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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녀 탄생은 문제가 아닙니다

고재수선교사

by 김경호 진실 2010. 2. 1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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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녀 탄생은 문제가 아닙니다
고재수  (N.H. Gootjes, 캐나다 개혁교회의 신학대학 교수, 교의학)

 
 

지난 연재 [원문 출처: 클래리온(Clarion), 글쓴이: 고재수 교수, 옮긴이: 최혜선]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성약출판소식 36호 (2002. 12.)
오직 은혜로 말미암은 동정녀 탄생·········성약출판소식 42호 (2003. 12.)


동정녀 탄생은 예수님의 지상(地上) 생애의 시작에 있었던 큰 기적이지만 성경은 이것을 간단명료하게 기록합니다. 몇 절의 말씀으로 전체를 사실적으로 말하고 마칩니다. 하나님께서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셨고, 천사는 마리아에게 알렸습니다. “보라, 네가 수태(受胎)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 복음서는 이 일을 더 이상 기록하지 않지만 초반부에 기록된 이 말씀은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충분할 정도로 매우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의 아버지를 통하지 않고 이 땅에 오셨으나 육신의 어머니에게서 나셨습니다. 복음서는 이 진리를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제시하려 하지 않습니다. 복음서는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서 자라고 태어나게 하셨다’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큰 문제가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것은 경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실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도 하나님께서는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나셨다고 말씀하시면 그것이 곧 사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동정녀 탄생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의 탄생에 관한 이 이야기는 누군가 사람이 고안해 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따라서 동정녀 탄생은 이것을 믿음으로 받거나 불신앙으로 받지 않는 두 경우에 모두 분명히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동정녀 탄생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믿기를 원하나 동시에 하나님의 성경은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신학자 베르코프(H. Berkhof, 1914-1995)가 그중 하나입니다. 그는 성경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주장하려 하지만, 반면 성경이 하나님께 관하여 말하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그는 동정녀 탄생 이야기 속의 사실들을 부인합니다. 그 결과 동정녀 탄생의 복음은 트릭(trick)이 되어서 동정녀는 무대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무대에서는 이런 트릭이 종종 사용됩니다. 하지만 모두가 읽는 책에서 이런 트릭을 시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베르코프가 동정녀 탄생을 사라지도록 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베르코프가 사용한 트릭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왜 이런 일을 했는지 그 이유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어떤 신학적 확신에서 동정녀 탄생을 부인했으며 어떻게 사라지게 만드는 트릭을 고안할 수 있었습니까?


사라지게 만드는 트릭



동정녀가 어떻게 허공으로 사라질 수 있습니까? 먼저 무대가 마련됩니다. 이 트릭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부인하는 배경에서 일어납니다. 베르코프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시는 법이 없고 단지 행동만 하십니다. 그분의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이 그분을 믿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그들을 지지하고 돕는 새로운 행위로써 하나님은 그들에게 보상하십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하나님의 행위로 이해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들의 경험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해석하고 재해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행위라고 생각되는 것에 비추어 하나님의 이전 행위들을 재해석합니다. 선지자나 예언자들은 과거의 사건에서 점점 더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해석의 결과가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돕기 위해 행하신 일들을 사람이 해석하고 재해석해 온 여러 단계를 우리에게 기록하여 제시합니다.1)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의 저작물이고 그 안에는 하나님 말씀이 한 마디도 없습니다. 오로지 사람이 하나님께 대해 생각하고 말한 것만 있을 뿐입니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께 대해 똑같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각자의 인상을 자기의 방식대로 기록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에서 네 단계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가. 성경의 어떤 표현들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다. 이런 구절들은 하나님과 그 행위에 대해 직접적으로 증언하고 있다.2)


나. 둘째 단계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에 대해 사람들이 후에 생각하게 된 내용이다. 이러한 묵상에서 새로운 견해들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전에 하신 일들을 다시 돌아보는 둘째 단계에서 다양한 신학적 사상이 형성된다.


다. 셋째 단계는 둘째 단계의 통찰력을 수사학적(修辭學的)으로 표현하고 다듬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원래의 견해와는 실제적인 관계가 없다.


라. 마지막 넷째 단계이다. 여기서 제시되는 내용은 원래의 계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의 행위 계시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을 기록할 때 다양한 배경의 생각들이 슬며시 들어왔기 때문이다.3)

 


이 과정에서 동정녀 탄생은 세 번째 단계에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동정녀 탄생은 어떤 한 사건을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로서 재해석한 신학적 통찰력을 단지 수사학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순서 있게 다시 정리하자면,

 


원래의 사건: 예수라는 어린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태어남.
첫째 단계: 그 사실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봄.
둘째 단계: 예수님의 이후의 사역에 비추어 생의 초기 부분을 하나님의 구원의 일과 연관시켜 재해석함.
셋째 단계: 예수님의 탄생이 구원의 중요성을 가진다는 점을 수사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동정녀 탄생 이야기를 덧붙임.
이제 보십시오. 동정녀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막이 내림.

