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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로 말미암은 동정녀 탄생

고재수선교사

by 김경호 진실 2010. 2. 1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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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로 말미암은 동정녀 탄생
고재수  (N.H. Gootjes, 캐나다개혁교회의 신학대학 교수, 교의학)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서 행하신 전능한 일들을 기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해 수천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해 오셨습니다. 또한 동정녀 탄생의 기적에서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나타나고 무엇보다도 처녀 마리아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능한 사역을 찬양하게 됩니다. 마리아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때에 우리도 함께 찬양하게 됩니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도다.


동시에 이 일에서 사람은 겸비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땅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누구도 동정녀 탄생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구주는 사람이셔야 했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그를 탄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삶을 시작하신 그 순간에 이미 사람은 사실상 그 일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교만한 인간은 스스로의 구원에 참여하기를 원하지만 동정녀 탄생은 인간의 모든 교만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옛사람은 쉽게 소멸되지 않습니다. 교만한 인간은 이 굴욕적인 소식에서 피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고안한 한 가지 방법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제외되었다 하더라도 육신의 어머니는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낳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우리의 구원에 기여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은 다소간 마리아와 그의 협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로마 가톨릭 신학은 언제나 마리아의 역할을 강조해 왔습니다. 특히 1850년 이래로 이것이 대부분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적 입장이 되었습니다.1) 마리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마리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그 공로를 돌리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를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일에 협력자로 여겼습니다. 이 글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동정녀 탄생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의 입장은 성경적인 발전입니까, 아니면 성경의 교훈을 훼손시키는 것입니까?

 


로마 가톨릭의 입장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일과 관련하여 로마 가톨릭의 교리는 세 가지 단계를 말합니다. 먼저 마리아가 승낙했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점을 말합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한 것을 그리스도의 탄생의 일에 자신을 사용하셔도 좋다고 (하나님께!) 승낙해 드린 것처럼 이해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구원과 영예를 위해 인성(人性)을 취하고자 하실 때에……선택받은 당신의 어머니가 자발적으로 승낙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2)


이 점은 마리아의 매우 높아진 위치를 말하는 두 번째 단계로 이어집니다. 성자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성부께 갈 수 없듯이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성자께 갈 수 없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모든 사람과 모든 천사 위에 높이 되었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그리스도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중보자의 칭호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그의 몸에서 예수가 나셨으므로……바로 그 이유로 인해 중보자(Mediator) 그리스도와 더불어 가장 사랑스러운 중보자(mediatress)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3)


마리아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또 하나의 중보자로 지목한 일은 로마 가톨릭 신학에 큰 문제를 던져 줍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라고 편지했습니다. 로마 가톨릭 신학은 마리아에게 “중보자”의 직위를 준 것과 이 성경 본문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들은 그 문제를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구분함으로써 해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킴으로써 사람들을 위해 구원을 획득하셨습니다. 하지만 또한 마리아를 그 일의 조력자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죽음으로써 모든 은사를 ‘획득’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은사를 ‘분배’할 권리를 받았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4)


그런데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는 일을 승낙한 것에는 세 번째 중요한 점이 또 있습니다. 마리아가 그 시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인류 전체를 대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5)  따라서 그들에 따르면 동정녀 탄생에서 일어난 일은 이런 식으로 요약됩니다: 하나님을 대표하는 아들은 성육신하기를 원하셨고 인류를 대표하는 마리아는 승낙하였다. 하나님께서 동정녀 탄생을 통한 구원의 근원과 출발점이 되심은 의심할 수 없는 일이나 동시에 마리아라는 인격을 통해 인류도 그 일에 승낙함으로써 협력했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역만이 아니고, 비록 하나님의 주도권에 종속되긴 할지라도, 동시에 사람의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갑작스럽게 로마 교회와 종교개혁 사이의 갈등의 주된 논점 중의 하나, 즉 “우리의 구원이 ‘오직 은혜에 의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사람 편에서 협력을 함으로써 구원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교리에 반대하며 루터는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말미암는다고 주장했습니다.6)  마리아가 동정녀 탄생의 일을 하나님께 승낙해 드렸는가 하는 질문은 다시 그보다 더 큰 범주의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가, 혹은 우리 인간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자신의 구원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즉 동정녀 탄생은 유일한 하나님의 사역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마리아 사이의 협조적인 노력의 결과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천사의 예고



이제는 성경으로 눈을 돌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봅시다. 성경에는 동정녀 탄생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와 탄생에서 마리아의 역할이 협력자로서 묘사되어 있습니까? 이에 대한 성경의 답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온전히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성경 본문의 여러 가지 점들이 이 사실을 보여 줍니다.



먼저 천사의 첫 마디는 질문이 아니고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라 불리울 아들을 네 자궁 속에 잉태하여 낳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은 것이 아닙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일어날 일을 말했습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는 전체가 그와 같은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승낙을 요구받은 적이 결코 없었고 다만 하나의 확실한 사실을 대면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둘째로 마리아의 질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아직 요셉과 동거하기 전인데 어떻게 아들을 잉태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에 대해 천사는 하나님의 역할과 마리아의 역할을 나누어 답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서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신을 통해 이 일을 하실 것을 알렸습니다. “성신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35절). 마리아의 잉태는 하나님의 사역이었고, 오직 하나님의 사역이었을 뿐입니다.


