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열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기독교교육학)
만물이 생동하는 5월, 산천초목은 창조주의 섭리 안에서 각자의 때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하지만 이 찬란한 봄볕에 비춰 본 우리 아이들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서늘하다. 거대한 입시의 파고 속에서 아이들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경쟁에 지쳐간다.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고된 학업에 시달리며 늘 무미건조한 형광등 아래서 볕을 쬐지 못한 채 아이들의 마음이 메말라가고 있다. 쉼 없는 무한 경쟁 체제 속에서 정체성 형성, 정서적 발달, 영적인 성장에 대해 고민할 여유조차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5월 가정의 달은 단순히 가족끼리 외식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지나가는 일회성 행사의 시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속적 가치 속에 함몰된 교육의 병리적 현실을 정직하게 직시하고, 이 시대 가운데 언약의 자녀들을 위해 부름 받은 교회와 가정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바르게 깨닫고 회복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육이 마주한 뼈아픈 위기는 단순한 제도의 결함이나 방법론 결여에 있지 않다. 근본적으로 우리 교육은 세계관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가 이야기했듯이 사람이 무엇을 믿는가가 결국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결정한다. 현재 우리 교육을 지배하는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세계관은 고귀한 지식을 그저 입시 성공과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코넬리우스 반 틸(Cornelius Van Til)과 헤르만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의 통찰처럼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지식이란 애초에 환상에 불과하다. 획일적인 경쟁 교육은 세속적인 전제 위에 서서 학생들을 비정하게 서열화한다. 이 숨 막히는 과정 속에서 타인을 향한 배려는 사라지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자아숭배가 조장되며,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개인의 존엄성은 훼손된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개혁주의 전통은 참된 교육을 회복할 수 있는 분명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남들보다 좋은 대학에 가거나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성경적 틀인 창조, 타락, 구속의 관점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목적 달성을 위한 기계가 아니라 처음부터 창조주로부터 배우고 성장할 능력을 경이롭게 부여받은 존재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이 비유하듯, 우리는 성경이라는 명확한 안경을 써야만 비로소 자연과 역사를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성경적 관점에서 수학은 단순한 공식 암기가 아닌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발견하는 과정이며, 문학과 예술은 하나님이 주신 창조적 능력을 풍성히 발휘하는 거룩한 예배의 활동으로 변화된다.
나아가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단순히 아이들의 머리에 정보를 채우는 작업 이상이어야 한다. 제임스 K. A. 스미스(James K. A. Smith)는 인간이 ‘사랑하는 존재’라고 깊이 있게 통찰하며, 참된 교육은 마음속 사랑과 욕망의 방향을 하나님 나라로 빚어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의 말처럼, 지식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열매를 맺어야 하며 결코 이기적 소유가 될 수 없다. 탁월한 성적을 가진 아이는 그 능력을 연약한 자를 돕는 청지기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재능을 가진 아이는 그것이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은사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처럼 교육은 아이들을 함부로 측정하고 평가하는 일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 안에 담아 두신 하나님의 형상을 일깨우는 일이다. 이러한 교육은 잠언에서 이야기하듯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만 가능하다.
부모와 사역자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귀한 유산은 직업에 대한 세속적 서열 의식을 단호히 버리고 ‘소명’의 눈부신 가치를 심어주는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영역주권 원리가 말해주듯, 세상의 모든 정당한 직업은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거룩한 영역이다. 세상은 연봉과 권력으로 귀천을 매기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땀 흘리는 농부, 헌신하는 교사, 생명을 살리는 의사, 세상을 빚는 예술가 모두 동등하게 가치 있는 일꾼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얻어낸 성적이 결단코 아이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다. 각자에게 부여된 독특한 소명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자녀를 나의 체면을 세우는 도구로 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도록 기도로 지지할 때, 아이들이 마침내 숨 막히는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교육이 꿈꾸고 지향하는 비전은 우리 아이들을 이 깨어진 세상 속에서 진정한 ‘샬롬’을 일구어내는 아름다운 문화 변혁자로 키우는 것이다. 코넬리우스 플랜팅가(Cornelius Plantinga Jr.)가 묘사한 ‘샬롬’은 그저 아무 문제가 없는 평온한 상태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가 처음 의도하신 제자리를 찾아 완벽한 조화와 풍성함을 누리는 구원과 회복의 상태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당하며 무의미한 서열에 매몰되지 않고, 부름 받은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문화 변혁자로 굳세게 자라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따뜻한 봄 햇살이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듯, 학업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신음하는 이 땅의 모든 언약의 자녀들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하기를 바란다. 자녀의 존재 자체만으로 깊이 감격하고 기뻐하는 복음으로 회복된 가정 안에 머물 때에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도 볕이 들고, 그러면 아이들은 꽃을 피우기 시작할 것이다.
출처 : 기독교개혁신보(https://www.repress.kr)
| ‘사고력’의 시대에서 ‘분별’의 시대로 (0) | 2026.05.06 |
|---|---|
| 아이들에게 길을 열어주자 (0) | 2026.04.29 |
| 무너지는 주일학교, 이제는 총회가 답해야 한다 (0) | 2026.04.20 |
| 갈렙 가문에서 배우는 신앙 전수의 원리 (1) | 2026.02.26 |
| 교회 주일학교 새로운 부흥을 기대하며 (1) | 2025.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