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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예언 운동의 근본적 문제점(5)

피터 와그너

by 김경호 진실 2010. 9. 2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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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 교수]다양한 예언 운동의 근본적 문제점(5)
이승구 교수의 신학 논단 
 


우리 시대의 이적은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사도적 이적과 같이 계시를 확증해 주며 선포의 내용을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보장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연재순서>
서론
1. 와그너와 일단의 저자들의 주장 가운데서 성경적으로 긍정적인 점들
2. 와그너와 일단의 저자들의 주장의 문제점
3. 근원적 문제 제기: 사도 시대와 우리 시대의 구별의 필요성☜
결론

3. 근원적 문제 제기: 사도시대와 우리 시대의 구별의 필요성
3.1. 신약 시대의 교회와 우리 교회의 차이

이와 같은 와그너 등의 생각을 보면서 우리가 심각하게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사도 시대의 교회와 우리의 교회는 과연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일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첫째로, 사도 시대의 교회에는 사도들이 생존해 있던 교회인데 반해서, 우리 시대에는 그 사도들이 우리에게도 사도이나 그들은 이미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고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늘”에 있다는 차이가 있다. 사도들이 생존하여 함께 하던 때에는 사도가 말로나 글로 가르친 것이 곧바로 하나님의 계시였었다. 주님의 가르침을 사도들을 통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이 말로 하든지 글로 하든지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이 성령님의 영감으로 되는 것임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오직 이미 성경에 기록된 것만이 사도적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1세기의 그 사도들은 처음 교회의 사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교회의 사도들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둘째로, 사도 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직도 주어지던 시대였는데 반해서, 우리 시대에는 주의 재림 때까지는 더 이상 새로운 계시가 없는 시대이다. 이 시기는 “특별 계시의 시기가 닫혀진 때”이다. 바빙크가 잘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 때 성경이 종결되어…… 특별 계시(revelatio specialis)의 새로운 구성적인 요소들이 지금은 더 이상 첨가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살아 계시고 그의 사역은 성취되었으며 그의 말씀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성경에 성문화된 계시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셋째로, 사도 시대의 이적과 기사들은(τε τέρατα καὶ σημεία) 사도들을 통해 주시는 계시를 확증해 주는 사도적 이적(apostolic miracles)인데 비해서, 우리 시대의 이적은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사도적 이적과 같이 계시를 확증해 주며 선포의 내용을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보장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분명하며,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훈을 우리들의 교회에 적용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 된다. 이와 같은 차이를 유념하지 않는 이들은 사도행전의 교회가 계시를 받았으며, 성령의 가르치심과 직접적 인도하심에 근거해서 살아갔으므로 우리도 그런 성령님의 직접적 가르치심을 항상 기대할 수 있고, 또 그리해야 한다는 잘못된 주장을 할 것이다. 그러나 레이몬드가 잘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예언자들과 방언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고 믿는 것은 그만큼 그가 성경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으로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위대한 종교 개혁적 원리를 버려 버린 것이다”. 또 이와 같은 차이를 분명히 의식하지 않는 이들은 사도 시대의 교회에 있었던 이적과 기사 위주의 사역을 해야 하고, 그것이 참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잘못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교회에서는 누가 성령님을 속이고 교회의 일을 이 세상적으로 하려는 것인지를 본문의 베드로와 같이 100% 단언할 수 있는 이도 없다. 베드로는 그 일을, 칼빈이 단언하듯이, “성령님의 계시에 의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성령님의 그런 계시가 있지 아니하다. 그리고 그렇게 성령님과 교회 공동체를 속이는 자에게 죽음을 말할 때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일도 없는 것이다. 이는 성령의 힘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우리들은 베드로와 같은 사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살필 수 있는 능력을 주께서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을 주지 않으셨다. 또한 우리는 사도들과 같은 성격의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지도 않는 것이다. 그런 것은 “신적 계시의 신뢰성에 대한 표로서 의도된” 것이고, 따라서 “특별 계시의 시기가 끝났을 때에 자연스럽게 그쳐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사도 시대의 교회와 우리들의 교회의 시대적, 구속사적인 차이를 분명히 의식하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와그너 등은 이런 차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의 잘못된 성령 운동에 대한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서 그는 자신이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성령운동을 훼방하는 세력을 ‘집단 종교의 영’이라 규정하고, 그 뒤에 마귀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그는 “종교의 영에 붙들린 지도자들이 하는 큰 실수가 지금 성령님이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들은 차라리 현상유지하기를 좋아한다”고 하고, “종교의 영이 그들에게 ‘두려움’의 주사를 놓았기 때문에… 그들은 권력(power)과 지배력(control), 돈(money)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돈에 대한 두려움이고… 이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새로운 계절로 옮기기를 많은 지도자들이 싫어한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와그너 등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주장을 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는지가 잘 드러나는 레토릭(rhetoric)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각주는 생략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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