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시골 어느 수양관에서 사역자들과 함께 말씀 훈련을 하는 기회가 있었다. 이른 아침 산책을 하면서 오랜만에 큰 거미들을 보게 됐다. 그때 꿀벌 한 마리가 거미줄 사이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거미줄은 곤충들에게 죽음과도 같다. 거미줄은 벗어나려고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고 힘만 빠진다. 다른 발로 떼려 하다가는 그마저 붙어 버리고, 날개가 거미줄에 붙으면 정말 꼼짝 못하게 된다. 그 꿀벌은 그렇게 죽을 운명으로 몸부림 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후배 사역자가 작은 나뭇가지를 들어 거미줄에 걸린 꿀벌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벌에게 거미줄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불가항력과 같은 것이지만, 사람이 손으로 움직이는 나뭇가지를 견뎌낼 도리는 없었다. 그 끔찍한 거미줄이 찢어지고, 자유롭게 된 꿀벌이 날개를 탁탁 털더니만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 꿀벌에게 구원이 임한 것이다.
목회는 거미줄에 걸린 꿀벌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죽기 일보직전이었던 인생을 구원하는 존귀한 사역이다. 인생을 죽음으로 옭아매는 죄와 사망의 짐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털어버리고 인생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날아오르도록 돕는 사역이다. 은혜로 구원 받은 백성들을 양육하고 훈련해 성령을 따라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세움으로써, 세상을 이기고 이제 다시는 죄의 거미줄이 아니라 죄를 다스리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돕는 거룩한 사역이 바로 목회이다.
물론, 목회는 꿀벌을 도와주려다 날개가 거미줄에 달라붙어 버리는 애매한 순간도 발생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목회는 죽어가는 몸부림이 아니라 살아나는 몸부림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 죄와 사망으로 죽어가던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면, 그리고 일단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시고 영혼들에게 손을 대기 시작하셨다면, 우리의 몸부림은 영혼들을 죽이는 몸부림이 아니라 살려내는 생명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혼을 사랑하기에 경험하게 되는 모든 고통은 영혼이 날아오르도록 돕는 준비운동이다. 목회는 하나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사용해 영혼들을 구원해 내시고 세워 가시는 생명의 행진곡이다. 한 영혼을 위해 목회자가 흘리는 눈물마저도 모든 죄와 사망의 거미줄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절규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외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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