 


막이 내리고 있지만 무대를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베르코프는 왜 동정녀 탄생을 사라지게 하는 트릭이 가능한 세 번째 단계에 두었겠습니까? 그는 그 근거로 동정녀 탄생이 신약 성경 모든 곳에서 언급되지 않고 단지 두 복음서의 첫 부분에만 기록된 사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4)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주제와 관련하여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입니다. 증명해야 할 논제는 ‘동정녀 탄생은 수사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지금 초점은 동정녀 탄생 이야기의 성격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놓여 있습니다. 베르코프는 그것이 수사학적인 표현일 뿐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이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 제시한 근거는 전혀 성격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베르코프는 숫자에 연연합니다. 복음서 네 권이 아닌 두 권만 동정녀 탄생을 언급한다고 지적할 뿐입니다. 이것은 매우 비논리적인 추론 방식입니다. 단지 두 복음서만 동정녀 탄생을 언급한다는 점을 들어 다른 복음서들은 이 사건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 복음서에만 기록된 사실에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후대에 개정한 것이라는 결론을 끌어낼 수는 없습니다. 베르코프는 손재주를 부려서 동정녀 탄생을 교묘하게 사라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마술처럼 흥미로워 보이긴 하나 설득력은 전혀 없습니다.



신학적인 이유


여기서 우리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가 동정녀 탄생을 사라지도록 그렇게 애를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사실 이면에는 어떤 신학적인 동기가 있습니까? 이에 대한 답은 그의 저서 중 성자 예수께 관한 부분에 나와 있는데, 베르코프는 거기서 동정녀 탄생을 다시 언급합니다.


베르코프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에게 이 성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은 예수가 사람으로 태어났고 나중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의 시작에는 동정녀 탄생과 같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사역은 없었습니다. 대신, 생애 가운데 하나님께서 창조적인 일을 행하셔서 결국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는 나사렛의 미미한 목수의 아들로 출발했지만5) 


내적인 분투와 투쟁 끝에 성부의 생명에 온전히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성부께서는 인간 예수를 성신으로 충만케 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이러한 관계 속에서 예수의 인성(人性)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의 의미라고 합니다.


이런 일은 예수께 가장 먼저 일어났지만 그가 유일한 분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역사는 예수에 이르러 새로운 단계를 맞이했습니다. 그분 안에서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의 형상을 좇아 인간 세계는 새롭게 되고 있습니다.6)



이것은 진화론적 역사관입니다.7) 


베르코프의 진화론적 역사관에 의하면 세상 역사는 질적 변화로 구분되는 여러 단계들을 거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는 새로운 단계의 존재 방식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인류는 새로운 형상으로 진화해 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장 먼저 그렇게 되셨고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데에서 그분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베르코프가 동정녀 탄생을 거부하는 진정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정녀 탄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보다 훨씬 위에 둡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신 분입니다. 그렇게 높은 예수 그리스도를 베르코프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유일무이한 예수가 아닌, 첫 번째인 예수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와 똑같은 투쟁을 똑같이 거쳐야 합니다. 예수께서 목수의 아들로 시작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베르코프의 진화론적인 인간관에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시작하신 예수를 위한 여지가 없습니다. 바로 그 이유에서 베르코프는 동정녀 탄생을 사라지게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서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성경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안에서 행하실 뿐 아니라 그분의 행위를 우리에게 말씀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그분이 역사 안에서 행하신 일은 동정녀가 수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동시에 사람의 아들인 분을 낳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이해를 뛰어넘는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함께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 천사는 대답했습니다.



성신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동정녀 탄생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명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경배를 불러일으키는 하나님의 전능한 사역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동정녀에게 나게 하심으로 그에게 인성을 입히셨습니다. 또한 아들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이러한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는 사람은 동정녀 탄생도 하나님의 사역으로 받습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습니까? 아무 데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우러르고 경배할 뿐입니다.8)


 

1) H. Berkhof, Christian Faith: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the Faith (tr. S. Woudstra; Grand Rapids: Eerdmans, 1979) 62-65쪽을 보라. 베르코프는 이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계시는 사건들과 그에 대한 해석의 누적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어 번역본은 『기독교 신앙론 상․하』(신경수 역,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9) 참고. 
2) 90쪽에서 이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사실 베르코프 자신은 첫 번째 단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사역에 대한 직접적인 증언,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위해 당신을 계시하신다.” 여기서 “말씀”을 언급한 것은 베르코프가 초기에 계시에 대해 주장했던 것과 모순되는 듯이 보인다. 
3) 여기에 언급된 예들 중 하나는 여성의 지위에 관한 것이다. 
4) 90쪽: “만일 예수의 부활을 첫 번째 단계에 두고 동정녀 탄생을 세 번째 단계에 둔다면 결정적으로 고려할 점은 전자는 신약 성경 어디에나 언급되었고, 후자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초두에만 언급되었다는 사실이다.” 동정녀 탄생이 두 복음서에만 명백히 기록된 사실에 관하여 다음의 글을 참조. Y. Feenstra, Geboren uit de maagd (Kampen: Kok, 1959) 8쪽 이하. 
5) 베르코프는 이렇게 쓴다: “예수께서는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언약의 길을 떠나셨다...,” 287쪽. 베르코프는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 본 것 같다. 만일 그가 이렇게 확신한다면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수사라기보다는 노골적인 거짓이라고 주장해야 옳다. 
6) 앞의 책, 292쪽. 
7) 베르코프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 C. Graafland, “Berkohofs theologie in het licht van de gereformeerde traditie,” in Weerwoord. Reacties op Dr. H. Berkhof’s “Christelijk Geloof” (Nijkerk: Callenbach, 1974)에서 특히 49쪽 이하.
8) 원문 출처: Clarion, 42권 (1993) 532-533쪽. 번역: 최혜선. 이 원문의 한국어 번역에 대하여 저자의 서면 허락과 감수를 받았음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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