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눅 3:2-9 /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박석중목사(대전)

by 김경호 진실 2025. 1. 20. 09:24

본문

세례 요한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가리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4절). 소리가 무엇입니까? 실체는 없고 전하는 메시지만 있는 것이 소리입니다. 뭐라고 외쳤습니까? 4절에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마태복음 3:2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쳤습니다. 그의 소리가 온 유대 땅을 흔들고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 주님의 사역을 준비하고 예수님 증거하는 일을 했습니다. 

 

1. 빈들에 임한 말씀

2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우선 살필 것은 “빈 들에서”라는 말씀입니다. 빈들은 거친 들판입니다. 사람이 살기 불편한 광야입니다.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제사장의 아들로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빈들로 가서 고생하며 자랐습니다. 그의 생활은 궁핍했습니다. 옷은 약대 털옷을 입고, 먹는 것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나 잘 사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만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신령한 것을 추구했습니다. 깨끗하고 의롭게 살려고 애썼습니다. 

누가복음 1:80에는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요한이 점점 자라났습니다. 무엇보다 심령이 강해졌습니다. 신앙이 자라고 영혼이 건강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도 강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강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힘이 내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빈들에 있는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빈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말씀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심령에 심어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요한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사람이 됩니다.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말씀으로 사명을 깨닫고,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었습니다. 환경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광야에 살아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니 능력의 사람이 되고 큰일이 가능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 곳도 바로 빈들입니다. 우리에게도 때로는 이 광야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온갖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곳을 피하여 조용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복잡하고 소란한 곳을 피하여 조용한 곳에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조용한 곳에서 주님을 만나고 말씀을 들읍시다. 1-2절에 보면 황제가 나오고 총독도 나오고 왕들의 이름도 나오고 대제사장들의 이름도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기도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적 귀가 열려야 합니다. 예배드리면서도 말씀을 받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2. 말씀을 받은 후의 사역

3절에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후 요한은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요한은 말씀이 임할 때까지는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니 순종했습니다. 요한은 요단강 부근 각처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렇게 외치면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죄인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한 회개의 세례입니다. 죄를 깨닫는 자라야 예수님께 올 수 있고, 회개하는 자라야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회개가 이루어지는 삶이 복입니다. 사람이 변해야 세상이 변합니다. 요한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다음 나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결국 말씀으로 세상을 바꿉니다. 말씀이 나를 바꾸고 그 말씀이 세상을 바꿉니다. 

4절에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세례 요한을 가리킵니다. 소리 역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소리는 보이지 않고 들리기만 합니다. 요한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주님을 전파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 자신은 소리와 같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30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은 예수님만 증거하고, 예수님만 높이고, 예수님이 잘되기만 바라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만들고, 자신은 쇠하는 길로 가기를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소리입니다. 내가 쇠하고 낮아져야 주님이 흥하고 높아집니다. 내가 높아지려 하고, 내가 잘되려고 하면 예수님이 높아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드러내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5절에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이 말씀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방법입니다. 골짜기와 같이 깊은 욕심과 음모와 술수가 없어져야 됩니다. 모든 산과 작은 산과 같은 교만, 자존심, 자기 자랑을 버리고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굽은 것”은 굽은 마음, 양심을 쓰지 않고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불의한 마음과 외식하는 것을 회개하고 곧아져야 합니다. 험한 길이 평탄하여져야 합니다. 험한 길은 올무와 술수와 음모와 악한 죄와 범죄의 길을 가리킵니다. 이런 것을 다 회개하고, 평탄한 길, 즉 정직과 정도와 선하고 의로운 마음,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길을 평탄케 하는 것이다.

6절에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모든 육체는 모든 인류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유대인과 이방인 구별 없이 모든 인류 가운데서 택한 백성을 구원해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7-8절). “독사의 자식들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독사는 독을 가지고 사람을 해치는 뱀입니다. 사탄을 상징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독사의 독과 같은 죄가 있습니다(로마서 3:13-14). 그런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새사람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반성하고 뉘우치고 정도가 아니라 삶에서 변화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열매 없는 회개는 진정한 회개일 수 없습니다. 말로 몇 마디하고 회개했다고 말하고 돌아가서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3.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세례 요한의 책망을 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10, 12, 14절).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여기서 무리란 일반 대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세리가 나옵니다. 세리는 세금 징수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금을 많이 거두어 일정한 금액을 로마 정부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들이 착복했습니다. 따라서 평판은 좋지 않았고 동족들로부터 반역자로 취급당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거칠고 폭력적이어서 불평의 대상이었고 봉급 외에 부정직한 방법을 동원하여 돈을 모았습니다. 무리도 세리도 군인들도 말씀을 듣고 찔림을 받았습니다. 뭔가 회개를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를 몰라서 물은 것입니다. 이것이 복 받을 자세입니다.

이 세 사람만 물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곳에 온 많은 사람이 물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이 세 사람을 기록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 ‘좋은 말씀이다. 은혜받았다’로 끝나면 안 됩니다. 말씀을 들은 후 구체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다면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심령 골수를 찌르고 쪼개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마음에 찔림을 받으면서도 회피하는 것입니다. 찔리면 피하고 도망칩니다. 못 들은 척하기도 합니다. 또한 찔림을 받으면 말씀은 전한 사람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한도 미움을 받았고 예수님도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한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린 헤롯왕은 결국 요한을 죽이고 맙니다.

1) 무리에게 답을 합니다. 11절에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매우 단순하고 구체적입니다. 또 실천 가능한 것입니다. 대단한 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힘이 많이 들고 돈이 많이 드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두 벌의 옷이 있다면 한 벌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있다면 옆에 있는 가난한 사람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이웃을 돕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굉장한 일이 아니더라고 옷 입히고 밥 먹이는 것이 구체적인 회개의 열매입니다. 

2) 세리에게 답을 합니다. 13절에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세리들에게 주신 말씀을 보십시오. 매우 당연한 말씀을 주십니다. 정해진 액수만큼만 세금을 거두라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자기 배를 채우려고 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시대 세금 거두는 사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3) 군인들에게도 답을 줍니다. 14절에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힘을 이용해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지 말고, 폭력을 사용하지 말고, 받는 월급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조금 여유 있으면 나누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란 지극히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직업을 바꾸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바꾸거나 남을 바꾸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삶을 바꾸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법이나 제도가 아닌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꿔도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직업을 바꾸고 신분을 바꾸는 것이 변화가 아닙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변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물읍시다. 그리고 행동합시다. 그러면 세상이 달라지고 나는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게 되고 이 세상에 희망이 생길 것입니다.

 

 

대전 복용교회 박석중 목사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