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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예언 운동의 근본적 문제점

피터 와그너

by 김경호 진실 2010. 9. 2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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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 교수] 다양한 예언 운동의 근본적 문제점 
 
이승구 교수의 신학 논단


다양한 예언 운동의 근본적 문제점

철저히 성경에 근거해 있지도 않고, 교회사적 전통에 근거하지 않은 개념들을 일정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마치 그것이 성경적인 것인 양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깊이 숙고해 보라

<연재순서>
서론☜
1. 와그너와 일단의 저자들의 주장 가운데서 성경적으로 긍정적인 점들☜
2. 와그너와 일단의 저자들의 주장의 문제점
3. 근원적 문제 제기: 사도 시대와 우리 시대의 구별의 필요성
결론

2. 와그너와 일단의 저자들의 주장의 문제점
(1) 일반적 문제점들
기본적으로 와그너는 세대주의 신학에 근거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의도에 맡도록 적절히 변경하면서 논의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와그너는 신약 시대를 율법 시대와는 다른 “은혜의 시대”라고 언급하면서 그런 상황에서 예언자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다(19).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두 종류의 대적자를 얻게 된다고 생각된다. 하나의 대적자들은 그의 세대주의적 해석에 반대하는 언약 신학적 대적자들이다. 또 하나는 그의 수정에 반대하는 세대주위적 대적자들이다.
와그너와 이 저자들의 좀더 심각한 일반적 문제는 “성경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그들이 이 말에 대해 부여하고 있는 그들 나름의 독특한 함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성경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알 때까지는 선 듯 동의할 수 없게끔 하는 논술을 그들이 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이라는 말에 대해 그 의미를 일일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상한 중장과 논의를 제시하는 이들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왜 이들에 대해서 이단자들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때 느끼는 불안을 가지도록 생각하고 논술하는 것일까? 이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결국 그들의 성경 주해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를 노출시켜 주는 것이다. 주해를 이상하게 하기 때문에 그들이 “성경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주해의 내용을 가지고 따지면 결국 성경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베소서 4:11 이하에 근거해서 교회의 직분을 말한다고 하면서 그 본문과 상관없는 것들을 때때로 삽입하는 것들에서 잘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와그너는 전도자를 언급하면서 “약 150년 전에 챨스 피니(Charles Finney)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폭넓게 주목받지 못했었다”고 말한다(13). 와그너에게는 초대 교회의 전도자들이 관심이 아니라, 오늘날에 전도자들이 관심인 것이다. 더 심한 것은 그 본문이나 다른 성경 구절에 있지도 않은 “중보자”(intercessors)라는 직분을 그가 삽입하고 있는 점이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독특한 직분으로 이를 언급하면서 이는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직분이다”고 말하고 있다(13, 강조점은 주어진 것임). 그는 이런 것이 에베소서 4:11에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러나 중보자는 촉매제처럼, 예언자와 사도들의 길을 예비하는 지극히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는 주목할 만한 직분이기 때문에 꼭 언급하고 싶다”(14)고 말하면서 이를 목사, 교사, 예언자, 사도와 함께 교회의 5대 직분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와그너가 말하는 교회의 5대 직분이(10-14, 29, 37) 엄밀히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것임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와그너뿐만이 아니라 이 책에 기고한 다른 이들도 이와 같은 다섯 직분에 대한 같은 이해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57-59, 73, 107, 126). 그들은 이런 이해를 와그너로부터 배워 그와 같이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논의는 이런 용어를 사용 할 때 그들이 성경의 본래적 의미보다는 오늘날 그들이 이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한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잘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철저히 성경에 근거해 있지도 않고, 교회사적 전통에 근거하지 않은 개념들을 일정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마치 그것이 성경적인 것인 양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깊이 숙고해 보라.
톰 해몬(Tom Hamon)은 오늘날 예언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하면서 에베소서 1:17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123f.). 이 본문이 말하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 과연 소위 제한된 의미의 예언자들에게 있는 것이라는 의도로 바울이 말하는 것인가?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도록 해야 할 것을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본문을 주로 목회자와 소위 예언자들에게 이를 제한하여 생각하는 것은(124, 136) 이들이 가진 성경 주해의 자의성을 잘 드러내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각주는 생략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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