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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고재수선교사

by 김경호 진실 2010. 2. 1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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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고재수  (N.H. Gootjes)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신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

 


난처함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종종 난처함을 느끼곤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로서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분인지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서 행하신 일들, 곧 병자를 고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탄절 무렵이 되면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에게 관심을 기울이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관해 얼마나 자주 이야기합니까? 혹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그 방법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것은 아닙니까?


동정녀 탄생이 기적에 속하기 때문에 그렇게 주저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그분이 행하신 기적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기적에 대해서 말합니다.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신 이야기들은 종종 복음 전도에 사용되기도 하며 그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동정녀 탄생 교리가 종종 간과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교회가 동정녀 탄생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주저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사도 신경에서부터 “그분은 성신으로 잉태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그보다 앞선 니케아 신조에서는 “성신에 의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육신하신 분”이라고 표현되었습니다. 이 표현은 다소 모호한 점이 있으나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잘 고백했습니다. 더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지라도 동정녀 탄생에 관한 고백은 존재합니다.1) 그것은 우리 신앙의 핵심 부분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난처함을 느끼는 이유는, 비웃음 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우리 자신을 변호할 좋은 방법이 없는 데에서 오는 당혹함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사실들 중 좀 더 쉽게 설명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은 기꺼이 이야기하려 하면서도 말입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동정녀 탄생 교리가 우리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놓여 있어 사도 신경의 기본 조항의 하나이기까지 한 이유를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래에서 누가복음 1:35의 천사의 고지(告知)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비웃음


세상의 비웃음은 이런저런 모양으로 올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지독한 조소도 있습니다. 이러한 예를 2세기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철학자 켈수스는 동정녀 탄생에 대해 어떤 유대인이 했던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그에 의하면, 예수의 어머니는 간음을 범해서 그의 남편이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태중의 아기의 아버지는 판데라라는 군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는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자리를 얻고자 이집트로 갔는데 거기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고, 그 후에 조국으로 돌아와 자신을 하나님이라 선언하였다는 것입니다.2) 


이와는 달리 조금 세련되어 보이는 비웃음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목사가 교리반 학생들에게 동정녀 탄생에 관해 설명할 때 사용한 방식입니다. 그는 먼저 유명한 운동선수를 대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너희들의 그 영웅이 정말 위대한 사람인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시킬 테냐?” 하고 묻습니다. 한 학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일을 해낸 이야기를 들려 줄래요” 하고 대답합니다. 다른 학생은 “전 차라리 그가 태어났을 때 커서 유명한 사람이 될 거라고 별자리 운세에 나타난 것을 말할래요” 합니다. 또 다른 학생은 그의 출생과 관련하여 일어난 기적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그 목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주 잘했다. 바로 그 일이 예수님께도 일어난 거야.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매우 감동을 받았단다. 그래서 그분을 높이기 위해서 기적적인 탄생 이야기를 고안해 낸 거란다.”


위의 두 이야기는 사뭇 다릅니다. 처음 것은 이교 사회에서 나온 것입니다(켈수스가 가짜 유대인을 등장시킨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들은 이야기인지에 따라 후자의 경우에는 출처가 유대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어조는 매우 적대적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어떤 교회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께 대해 적대적이지 않을뿐더러 교회 안에서 위대한 분으로 높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동정녀 탄생을 지속적으로 믿고자 한다면 그는 비웃음을 자초할 것입니다. 영웅 숭배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이야기를 누가 믿는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비웃음에 대해 어떤 답을 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까? 혹시는 기적의 탄생 교리를 믿는 일로 인해 이 세상 밖으로 떨려 난 것처럼 느끼는 것은 아닙니까? 세상 사람 모두가 출생의 전 과정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이는데 대체 그런 이야기를 누가 믿겠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동정녀 탄생이 우리에게 왜 중요합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위에서 소개한, 이 교리를 부인한 두 가지 예로 돌아가 봅시다. 두 경우 모두 동정녀 탄생의 복음을 크게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거부하는 이유



켈수스의 경우는 매우 분명합니다. 켈수스나 혹은 그가 인용했다고 하는 유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은 거짓이며 예수는 실상 정당한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한 예수는 기적을 행한 일도 없으며, 기적들이란 이집트인에게서 배운 마술일 뿐이라고 합니다. 켈수스가 동정녀 탄생을 부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인하지 않으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여기서는 예수가 사생아로 여겨지기는커녕 영웅으로 높임을 받습니다. 예수를 높이기 위해 초자연적인 출생을 고안해 냈습니다. 비록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라도 그런 방법으로 우리는 여전히 예수를 높인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부인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들이 그분을 어떤 식으로 높이고 있습니까? 인간으로서, 아마 위대한 인간으로서, 오늘날의 우리의 영웅들과 똑같은 수준에 놓을 뿐인 것입니다. 아무리 높여도 한 인간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동정녀 탄생을 단지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여서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기적 같거나 일상의 범주를 벗어난 일들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만 동정녀 탄생이 그리스도께서 위대한 사람 이상이심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인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것입니다.

