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당시에 죄인을 처벌하는 형틀이었습니다. 흉악한 강도들과 살인범들과 로마에 반역한 자들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가장 고통스럽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처형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며 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 위대한 사도 바울이, 가장 자랑하며 가장 전파하려고 힘썼던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바울이 예수님 만나기 전, 복음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세상 것들을 크게 생각하였고 세상 것을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2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빌립보서 3:7-9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왜 이렇게 십자가를 자랑하며, 십자가에 대하여 설교하며, 십자가를 증거하려고 애를 썼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부끄러운 십자가를 가장 영광스러운 십자가로 바꿔놓았습니다. 십자가는 인류의 최고 영광의 상징이 되었으며 기독교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은 무의미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죄 사함이 없고, 구원도 없고, 천국도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따라서 단순하게 십자가에 대해서 아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십자가를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참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주님께 바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빼앗기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고, 주를 위해 일하다가 욕을 먹고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며 오직 천국을 소망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 십자가는 나의 죄를 보여줌
사람들은 누구나 죄를 조금은 안다고 착각합니다. 신문에서 읽고 뉴스를 통해서 들으면서 사람들이 죄를 많이 짓는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서 죄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를 깨닫기 전에는 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원래 흉악한 죄인들을 처벌하는 형틀이었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형틀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형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를 매다는 곳입니다. 신명기 21:23에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야 했습니까?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았기 때문입니까? 빌라도가 재판을 잘못했기 때문입니까?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시기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습니까? 유대인들이 무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까? 이것은 다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진짜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세상에 오셨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가 당할 고난과, 우리가 받을 멸시와 천대, 그리고 우리가 받을 심판과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사야 53:4-5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여기에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고를 대신 지시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대신 징계를 받았습니다. 주님은 우리 대신 채찍에 맞아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이사야 53:6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나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것은 나의 죄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직도 자기가 죄인인 것을 모르겠다는 분이 계십니까?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함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독생자를 죽이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주신 희생적인 사랑이 십자가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를 세속적인 축복이나 세상의 기적적인 사건에서 찾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찾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습니다. 로마서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이 적나라하게 표현된 곳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다면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확실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진 예수님을 처형한 심판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죄인을 위해 외아들을 대신 죽게 한 사랑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삼아서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합니다.
3. 십자가는 유일한 구원의 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속을 완성했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과 예언을 십자가로 완성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로 마귀를 멸하고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고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미완성이 아니고 완성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다른 어떤 것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다 이루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십자가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을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 십자가의 공로를 무효화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만드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기독교가 독선적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옳지 못한 주장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은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었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희생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 길밖에는 구원의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독선이 아니고 은혜입니다. 불평할 일이 아니고 감사할 일입니다.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십자가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십자가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요, 중심 주제이며, 구원의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십자가만 자랑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시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파해야 할 복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사도 바울이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의 의미를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의 의미를 아십니까?
4. 십자가로 세상과의 관계가 끊어짐
14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로 말미암아 바울과 세상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바울과 세상은 타협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볼 때 세상은 배설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이 볼 때 바울은 전혀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세상도 붙잡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신자의 모든 것을 변하게 합니다. 십자가는 나 자신을 죽게 만들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게 합니다. 나의 가치관 세계관이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세상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이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이고 세상도 자신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이 나를 못 쓰겠다고 내어버리는 것입니다. 또 성도는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 달린 주님만 사랑하고 십자가의 도만 생명으로 삼고 십자가의 진리대로만 걸어가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4에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붙들고 사랑하고 따라가야 할 것은 오직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오직 십자가입니다.
대전 복용교회 박석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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