은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우리의 삶에도 그 말씀이 이루어져서 은혜가 되고 복이 될 것입니다.
3. 구원자로 오심
천사들은 들에서 양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합니다. 그 천사들이 전한 메시지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10-11절에 보면 천사들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하고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탄생이 온 백성에게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백성,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기쁘고 좋은 소식임을 밝힙니다. 우리에게도 최고의 기쁜 소식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탄생이 왜 기쁜 소식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정죄 받고, 심판받고, 멸망 받을 자들을 구원할 분이 예수님입니다. 죄인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람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 예수님을 만나면 행복해집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과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11절에 “너희를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즉 ‘나를 위하여,’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나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나를 구원하고, 나를 살리러 오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내가 믿고 내가 섬겨야 할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너희를 위하여”는 이 세상의 죄인들을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주님을 전해서 믿게 해야 합니다. 주님은 택한 백성 모두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기쁨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낮아져서 섬겨야 합니다. 내가 희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희생하는 사람은 영적 수준이 높아서 희생하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럴 때 이 세상에 진정한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으로 구약의 예언들이 성취되었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로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구속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고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대전 복용교회 박석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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