셋째로 마리아의 마지막 대답도 협력이나 승낙의 어조를 띠고 있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종이라, 노예라 불렀습니다. 그렇다, 아니다 하고 말할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아이를 출산하는 것은 마리아에게 어려운 일이 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요셉은 무엇이라 할 것인가? 하지만 마리아의 대답은 마지못해 불가피한 일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내리신 결정을 받아들였음을 보여 줍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누가복음 1장은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는 일에 협력했다는 로마 가톨릭의 교리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로마 가톨릭교회가 그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단념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교리는 오직 성경에 근거하고 있지 않고 성경을 전통의 과정 안에서 이해하는 것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전통을 통해 교회는 성경에 실제로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로마 교회가 하나님의 계시에 무엇을 덧붙여 이해하는 좋은 예 중 하나가 바로 마리아에 대한 교리입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사실상 자신들의 교리를 성경에서 입증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마리아숭배론은 대부분 전통에서 입증된 것입니다.7) 로마 가톨릭의 ‘오직 은혜 이외에도’ 교리는 그들의 ‘오직 성경 이외에도’ 교리에 의해 지지를 받습니다.

 


맺으며


동정녀 탄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마리아는 천사에게 다윗의 왕위에 올라 다스릴 자신의 아들이 어떻게 태어날 것인지 물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성신님을 통해 이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동정녀 탄생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마리아 안에서 독점적으로 일하신 결과입니다.


이것은 사람인 우리에게는 굴욕적인 소식입니다. 아무도, 우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도 구주의 탄생을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일의 결과입니다. 이 사실은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뿐, 누구도 스스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리아를 통해서만이라도 우리의 구원에 무엇인가를 기여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싫어합니다. 동정녀 탄생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교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커다란 위로를 받습니다. 동정녀 탄생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일의 성격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구주가 세상에 오시는 길을 예비하셨고 사람은 그 누구도 그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금의 오류도 없이 구원이 완성될 것이라는 보증이 되십니다. 구원의 일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그 손안에서만 안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은 마리아를 찬양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하고, 따라서 조금이라도 사람을 찬양하는 것에서도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모든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8)

 

 

 

1) 마리아에 대해 이와 같이 공식적인 가르침이 쇄도하게 된 것은 1854년에 마리아의 무염 시태설(無染始胎說)을 선포하면서부터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원죄 없이 나신 것처럼 마리아도 죄 없이 출생한 것으로 믿어야 할 의무가 부과되었다. 이것의 잠정적인 결말은 1950년에 마리아 육체 승천설을 선언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리우신 것같이 마리아가 죽지 않고 승천했음을 믿어야 할 의무가 부과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1-1965)에서는 이렇게 발전되어 온 마리아숭배론에 별달리 새로운 조항을 덧붙이지 않았다.
2)『교회의 가르침』(The Church Teaches: Documents of the Church in English Translation, John F. Clarkson S.J. 외 편저; Rockford: Tan Books and Publishers, 1973)에 수록된 공식 문서들의 번역본을 참고하라. 본문의 인용은 209, 211쪽에서 찾을 수 있다. 210쪽에 “(마리아가) 멋지게 승낙을 함으로 천사가 이 땅에 가져온 평안의 신비의 메시지를 받아들였다”라고 기록된 것을 보라. ‘승낙’이라는 말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ꡔ신학대전ꡕ(Summa Theologica) 3권 30장 1, 4항에서 인용한 듯이 보인다.
 
3)『교회의 가르침』(The Church Teaches), 209, 210쪽을 보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앞서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 다음가는 공동 구속자라고 칭하는 운동이 있었는데, 이것은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John H., Miller C.S.C. 편저 ꡔ제2 바티칸 공의회ꡕ(Ⅱ Vatican: An Interfaith Appraisal) (Notre Dame & London: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66), 311쪽과 328쪽 이하를 보라.
 
4) 『교회의 가르침』(The Church Teaches), 210쪽 (회람용 ꡔ연감ꡕ(Ad Diem Illum) 1904년 이후에서 인용함)을 보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Dogmatic Constitution on the church, 3권 60장에서 이 문제를 다시 다루었다. A.P. Flannery 편저, ꡔ제2 바티칸 공의회 문서들ꡕ(Documents of Vatican II, Grand Rapids: Eerdmans, 1975) 418쪽을 보라.
 
5) 『교회의 가르침』(The Church Teaches), 209쪽에서 인용. 1891년에 선포되었고 1896년에 재선포되었고(210쪽) 1943년에 다음과 같이 수정되었다: “모든 인류의 이름으로 마리아는 승낙을 하였다”(211쪽). 이 표현도 역시 토마스 아퀴나스의 “마리아는 어떤 식으로든 인류를 대변하였다” 하는 데로 소급된다(209쪽).
 
6) 이 점은 로마 가톨릭 학자 M. Schmaus가 ꡔ가톨릭 교의학 5권: 마리아숭배론ꡕ(Katholische Dogmatik, Ⅴ: Mariology (München: Max Hueber Verlag, 1955, 312쪽 이하)에서, 그리고 신교 학자 C.A. De Ridder가 ꡔ마리아는 중보자인가?ꡕ(Maria medeverlosseres?: De discussie in de huidige rooms-katholieke theologie over de medewerking van de moeder Gods in het verlossingswerk (Utrecht: Uitgeverij Evangelische Maatschappij, 1960), 122쪽에서 바르게 지적하였다.
 
7) 예를 들어 Medina가 『제2 바티칸』(Ⅱ Vatican: An Interfaith Appraisal), 329쪽 이하에서 “마리아숭배론에서 전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당신은 전통에 대한 교리를 어떻게 예시할 수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에 답한 것을 보라. 또한 C.A. De Ridder의 『마리아는 중보자인가』(Maria medeverlosseres?) 130쪽, 144쪽 이하를 보라.
 
8) 원문 출처: 「Clarion」, 41권 25호 (1992) 538-539쪽. 번역: 최혜선, 번역 감수: 김헌수. 이 원문의 한국어 번역에 대하여 저자의 서면 허락과 감수를 받았음을 밝혀 둡니다. 글의 처음 두 문장은 저자가 직접 원문의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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