 


천사의 고지(告知)



누가복음 1:35을 보면, 천사는 성신께서 주관하셔서 마리아가 성적(性的) 결합 없이 잉태할 것임을 가장 먼저 말합니다.3)  이어서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합니다. 천사는 여기서 동정녀 탄생과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간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잘 보여 줍니다. 곧,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기에 합당하셨습니다.


천사의 말은 처음 들을 때에는 마치 모순된 것처럼 들립니다. “성신께서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셔서 마리아가 잉태할 것이며, ‘이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성신께서 마리아를 덮으신 결과 태어난 이 아이는 사람이라 불리게 될 것으로 기대할 것입니다. 그 일에 어떤 남성도 참여하지 않았으나 그 아기는 참된 사람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조점은 인성에 있지 않고 신성에 있습니다. 천사가 전한 내용은 성신의 역사로 태어날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을 완전히 뛰어넘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신화적으로 상상했습니다. 그 결과는 언제나 반신(半神), 곧 어느 정도 신의 특성과 인간의 특성을 함께 소유한 어떤 존재로 나타났습니다. 반신이란 완전한 하나님도, 완전한 사람도 아닙니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이 미칠 수 있었던 최상의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며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일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성신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완전한 인성(人性)을 갖추도록 마리아 안에서 일하셨습니다. 그분은 반신반인이 아니시고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오직 성신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인성을 입히심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제는 천사의 이 말과 32절의 말을 연결시킬 차례입니다. 천사는 이미 마리아의 아들이 ‘지극히 높은 분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분’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칭호입니다. 32절에 기록된 천사의 말은 지상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는 35절에서 이 사실을 설명합니다. 지극히 높은 분의 아들은 사람인 부모에게서 나지 않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단순한 사람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일 그런 결합이 가능하다 해도) 신과 인간의 결합을 통해서도 나지 않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단지 반신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신께서는 그분의 인성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인 아기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기에 합당하셨습니다. 성신께서 이렇게 일하신 결과로 그분의 신성은 사람으로 출생하실 때 조금도 양보되지 않았습니다.

 


이 교리를 고백하는 일이 중요함



이제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주장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오래된 방식입니다. 동정녀 탄생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분을 섬기고 복종하고 경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인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정녀 탄생을 반대하는 일과 언제나 맞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그레셤 메이첸은 동정녀 탄생에 관한 주제로 책을 한 권 썼는데, 여기에서 동정녀 탄생이 복음의 불가결한 요소라는 점과 이것이 단지 후에 덧붙여진 교리일 뿐이라고 말하는 근거들은 모두 실패했음을 상세히 밝혔습니다.4)  그런데, 이 책이 매우 훌륭하고 꼭 필요한 책이라고 할지라도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을 확신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 오셨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신의 사역으로 인해 동정녀에게서 나셨다면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으로서 복종하고 섬겨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정녀 탄생을 고백할 때 ‘교회 밖에 있는 외인’이라면 그것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조롱하고 무시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시면 아무도 하나님께서 동정녀 탄생을 통해 당신의 아들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음을 인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쉬지 않고 그 사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비웃음을 모두 예상하시고도 이런 방법으로 세상에 오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비록 세상의 비웃음이 예상될지라도, 동정녀 탄생을 고백할 때 도무지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에 있습니다(요일 5:5, 12).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동정녀 탄생에 관해 믿어야 합니다. 동정녀 탄생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방법이기 때문입니다.5)

 

 

 

1) 사도 신경의 모체인 로마 신경을 참조하시오. J.N.D. Kelly, Early Christian Creeds(초대 기독교 신경들) (3 ed., New York: Longman, 1983) 102쪽. 더 오래된 문서에 관해서는 103쪽과 91쪽을 참조하시오.
 
2) 켈수스는 오리게네스의 Contra Celsum(켈수스 논박서) 1권 28장에서 언급되었다. 여기에서 오리게네스는 켈수스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왜곡시키기 위해 이 이야기들을 고안해 냈다고 지적함으로써 켈수스에 대한 형세를 깨끗이 역전시켰다.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사람들은 예수께서 평상의 결혼 관계에서 나지 않으신 사실을 자신들이 알고 있음을 부지중에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Contra Celsum 1권 32장 참조.
 
3) RSV 번역본에는 마리아가 “제게 남편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오역이다. 마리아는 ‘남편이 없다’고 한 것이 아니고 ‘사내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그리스 고전과 구약 성경에 사용되었던 성적(性的) 관계에 대한 우회적인 표현이다. W.F. Arndt, F.W. Gingrich,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9) 161쪽 참조.
 
4) J. Gresham Machen, The Virgin Birth of Christ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New York and London: Harper and Brothers, 2 ed., 1932).
 
5) 원문 출처: Clarion, 40권 25호 (1991) 536-537쪽. 번역: 최혜선, 번역 감수: 김헌수. 이 원문의 한국어 번역에 대하여 저자의 서면 허락을 받았음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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